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18년 2월 9일 오후 강원도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KOREA' 피켓과 한반도기를 앞세운 남북 선수들이 공동입장하고 있다.
 2018년 2월 9일 오후 강원도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KOREA" 피켓과 한반도기를 앞세운 남북 선수들이 공동입장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관련사진보기


지난 7월 22일 통일부가 국정추진계획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추진계획 중 눈에 띄는 것은 통일방안에 대한 새로운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부분이다. 우리 정부의 공식적인 통일방안은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1994년 8월 15일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제시한 것으로, 1989년 9월 11일 노태우 정부가 제시한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계승·발전시킨 것이다.

통일부는 2024년 '민족공동체통일방안 30주년'을 계기로 새로운 통일방안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30년간 한반도 주변 정세와 남북관계는 몰라보게 달라져 있다. 그만큼 새로운 통일방안에 대한 논의는 불가피해 보인다. 이 글에서는 통일방안 논의에 앞서 필요한 고민들, 즉 ①통일논의에서 시민사회의 역할, ②닫혀 있는 단계적 통일방안의 문제, 그리고 ③영토적 통일논의의 한계에 대해 질문하려 한다.

2022년 현재, 1994년으로부터 무엇이 변했는가?

현재의 한반도는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만들어진 1994년과 무척이나 다른 모습이다. 첫째, 국제정세를 보자. 동서냉전은 1980년대 후반부터 해체되기 시작했다. 소련은 붕괴되었고 동유럽사회주의는 체제전환의 길을 택했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적극적인 북방정책을 통해 한-소, 한-중 수교를 이루어냈다. 한국은 한반도에서 새로운 변화를 주도했으며 이는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의 체결로 이어졌다.

그러나 2022년 현재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는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위협받고 있으며 미중갈등은 전면적으로 확대되는 모양새다. 미중갈등과 우크라이나 전쟁은 한반도에서 과거의 북방삼각연합(북-중-러)과 남방삼각연합(한-미-일)이란 냉전의 추억을 소환하는 듯하다. 다만 이러한 갈등은 전통적 안보의 영역을 넘어 4차 산업시대의 다차원적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둘째, 우리는 핵을 가진 북한을 상대하고 있다. 1993년 촉발된 북핵위기는 김일성 주석의 사망과 식량난 속에 무너져가는 북한의 마지막 지푸라기처럼 보였다. 1994년 10월의 북미 제네바 합의는 어차피 붕괴될 북한을 연착륙시키기 위한 전략과 같았다.

그러나 2022년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누구도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지만,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핵을 가진 북한을 상대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북한이 하노이 북미회담(2019년) 결렬 이후, 미국이 아닌 핵을 통해 스스로의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선언한 점이다.

셋째, 통일은 더 이상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무조건적인 목표가 아니다.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우리 국민의 지지는 지속적으로 하락해 왔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2021년 통일의식조사에 따르면, '통일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44.6%, '필요치 않다'는 의견은 26%였다. 이는 2007년 같은 질문에 대해 통일이 필요하다고 응답(63.8%)한 수치에서 19.2% 낮아진 결과다.

지난 7월 14일 4개 여론조사기관이 실시한 전국지표조사(NBS)에 따르면, '통일이 되지 않고 현재 상태로 살아가도 된다'는 응답자가 56%로, '반드시 통일이 되어야 한다'(41%)는 응답보다 많았다. 또한, 향후 남북체제는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한 2국가'가 52%로 가장 높았고, '통일된 단일국가'는 18%에 그쳤다. 평화공존에 대한 지지는 젊은 세대로 갈수록 더 높아지고 있다.

통일방안 논의에 앞서 필요한 고민들

연말 행사로 치러지던 '새해 소망' 조사에서 '조국통일'이 늘 1위를 차지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통일은 새해 소망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주변 상황도 좋지 않다. 아니 그 어느 때보다 최악의 상황이다.

