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의 진주> 스틸컷

<진주의 진주> 스틸컷 ⓒ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장편 데뷔작 <잔칫날>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4관왕을 기록하며 부천의 아들로 떠오른 김록경 감독은 두 번째 장편영화 <진주의 진주>를 통해 올해 다시 부천을 찾았다. 죽음에도 돈이 필요한 슬픈 현실을 통해 삶의 희로애락을 담아냈던 김록경 감독은 <진주의 진주>를 통해 그 감정을 다시 한 번 선사한다. 이번 영화의 핵심적인 소재는 '진주'라 할 수 있다. 감독 진주는 영화 촬영을 위해 진주를 향한다.
 
영화 촬영을 일주일 앞둔 진주는 촬영을 약속받았던 카페가 문을 닫으면서 곤란한 처지에 놓인다. 이에 선배는 영화 시나리오에 딱 맞는 좋은 공간이 진주에 있음을 알려준다. 50년 된 전통카페 삼각지 다방은 예술인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다. 50년 역사를 지닌 이곳을 촬영장소로 정하고자 했던 진주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이곳 역시 조만간 문을 닫게 된다는 것이다.
 
사건은 진주가 이곳의 예술인 단체와 만나면서 벌어진다. 삼각지 다방의 단골손님인 이들은 이곳을 보존하기 위해 문화보존장소로 지정해줄 것을 강하게 요구하는 운동을 펼치고자 한다. 얼떨결에 이들과 함께하게 된 진주는 카페 주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노력하던 중 예기치 못한 진실을 알게 된다. 작품은 이 진실을 통해 두 가지 사실에 주목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추억이고 두 번째는 돈이다.
  
 영화 <진주의 진주> 스틸컷

영화 <진주의 진주> 스틸컷 ⓒ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흔히 추억은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소중한 가치라고 한다. 놀랍게도 추억을 지키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진주의 영화 시나리오는 한 소설가가 카페를 향하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소설을 완성하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진주의 아버지다. 가족과의 추억을 영화에 담아낸 진주는 과거 아버지와 함께 향했던 카페를 다시 찾아내지만 그곳은 문을 닫는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다.
 
삼각지 다방 역시 마찬가지다. 카페 사장은 진주를 비롯해 많은 관광객들에게 이곳은 스쳐 지나가는 추억이겠지만 자신에게는 현실이라 말한다. 누군가의 추억을 지켜주기 위해 그 장소를 지키는 사람들에게는 현실을 살아가기 위한 돈이 필요하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고전문화는 국가 차원에서 보호한다. 허나 문화의 역사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이들의 시도는 문화로 보존되기 힘든 게 현실이다.
 
진주는 많은 이들에게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정겨움을 주는 도시다.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면서 향수에 젖어들게 만든다. 이 향수는 두 가지 가치의 충돌을 가져온다. 누군가는 이 향수 속에서 고유한 것을 지키며 살고자 하고, 다른 누군가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벗어나고자 한다. 이 깊은 갈등의 골은 영화를 촬영하는 과정을 통해 표면화 된다. 추억을 카메라에 담고 싶을 뿐인데, 이 추억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영화 <진주의 진주> 스틸컷

영화 <진주의 진주> 스틸컷 ⓒ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단 며칠 사이에 벌어지는 일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진주와 진주 예술인들 사이의 우정은 급격하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들을 연결하는 코드는 추억이다. 진주에게 추억은 과거다. 때문에 필름이란 형태를 통해 간직하고자 한다. 반면 예술인들에게 추억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들은 50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진주의 모습을 이어가고자 한다. 그들에게 삼각지 다방은 지나가는 장소가 아닌 현재 과거 미래가 모두 담긴 집과 같다.
 
진주가 예술가들과 뜻을 완전히 함께하게 된 지점은 논개와 관련된 이야기에서이다. 예술가 중 한 명은 논개에 날개를 달아준 그림을 그렸다고 말한다. 이 지점은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조명한다. 임진왜란 당시 논개는 자신의 목숨을 바쳐 왜장을 무찔렀지만, 현재의 예술인들은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 날개가 달린 논개는 예술적인 상상력과 동시에 어쩌면 이들의 결말이 비극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상징한다.
 
진주는 자연에서 보석 상태 그대로 탄생한다. 어쩌면 추억이란 이 진주와 같을지 모른다. 다만 세상에는 인공적으로 가공해 진주보다 더 가치가 높은 보석들이 많다. <잔칫날>처럼 아이러니한 상황을 통해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아낸 <진주의 진주>는 영화감독 진주가 도시 진주에서 추억이란 소중한 진주를 지키려는 이야기로 감정적인 깊이를 담아낸다. 영화의 공간인 삼각지 다방은 실제 진주에 위치한 곳으로 이 영화를 통해 관람객의 발걸음을 이끌어내지 않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키노라이츠 매거진과 김준모 기자의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진주의 진주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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