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29 14:11최종 업데이트 22.08.29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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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소식을 보내오는 시민기자들과 함께 '2022 글로벌 리포트 : 불타는 지구... 이상기후 현장을 보다'를 내보냅니다. 폭염, 폭설, 산불, 홍수와 같은 각종 이상기후 현상과 현지인들의 반응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이에 대한 각국 정부의 대응, 전문가들의 진단을 소개합니다.[편집자말]
영국 기온이 최고를 찍은 다음날인 7월 20일, 생사 여부를 묻는 문자를 교환하던 중 친구가 "기후 변화는 진짜야. 막을 수 없을 것 같아"라며 사진을 한 장 보냈다. 사진 속 불타는 집과 숨 막히는 연기, 초록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가물은 정원은 어딜 가나 이끼가 잔뜩 끼어있던 축축한 영국 이미지와 거리가 멀었다. 황막한 풍경 위로 "부싯돌 상자 영국, 기록적인 40.3도에 불붙다"라는 문구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영국 기온이 최고를 찍은 다음날인 7월 20일, 아이뉴스 헤드라인. 황막한 풍경 위로 "부싯돌 상자 영국, 기록적인 40.3도에 불붙다"라는 문구가 쓰여있다. ⓒ Inews.co.uk

  
40.3도.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의 기후학자 프리데리케 오토(Friederike Otto)가 <비비시> 인터뷰에서 "기후 변화가 아니고는 (영국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말한 기온이다. 기존의 최고 기온인 2019년 7월의 38.7도 기록을 3년 만에 1.6도 가까이 갱신했다. 이 기록이 언제 깨질지는 모르겠지만 폭염과 가뭄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을 것은 확실하다.

영국 기상청에 따르면, 1884년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더운 여름 톱10은 모두 2002년 이후다. 최근 30년(1991-2020)은 이전 30년(1961-1990)에 비해 기온이 0.9도 상승했다. 그리고 향후 50년 간 겨울은 기온이 1-4.5도 올라가고 강수량이 30% 증가하는 반면, 여름은 1-6도 올라가고 60% 이상 더 가물 것이라 내다보았다.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과는 별도로 기후 변화는 "새로운 일상"을 형성하고 있다. 이미 진척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영국은 당연시되던 문화에 의문을 제기하고 생활양식을 조정하는 대화를 시작하고 있다. 교복과 정원이 대표적이다.

치마 입고 학교 간 남학생들

7월 18-19일의 폭염은 며칠 전부터 예고되었다. 교육부는 주의 사항을 정부 웹사이트에 올렸다. 학교 재량으로 휴교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했고, 폭염 속 체온 조절에 취약한 아동들에 대한 대책을 반드시 세우라는 것이었다.

30도가 넘는 곳에서는 외부 활동 자제하고 그늘에 머물게 하며 차가운 물을 구비해 두라고 당부했다. 안전 문제가 없다면 밤에 교실 창문을 열어 둘 것을 권장했고 35도가 넘으면 선풍기가 탈수를 유발한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더위 먹었을 때 나타나는 신체 반응, 응급 처치법을 공지했다.

교육부의 우려와 달리 문제는 중고등학교 교복에서 발생했다. 영국의 교복 문화는1552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최초로 교복을 입었다는 자부심으로 16세기 교복 스타일을 고수하는 크라이스트 호스피털(Christ's Hospital),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19세기 교복을 유지하는 사립학교도 있지만, 대부분의 학교는 대체로 사회 흐름에 맞게 간소화시켰다. 하의는 치마/긴 바지, 상의는 블라우스/흰 셔츠와 넥타이, 재킷이고 검정 구두다. 구두에 대해서는 상당히 엄격해서 운동화도 안 되고 갈색 구두도 안 된다.

