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7.08 16:00최종 업데이트 22.07.26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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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9일 오후 2시 32분] 

공공기관의 공공언어는 일방적 언어가 아니라 나눔과 소통의 언어여야 한다. 최근 공공언어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됨에 따라 공공기관의 정책명, 알림글, 안내말이 주목받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공공언어 바로잡기에 앞장서고 있는 국어문화운동본부와 서울시 대중들이 자주 이용하는 공공기관의 언어 사용 실태를 점검하는 특집 연재 기사를 마련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공공언어가 갖추어야 할 정확성과 소통성을 갖추고 있는지를 국민의 문식성 차원에서 짚어보기로 한다.

한국다움의 상징, 서울역사박물관도 영어 남용
 

서울역사박물관 입구와 현수막 ⓒ 최준화


제일 먼저 서울시민의 사랑을 많이 받는 서울역사박물관(관장 김용석)을 6월 30일과 7월 6일과 7일, 세 차례 방문하여 두루 살펴봤다. 이곳은 종로구 새문안로 55번지로 큰길 바로 옆에 있어 눈에 시원스레 띄는 곳이다. 입구 정면에는 현재 기획전시실에서 전시 중인 "명품 도시 한양" 안내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개관 20주년 대형 전시인데 전체적으로 보면 한글과 영문자를 병용하고 있다. '20주년'과 요일 표시는 아예 영어(ANNIVERSARY, Fri, Sun)로만 쓰여 있다. 'Treasure of Hanyang'(한양의 보물)은 아주 작게 쓰여 있어 외국인을 배려한 영어 병기라고 보기도 어렵다. 전시장 안에는 한양을 '漢陽'으로만 표기하고 있어 사실상 세 문자(로마자, 한자, 한글)를 병기하고 있는 셈이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박물관으로 역사를 통해 한국다움을 드러내야 하는 곳이다. 기념품 가게 이름을 '뮤지엄숍'이라고 외국어로 지을 필요가 없다. 외국인들은 한국다움을 보러 온 것인데 한국에 와서 맨하탄스러움을 본다면 얼마나 실망스러울까? 외국인을 위한 것이라면 영어 혼용이 아니라 영어 병기로 다른 외국어를 고려해 표기해야 한다.

공감하기 어려운 전시 안내 설명글
 

도표 대체 이미지 ⓒ 김슬옹


입구 오른쪽에는 '광화문의 콘크리트 구조 부재'라는 전시물이 눈에 들어왔다. '부재'가 무엇인지 본문을 아무리 읽어도 이해하기 어려워, 사전을 찾아보니 부재(部材)는 "구조물의 뼈대를 이루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는 여러 가지 재료"라고 한다. 건설 분야 전문용어인 셈인데, '콘크리트 구조물'이라 하든가 아니면 '콘크리트 구조물 조각'이라는 일상어로 표현해야 한다.

더욱 아쉬운 것은 서울역사박물관 입구에 있는 대표 안내글인데 쉽게 뜻을 알 수 없는 비문이 있다. 첫 문단의 '콘크리트 광화문'은 두 번째 문단에 설명이 나오기는 하지만, 광화문 역사 지식인 부족한 학생이나 일반인들한테는 황당한 표현으로 다가온다. '박정희 정부 시절 콘크리트로 복원한 광화문'으로 구체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마지막 문단의 "조선과 장인기술과 같은 개념을 긍정적으로 사용했던 1960~1970년대 시멘트 생산정책에 따라 지어진 콘크리트 구조 문화재 중건을 재조명할 수 있는 귀중한 사례이다"라는 문장은 사전을 아무리 찾아봐도 정확히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이다. '조선'이란 말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고, 이런 개념을 누가 긍정적으로 생각한 것인지, 왜 이런 개념이 시멘트 생산정책에만 연결된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서울시역사박물관 외부 전시물 안내판을 살펴보고 있는 학생들(구일중) ⓒ 최준화


가독성을 높이는, 글쓰기의 기본인 문단 들여쓰기조차 하지 않아 더욱 아쉽다. 수행 학습을 위해 친구들과 이곳을 방문한 구일중학교 장지혁 학생(1학년)은 "전문적인 단어들이 쓰이다 보니까 전문 지식이 먼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장지혁 학생은 친구들과 한목소리로 쉬운 안내문이면 역사 유물과 더 친근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문제에 대해 보존과학과 관계자는 2018년 설치 당시 이 분야 관련 학계 전문가에게 의뢰하다 보니 생긴 문제라고 밝혔다. 특히 한자어로 된 전문 용어의 경우 실제 현장에서는 어려움이 많다면서 최대한 관람객 수준에서 다듬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주로 문화재 안내문이 많은데, 일부 안내문이 난해한 문장뿐 아니라 어려운 한자어로 구성되어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와 함께 박물관에 방문한 한 가족(서울시 구로구 고척동)은 안내문 내용이 많고 길어서 내용 파악이 어렵고, '훼철', '준설', '환어' 등 어려운 용어로 쓰여 읽기가 어렵다고 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서울시의 역사를 알리기 위한 장소로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모든 시민에게 개방된 공간이니 되도록 쉬운 어휘로 읽기 편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성벽 훼철 결과'와 같은 표현은 '성벽을 헐어서 치운 뒤'와 같이 풀어쓰는 것이 적절하다.

좀 더 배려해야 할 누리집 언어
 

서울역사박물관 누리집 알림글 ⓒ 김슬옹


누리집은 그 기관의 얼굴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하므로 역시 언어 사용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큰 문제는 없으나 관습적으로 또는 상투적으로 표현한 문구들은 고칠 필요가 있다. 이를 테면 서울역사박물관 누리집의 '박물관 설립 목적' 가운데 "서울을 대표하는 문화기관으로서 서울의 이미지를 제고하여 세계 속의 서울의 위상을 높임"이라는 항목에서 '서울의 이미지를 제고하여'라는 표현은 '서울 이미지를 높여'와 같이 바꾸면 더 좋다.

'안전신고센터 운영 알림'에서 "박물관내 위험요인 발견시 신고"는 공공기관의 상투적인 표현으로 "박물관 안에서 위험이 발견될 때는 얼른 신고"라는 식으로 바꾸면 실제 안전에 도움이 된다. 문제는 현장에서 위험이 발생할 때 이와 같은 온라인 신고는 불필요하고 이 알림글의 목표도 그런 내용이 아니라는 데 있다.

위 안내를 눌러 들어가면 "본 게시판은 박물관의 위험요인(넘어짐, 끼임 등) 발견 시 신고하실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많은 직원 및 관람객분들의 참여를 바랍니다"라고 되어 있다. 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또는 사건 후 개선 건의안을 안내하는 글이므로 이에 맞게 정확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서울시민이 만들어 가는 서울의 박물관"을 크게 내세우고 있다. 그렇다면 모든 시민을 고려한 언어를 사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 마침 전반적으로 관람객 수준으로 언어 표현을 수정 보완하고 있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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