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전에 감쪽같이 세상에서 사라진 아이가 있다. 너무 어릴 때 헤어졌기 때문에 지금쯤 성인이 되었다면 부모라도 알아보기 어렵고, 어쩌면 본인조차 기억이 전혀 없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등 현대의 '신기술'을 활용하여 실종된 아이의 2022년 현재의 모습을 재현할수 있다면? 지금은 21살 청년이 되어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을 그에게 보내는 '시그널'이 될 수 있다면? 아직은 희망은 남아있지 않을까.
 
7월 16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악몽이 된 소풍-모영광 군 실종미스터리' 사건을 다시 조명했다. 2003년 10월 10일, 모영광군과 누나 모예송양은 당시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부산 해운대의 한 사찰로 소풍을 떠났다.
 
당시 생후 26개월의 영광군은 12명의 어린이집 아이들 중 가장 어렸지만 누구보다 활발한 성격이었다. 영광이는 당시 인기만화의 한 장면이 새겨진 회색 운동복에 청색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하지만 즐거웠던 소풍은 잠시후 악몽으로 변했다. 자유시간 동안 교사들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영광이는 깜쪽같이 사라져버렸다. 교사들과 아이들은 함께 인근을 뒤졌고 사찰로 올라가 도움을 요청했지만 끝내 영광이를 찾을수 없었다.
 
영광이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은 가족들이 현장으로 달려왔고 경찰에도 신고됐다. 사찰 주변은 빽빽한 숲으로 둘러싸였고 등산로는 외길이어서 밀실과도 같은 구조였다. 경찰에 소방관에 군병력까지 100여 명이 넘지않은 인원이 투입되어 수색에 나섰지만 영광이를 발견할수 없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 SBS

 
어머니 박혜숙씨는 그날따라 영광이가 유난히 가기싫다고 칭얼대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고 고백했다. 활발한 성격의 영광이는 아침마다 어린이집에 나가는 누나를 부러워했다. 박씨는 영광이가 또래보다 어렸지만 발달도 빠르고 이해력이 좋은 것을 보고 어린이집에 보내고 잘 적응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소풍을 간 것은 등원한지 불과 5일 만이었다.

누나도 함께 있으니 설마 별일이 있을까 싶어 마음을 놓았지만, 결국 영광이는 그 소풍 이후 19년째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현재 모영광군은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미제 장기 실종 아동으로 기록에 남았다.

영광이의 실종에는 석연치 않은 의혹들이 존재한다. 많은 인파로 붐비는 시내 거리나 시장, 아이들이 많은 놀이공원도 아니고, 인적이 드문 사찰에서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생후 26개월 아이가 잠깐 사이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어린이집 교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아이가 사라진 것은 불과 10분 남짓한 짧은 시간에 벌어졌다.

그런데 <그알> 제작진은 취재 과정에서 당시 소풍 장소였던 사찰이 '아들 낳는 소원을 이뤄주는 사찰'로 알려졌다는 뜻밖의 사실을 확인했다. 또한 영광이가 실종된 10월 10일은 음력 15일 보름으로 불교에서 법회가 열리는 날이라, 많은 신도들이 사찰을 찾았다. 득남의 기도처로 알려진 사찰에서 음력 보름날 소풍을 와서 사라진 아이, 우연의 일치라기엔 묘한 이야기다.
 
제작진은 당시 어린이집 원장이었던 윤미선씨(가명)를 만났다. 윤씨는 아이를 잃어버린 죄책감에 죄인처럼 살아왔다며 눈물을 흘렸다. 윤씨는 오후 1시반이 넘지 않은 시간에 아이들을 줄세워서 물을 먹이고 있던 상황에서 영광이가 사라진 것을 파악했다고 "진짜 너무 순식간에 아무런 배경없이 아이가 사라졌다. 미스터리고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회상했다.
 
