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3.10 19:38최종 업데이트 22.03.15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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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는 인간사의 축소판이다. 셰익스피어 비극에서 볼 수 있는 믿음과 배신, 애정과 증오, 열광과 비난, 희망과 절망이 극적으로 교차한다. 상대를 향한 분노에 치를 떨고, 서로 다른 정의감으로 주먹을 불끈 쥔다.

반전은 없었다. 한쪽은 진작 확신하고, 다른 한쪽은 은근히 기대했지만. 이재명 후보에게는 불운하게도 애초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손님 실수' 덕분에 최대한 따라붙었지만, 거기까지였다.

윤석열의 승인, 이재명의 패인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새벽 서울 여의도 당사 앞에서 마련된 특설무대에서 지지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당선 인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당분간 윤석열 후보의 승리에 대해 이런저런 분석이 쏟아질 거다. 그런데, 복잡하게 얘기할 것 없다. 민심이다. 거창하게 표현하면 시대정신이다. 반대쪽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하긴 시대정신이라고 늘 정의롭거나 합리적이지는 않으니까.

민심은 거스를 수 없는 강물의 흐름이다. 그 물줄기를 인위적으로 되돌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번 대선에서 조금 더 두드러진 면이 있지만, 정권 심판과 정권 재창출의 대결은 늘 뜨겁고 날카로웠다. 가슴 속 뜨거운 피를 빼고 얘기하자면, 그 싸움에서 전자가 이긴 것뿐이다. 진보적 보수와 수구적 보수, 또는 좌파적 보수와 우파적 보수의 공수교대일 뿐이다.

이재명 후보의 패인을 구구절절 분석하는 건 부질없는 짓이리라. 책임론에서 후보 개인도 자유로울 수 없지만,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잘못이 크다는 점은 겨울이 지나 봄이 오는 것만큼이나 분명하다. 무능과 오만, 무사안일과 무책임 앞에 '촛불'은 꺼지고 '180석'은 빛이 바랬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0일 새벽 서울 영등포구 당사에서 대선 패배를 선언한 뒤 인사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청와대에서 열린 영상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다들 알다시피, 윤 후보가 이긴 것은 정권교체 열망 덕분이다. 후보 본인의 인기나 경쟁력은 부차적인 요소다. 이걸 혼동했다가는 집권 초부터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승인에 대한 냉정한 분석과 겸허한 성찰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윤석열'을 원했다기보다는 민주당 정권이 싫었다는 거니까.

세대별, 성별 대결 양상도 보였지만, 핵심은 역시 진영 대결이다. 이번 대선처럼 지지층 결집이 극단으로 치닫는 경우 중도층 표심이 승패를 가른다는 건 상식이다. 양비론에 익숙한 중도층은 이념보다 실용을 중시한다. 정파성이 엷기에 양극단을 싫어하고, 정치/사회/경제적 가치관도 가변적이다.


중도층은 '촛불'을 간접적/소극적으로 지지한 사람들이다. 사실 문재인 정부는 '촛불'의 주도자가 아니라 수혜자였다. 그걸 착각하다 보니 오만하고 안일했다.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중도층은 현 정권에 크게 실망했다. 부동산 대란으로 대표되는 경제 실정에 '현타'가 온 것은 중도층만이 아니었다. 일부 지지층도 그랬다.

그럼에도 초접전 승부가 펼쳐진 것은 중도층 표심이 적당히 분산됐기 때문이다. 이재명 후보의 실용주의, 승부처로 꼽힌 2030 세대의 성별 분산, 단일화 역풍 등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여권의 '내로남불'에 비견된 '윤로남불'도 빼놓을 수 없다. 이른바 '본부장(본인, 부인, 장모)' 의혹은 국민적 관심사였다. 정권을 잡았다고 해서 적당히 덮을 일이 아니다. 두고두고 시빗거리가 될 수 있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면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선거 당선인이 10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현충탑 참배를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국민 화합을 위해서라도, 안정적인 정권 출범을 위해서라도, 그간 제기된 본인과 처가 비리 의혹을 털고 가야 한다. 도의적 차원에서 대국민 사과부터 하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 지난 칼럼에서도 언급했지만, 사과하면 비난이 덜해지고, 사과하지 않으면 비난이 오래간다.

특검(?)을 비롯한 수사기관 조사에도 협조해야 한다. "법 앞에서 누구나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자신의 말이 허구적 수사가 아님을 보여줘야 한다. 시시비비를 가리되, 과장과 오해가 있었다면 소명하면 된다. 판단은 그를 선택한 국민의 몫이다.

정치보복 우려를 해소하는 것도 중요하다. 윤 당선인은 "문재인 정권의 적폐를 수사하겠다"고 공언했다. 권력형 비리 등 중대 불법 행위에 대한 수사는 불가피하더라도 의도적인 기획수사나 정치적 보복으로 비칠 수사는 지양해야 한다. 소모적인 대립과 분열을 막기 위해서라도 정치보복은 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밝혀야 한다.

수사 당위성을 떠나 대통령이 검찰을 좌지우지할 것 같은 인상을 준 것은 부적절했다. '검찰공화국 후보'라는 세간의 부정적 평을 줄이지는 못할망정 외려 보태는 건 '검찰 정치'에 대한 우려를 심화시킬 소지가 있다. 나아가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그토록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해 놓고 대통령과 검찰이 한 몸으로 움직인다면 국민이 용납하겠는가?

가장 시급한 과제는 뭐니 뭐니 해도 민생 안정이다, 그중에서도 '코로나 민심'을 추스르는 것이다. 코로나 대응 정책은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실정으로 꼽힌다. 방역은 잘했으나 손실보상에서 실패한 탓이다. 부동산으로 잃은 민심을 코로나로 회복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탁상공론으로 실기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보다 안정적인 재정 수치를 중시하는 관료주의적 발상은 수백만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분노를 자아냈다. 이재명 후보로서는 땅을 칠 일이다. 그 점에서는 일찌감치 '50조 지원'을 약속한 윤 당선인이 한발 앞서간 면이 있으니, '민생 우선'이라는 기대에 부응하면 된다.

무엇보다도 역대 최소 득표 차이로 승리한 만큼 국민 앞에 겸손해야 한다. 비판세력을 포용하는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다수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도 잘 풀어가야 한다. 윤 당선인의 공약 중 상당수는 법이 뒷받침돼야만 가능하다. 대화와 타협이 불가피하다. 이는 국민화합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언론 문제다. 아무리 '기레기' 소리를 듣는다 해도 언론의 사회적 기능은 여전히 소중하다. 비판 보도나 의혹 보도를 뚜렷한 근거도 없이 정치공작으로 여기는 언론관은 바꾸는 게 좋겠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원한다면 말이다. 언론은 적이 아니라 비판적 동반자다. 시대정신은 절대 권력자가 아닌 민주적 지도자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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