이제 현실을 받아들이고 통일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첫째, 이제 통일은 당연하지 않다.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인다면 통일에 대한 사회적 논의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 통일은 더 이상 정치권만의 어젠다가 아니다. 통일은 남북 사회구성원 전체의 어젠다이며 그들은 이 논의에서 분명한 역할을 공유할 권리와 책임이 있다.

'시민참여형 통일'을 강조해 온 백낙청은, 통일이 "점진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일반 시민의 참여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질 것이며, "'과정'과 '종결점'의 구분 자체가 모호한 상태에서 그 과정의 실상에 따라, 즉 사람들이 얼마나 참여해서 어떻게 해가는가에 따라 통일이라는 목표의 구체적 내용마저 바뀔 수 있는 개방적 통일"이 될 것이라 강조했다.(백낙청, <어디가 중도이며 어째서 변혁인가>. 파주: 창비, 2009) 통일은 한반도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문제인 것이다.

통일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는 상황에서 통일, 그리고 북한에 대한 교육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우리 공교육체계에서 통일과 북한교육은 정규 교과목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북한에 대해 이해하지 않고, 통일을 논의하는 현실은 분명 개선되어야 한다.

둘째, 지금과 같이 통일환경이 악화된 상황에서 통일의 모든 과정을 방법론적으로 체계화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변화된 환경을 반영한 통일의 원칙과 이행전략을 구상하되, 통일의 초기 단계에 초점을 맞추고 중간, 최종 단계에서 현실을 반영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둘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최근 남북의 평화공존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높아지고 있다. 이는 현재의 한반도와 남북관계, 북한의 상황, 그리고 우리 국민의 통일에 대한 인식이 복합적으로 반영된 결과다. 결국 통일을 위한 초기 단계에서 평화공존 내지 남북연합 단계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셋째, 영토적 통일의 공간적 폐쇄성을 해체해야 한다. 물리적 공간이 남북관계, 아니 국제관계를 규정하던 시대는 지났다. 남북의 문화컨텐츠가 남북 당국의 감시를 피해 국경을 넘은지 오래고 남북으로 갈라진 가족이 이동통신으로 연결된지도 오래다. 그뿐인가? 디지털 공간에서 남북은 다양한 행위자들에 의해 이미 통일을 경험하고 있다.

통일방안의 논의에서 우리는 새로운 공간에서 진행되고 있는 통일의 다양한 실험들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물론 통일은 영토적 통일에 기반할 것이다. 그러나 통일의 과정은 보이지 않는 다양한 공간에서 이미 현재진행형이다. 필자는 남북의 교류협력 공간으로 디지털 공간의 활용을 제안한 바 있다.('팩스는 이제 그만, 한반도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하자', http://omn.kr/1zf77) 기술의 발전은 남북 당국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안내할 것이다. 우리가 준비하는 통일은 이러한 변화를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추가적으로, 우리는 '핵을 가진 북한과 통일을 논할 수 있는가?'에 대해 답해야 한다. 이 또한 열린 토론의 주제이다. 다만, 한반도 비핵화가 통일의 과정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임은 분명하다. 이는 한반도 평화체제, 나아가 동북아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관련하여 한반도 비핵화 방안에 관한 논의는 별도의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통일방안에 대한 생산적인 논의를 기대하며

현재 우리 정부의 공식적인 통일방안은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다. 이제 새로운 통일방안을 논의함에 있어 변화된 상황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지, 그 변화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 먼저 고민할 필요가 있다. 통일은 우리 사회, 우리 민족에게 긍정의 어젠다이다. 통일방안의 논의가 이념과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민족의 화해와 번영을 설계하는 생산적인 논의가될 수 있도록 준비하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남북물류포럼 [KOLOFO 칼럼]에 공동 게재된 글입니다.


태그:#통일방안, #민족공동체통일방안, #통일부, #남북관계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정일영 연구교수입니다. 저의 관심분야는 북한 사회통제체제, 남북관계 제도화, 한반도 평화체제 등입니다. 주요 저서로는 [한반도 오디세이], [북한 사회통제체제의 기원], [평양학개론], [한반도 스케치北], [속삭이다, 평화] 등이 있습니다. E-mail: 4025102@hanmail.net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