당시 주민들 사이에서 영광이를 봤다는 몇몇 목격담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은 사찰이 있는 산 아래에 위치한 마을의 아파트와 놀이공원이었다. 소풍장소였던 사찰에서 마을까지는 약 1km 정도의 거리였다. 영광이가 홀로 산길을 내려왔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가족들을 더 힘들게 한 것은 허위신고였다. 영광이를 찾는 부모의 애타는 마음을 악용하여 아이를 데리고 있다면서 돈을 요구하는 협박전화가 여러 차례 걸려왔지만 대부분 거짓신고이거나 장난전화였다. 영광이의 부모는 원한관계에 의한 납치 가능성에 대해서도 부정했다.
 
박혜숙씨는 어린이집에서 소풍 일정을 불과 이틀 전에 통보한 것이나, 하필 산중턱의 사찰을 소풍장소로 잡은 데 의구심을 제기했다. 영광이의 실종 이후 1년 뒤에 폐원한 어린이집은 교회 건물 1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원장 윤씨는 사찰행에는 보조교사였던 이은희씨(가명)의 적극적인 제안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공교롭게도 이씨 역시 영광이가 실종될 때 잠시 자리를 비웠던 것으로 드러났다. 박 씨는 소풍 당일날 영광이가 너무 어려서 같이 따라가면 안되겠냐고 제안했지만 만류한 것도 이씨였고. 영광이를 찾을 때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녀는 영광이가 실종된 지 얼마 지나서 부산을 떠났다.
 
제작진은 다른 지역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는 이씨를 만났지만, 그녀는 "끝난 일"이라며 난색을 표시했다. 어렵게 인터뷰에 응한 이씨는 "(영광이 일로) 인생이 망가졌다. 인생이 꼬이려니까 더럽게 꼬이더라"고 이야기했다. 재혼으로 새로운 시작을 꿈꾸며 부산에 내려갔지만 기대와 달리 열악한 경제적 상황 때문에 어려운 생활을 해야했고, 어린이집에 보조교사로 취업한 지 얼마되지 않아 영광이 사건이 터졌다고.
 
이씨가 소풍장소로 굳이 사찰을 추천한 이유는, 이사한지 얼마되지 않아 다른 지역은 잘 몰랐고, 사찰이 있던 산이 집에서 가까워서 남편과도 자주 다니는 곳이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경찰도 처음에 이씨의 행적에 수상함을 느끼고 조사를 시작했지만 별다른 혐의는 발견할 수 없었다고. 전문가들 역시 이씨에게서 뚜렷한 범행동기나 유괴를 기획할 만한 정황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표창원 범죄심리전문가는 "면식범에 의한 계획범죄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하면서 "범죄의도는 없었는데 우연히 모영광군이 혼자 있는 상황에서 맞딱뜨려 아이를 데려갔을 상황"의 가능성에 더 무게를 뒀다. 영광이가 사라진 곳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등산로 앞이지만, 주차창이 있기에 성인이 생후 25개월 정도의 아이를 한순간에 차량 사이로 데리고 들어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게 표창원의 분석이었다.
 
경찰은 2017년 영광이의 누나 모예송양에게 법최면 수사를 통하여 실종 직전 화장실 방향으로 걸어가는 영광이의 모습을 예송양이 지켜보고 있었다는 기억을 끄집어냈다. 당시 물을 뜨러 자리를 비운 이씨를 영광이가 따라가다가 일행으로부터 떨어지며 방향을 잃었을 가능성이 있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영광이를 데려가려고 했다면 바로 이 타이밍이었을 것이다.
 
당시 법회가 있는 날이라 사찰을 찾은 신도들은 수천명이 넘었다. 무려 19년 전의 일이고 수기로 기록했다가 폐기하는 식이라서 당시 사찰을 찾은 이들의 신원은 확인이 불가능했다.

경찰의 수사도 부실 투성이였다. 당시 경찰은 영광이의 실종은 단순 미아로 분류했다. 당시 규정상 8살 이하는 미아, 9살 이상은 가출로 분류했는데, 유괴와 달리 미아와 가출은 그냥 찾거나 돌아오면 된다고 생각했기에 2~3일은 수사없이 기다리는 것이 당시의 관례였다. 그리고 이는 실종 수사에 중요한 골든타임을 놓치는 결과로 이어졌다.
 
