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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오전 11시 제17회 한국전쟁기 공주지역 민간인희생자 위령제가 발굴지인 충남 공주시 왕촌 살구쟁이 현장에서 진행됐다. 이날 위령제에도 어김없이 희생자들의 사진이 걸렸다. 살해 직전 모습이 담긴 영정사진인 셈이다. 사진 속 흑백사진은 픽쳐 포스트(Picture Post)에 한국전쟁시리즈 사진 중 하나로 실렸다. (사진: Haywood Magee/Picture Post/Hulton Archive/Getty Images)
 지난 9일 오전 11시 제17회 한국전쟁기 공주지역 민간인희생자 위령제가 발굴지인 충남 공주시 왕촌 살구쟁이 현장에서 진행됐다. 이날 위령제에도 어김없이 희생자들의 사진이 걸렸다. 살해 직전 모습이 담긴 영정사진인 셈이다. 사진 속 흑백사진은 픽쳐 포스트(Picture Post)에 한국전쟁시리즈 사진 중 하나로 실렸다. (사진: Haywood Magee/Picture Post/Hulton Archive/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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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지역 민간인 희생자 위령제에 매년 등장하는 사진이 있다. 당시 희생자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사진 속 희생자들은 트럭 위에 쪼그려 앉아 있다. 모두 짧은 머리와 같은 옷을 입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얼굴을 확인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중 한 사람이 고개를 들고 있다.

그는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다. 울부짖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트럭 귀퉁이에는 철모를 쓰고 총을 들고 웃음을 짓는 '특경' 완장을 찬 사람도 보인다. 희생자들 뒤로 또 다른 트럭도 보인다.

총을 든 여러 명이 트럭 위에서 희생자들을 에워싸고 있다. 트럭 아래에도 총을 든 경찰의 모습이 보인다. 미루나무 가로수와 강물, 산세도 보인다. 트럭이 멈춰 선 곳 뒤로 보이는 산은 공주 시내와 접한 연미산으로 사진 속 강은 금강이다.

지난 9일 오전 11시 제17회 한국전쟁기 공주지역 민간인희생자 위령제가 발굴지인 충남 공주시 왕촌 살구쟁이 현장에서 진행됐다. (사)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공주유족회(아래 유족회)와 공주민주단체협의회, 공주대학교참여문화연구소 주최하고 공주시가 도움을 줬다.

이날 위령제에도 어김없이 희생자들의 사진이 걸렸다. 살해 직전 모습이 담긴 영정사진인 셈이다. 사진 옆으로 희생자들의 이름을 새긴 위패도 걸렸다. 약 200여 명에 달한다.
 
지난 9일 오전 11시 제17회 한국전쟁기 공주지역 민간인희생자 위령제에 걸린 희생자 명부(위패)
 지난 9일 오전 11시 제17회 한국전쟁기 공주지역 민간인희생자 위령제에 걸린 희생자 명부(위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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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제에는 소재성 공주유족회 회장을 비롯해 김복영 전국유족회장, 전국 각지의 유족회장과 공주지역 시민사회단체 및 시민 등 100여 명이 참석해 희생자의 넋을 위로했다.
 위령제에는 소재성 공주유족회 회장을 비롯해 김복영 전국유족회장, 전국 각지의 유족회장과 공주지역 시민사회단체 및 시민 등 100여 명이 참석해 희생자의 넋을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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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공주시 상왕동 살구쟁이)은 1950년 7월 초 공주형무소 재소자와 국민보도연맹원 등 최소 400여 명이 공주 CIC 분견대, 공주파견헌병대, 공주지역 경찰 등에 집단학살된 곳이다.

진실화해위원회와 충남도는 각각 지난 2009년과 2013년 유해 발굴 사업을 통해 이곳 5개 구덩이에서 모두 397구(2009년 317구, 2013년 80구)의 유해를 발굴했다. 10대로 추정되는 유해도 다수 확인됐다.

소재성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공주유족회장은 인사말에서 "앞에 보이는 사진에는 이곳 살구쟁이 골짜기로 끌려온 희생자들의 마지막 모습이 담겨 있다"며 "고개를 들 수도 없는 살기 띤 분위기에서 총알 세례를 받기까지 이곳이 어디인지, 왜 죽어야 했는지조차 몰랐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곳에서 발굴된 민간인 유해는 397구이지만 희생자는 600여 명에 이르렀다"면서 "혼 나간 공포와 창백한 표정으로 비명을 지르던 마지막 모습이 유가족들의 가슴을 무너뜨리고 있다"라고 심경을 밝혔다.

그는 "희생자들을 위한 작은 위령비 건립사업이 인근 일부 주민들의 반대로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라며 "억울하게 죽은 희생자들이 왜 7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혐오의 대상이 돼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땅값 하락 이유로 위령비 반대하는 주민들
 
6.25 전쟁당시 공주 왕촌 살구쟁이에서 군인과 경찰에 의한 집단희생자들을 기리는 위령비 건립사업을 인근 주민들이 반대하고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지난 3월 초 왕촌 살구쟁이 앞 위령비 건립 예정지 모습.
 6.25 전쟁당시 공주 왕촌 살구쟁이에서 군인과 경찰에 의한 집단희생자들을 기리는 위령비 건립사업을 인근 주민들이 반대하고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지난 3월 초 왕촌 살구쟁이 앞 위령비 건립 예정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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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시는 지난해 하반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공주시협의회가 공주 왕촌살구쟁이 집단희생지 앞에 위령비를 건립하겠다며 보조사업비를 신청하자 7000만 원의 예산을 반영했다. 17제곱미터(약 5.15평) 작은 땅에 작은 위령비를 세워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화해·상생을 도모하는 의미에서다.

하지만 위령비는 아직 세워지지 않았다. 대신 그 자리에 '추모위령비 시공 반대', '공주시청 앞마당에 위령비 세워라', '세금 낭비하는 공주시장 각성하라' 등의 현수막이 내걸렸다. 인근 주민들은 민간인 집단희생지로 인한 이미지 훼손과 주변 땅값 하락을 이유로 위령비 설립을 반대한다. 일부 주민들은 "빨갱이들이 죽은 곳에 무슨 위령비냐"고도 했다.

이날 위령제에는 소재성 공주유족회 회장을 비롯해 김복영 전국유족회장, 전국 각지의 유족회장과 공주지역 시민사회단체 및 시민 등 100여 명이 참석해 희생자의 넋을 위로했다.

태그:#살구쟁이, #공주형무소, #민간인학살, #위령비, #위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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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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