또한 실종지인 해당 사찰이 부산에서는 유명한 절이고 '잘못하면 사찰을 공격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는 핑계로 아예 처음부터 신도들을 적극적으로 수사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지금처럼 사찰과 주차장 인근에 결정적 단서가 될 CCTV도 설치되어있지 않았다.
 
어머니 박혜숙씨는 유괴납치 가능성을 고려하여 CCTV나 차량조회 등 적극적인 수사를 경찰 측에 계속 요구했지만 여성청소년과에서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묵살당했다고. 경찰은 2017년에야 재수사를 시작했지만 이미 단서가 대부분 사라진 뒤라 수사를 진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전문가들은 만일 영광이가 유괴 당한 것이라면 해당 장소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의 범행 가능성이 높으며, 유괴는 통상적으로 범인의 거주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영광이의 아버지 모성종씨는 실종 약 한 달 만인 2003년 11월 영광이의 목소리로 추정되는 전화를 받았다고 고백했다. 약 20초 분량의 통화 녹음 파일에서는 아빠를 찾는 아이의 목소리만 들리다가 끊긴다. 영광이의 부모님은 19년이 지난 지금도 목소리의 주인공을 영광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발신번호를 추적한 결과, 해당 전화는 실종지에서 멀지 않은 해운대의 한 공중전화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전문가들이 통화 음성을 분석한 결과, 해당 음성이 영광이와 동일인인 가능성은 100점 만점에 77점으로 나왔다. 90점 이상이면 동일인, 50점이하면 타인으로 분류하는 것을 감안할 때 다소 애매한 점수였다. 전문가는 전화망이라 음성확인에 중요한 고주파가 날아갔다고 아쉬워하며, 반드시 동일인물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유사점도 상당히 많다고 설명했다.
 
영광이가 살아있다면 지금쯤 성년이 되어 군복무 대상 연령대에 해당하는 시기다. 박씨는 지금도 영광이를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군부대를 찾아가 전단지를 돌리기도 했다. 부모와 누나까지 가족 전부가 신장이 컸기에 영광이 역시 장신이 될 확률이 높다고 전망했다.

가족들은 영광이가 어린 시절에 실종되어 기억을 잃었더라도, 성인이 되었으면 자신이 누구인지 의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며 한 가닥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실제로 장기 실종 아동이 성인이 되어 뒤늦게 가족을 상봉한 사례도 적지않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 SBS

 
제작진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성인이 되었을 영광이의 모습을 추정해보기로 했다. 한국과학기술원(KIST) 김익재 소장은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한 나이 변환 기술을 적용해 현재의 영광이를 구현해냈다. 과거에는 부모나 형제자매의 얼굴을 합성했다면 최근 들어 딥러닝 기술이 발전하고 인공지능으로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하여 나이 변화에 대한 특성을 더 잘 반영할 수 있는 '스타일 트랜스퍼' 모델을 구현했다.
 
또한 한양대 장준혁 교수는 '보이스 클리닝' 기술로 영광이의 현재 목소리를 추정해냈다. 물론 나이대별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한계는 있지만, 실제 본인의 외모와 성문 정보를 바탕으로 재현해낸 것이기에 본인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었다.
 
재현된 영광이의 모습은 시내와 지하철의 광고판에 내걸렸다. 22살이 되었을 영광이의 모습이 나타자 박혜숙씨는 화면을 쓰다듬으며 "지금도 부르면 달려올 것 같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박씨는 "화면 속 영광이가 눈을 깜빡거리는 모습을 보니 이제 정말 가까이 온 것 같다. 영광이가 '엄마 꼭 기다려줘'라고 이야기해줬으면 좋겠다"라며 희망을 잃지않았다.
 
19년이라는 이별의 시간동안 가족에 대한 기억도, 본인의 진짜 이름이 무엇인지도 잊어버렸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방송을 통하여 21살의 청년 중 누군가가 자신이 그 '모영광'이었음을 알아차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또한 새로운 신기술이 모영광을 찾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미제로 남은 장기실종아동 문제를 해결하는 데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할 수도 있다. 어딘가에서 살아서 성장했다면 이제 어엿한 성인이 되었을 청년, 영광이가 건강하게 부모님 곁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많은 이들이 지금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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