긴 바지가 문제가 됐다. 여학생들은 치마를 입을 수 있지만 남학생을 위한 반바지는 규정에 없었다. 이제껏 긴바지는 문제가 된 적이 없었다. 영국은 절대 다수의 집에 에어컨이 없을 정도로 여름이 짧고 30도를 넘는 날이 드물었다. 그 짧은 더위도 여름 방학과 겹쳤다. 이렇듯 하복/동복의 개념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남학생들은 5월이 되면 짙은 회색 긴 바지에 넥타이 없이  흰 셔츠 소매를 걷어 입도록 되어 있었다.

하지만 여름마다 무더위가 반복되자 엑서터의 이스카(Isca) 학교가 처음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2017년 6월 22일,  30명 이상의 남학생들이 '남학생에게 반바지 교복을 허하라!'라는 취지로 여자 친구나 여자 형제의 교복을 빌려 입고 등교했다. 이들은 맨다리로 등교할 수 있는 여학생들과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반바지를 입게 해달라고 건의한 바 있다. 학교 측은 교복 규정에 반바지가 없으니 불가능하다며 남학생들도 교복 규정에 나와 있는 스커트를 입을 수 있다고 답했다.
 

여름마다 무더위가 반복되자 2017년 6월 22일, 30명 이상의 남학생들이 '남학생에게 반바지 교복을 허하라!'라는 취지로 여자 친구나 여자 형제의 교복을 빌려 입고 등교했다. ⓒ BBC 화면캡처

 

그러자 남학생들은 치마를 입고 등교했다. 어떤 이는 치마 속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는 소감을 남겼다. 어떤 이는 용모 단정 원칙(Beauty policy)에 걸리지 않을까하는 우려로 다리털까지 밀고 치마를 입었다고 밝혔다. 청소년들의 유쾌한 반란에 부모들도 학생들을 지지했고 학교 측은 여름에 국한시키는 조건으로 반바지를 교복에 정식으로 추가했다.

한 사례에 불과했던 2017년 남학생 교복 문제는 2022년 7월 다발적으로 일어났다. 폭염에 기존 교복을 잘라 반바지로 만들어 학교에 보냈더니 아이가 집으로 되돌아왔다는 소식이 있었다. 선생님한테 걸려서 학교에 있던 여벌 바지로 갈아입었으나 너무 짧고 끼어 고생했다는 학생 이야기, 끝까지 갈아입기를 거부해서 훈육실에서 벌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보도되었다. 교복 규정에 반바지가 명시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처음부터 스커트를 입고 등교했다는 남학생도 있었다.

남학생들의 긴 바지 교복 거부는 영국 중고등학교 교복 문화에 변화를 가지고 올 수도 있다. 수백 년 전통에 사활을 거는 사립학교가 아닌 한 반바지 추가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좀 더 개방적인 학교라면 "젠더 뉴트럴 유니폼"을 표방할 수도 있다. 여학생은 치마, 남학생은 바지라는 규정 없이 학생 선택에 맡기는 안으로 여학생도 바지를, 남학생도 치마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정책이다.

이와 관련해서 지난 5월, 스코틀랜드 장관 니컬라 스터전은 학교 교복 개선책의 일환으로 "불필요하게 남녀가 어떠한 것을 입어야 한다"는 조항을 없앨 것을 시사한 바 있다.
 

그늘 아래서 더위 피하는 영국 남성 ⓒ 연합뉴스/EPA

 
가뭄에 "국민적 취미"도 달라져

폭염 경보가 발효 중인 8월 12일, 영국 환경청은 잉글랜드 14개 중 8개 지역에 가뭄을 공식 선언했다. 올해 잉글랜드 강수량은 예년에 비해 35%에 불과한데다 이번 7월은 1935년 이래 가장 건조, 평균 7월 강수량의 10%에 그쳤다. 빠른 속도로 내려가는 저수지 수위에  당근, 양파, 사과 등은 10-50% 생산 감소가 예상되며 소의 사료 부족으로 우유 생산량도 줄어들고 이미 작년에 비해 500건이나 더 발생한 화재 우려 속에 내려진 결정이었다. 영국 기상청은 가뭄이 10월까지 계속될 수 있다고 했다.

이번에 발표된 가뭄은 4단계 중 3단계에 해당한다. 3단계는 "기본적인 식수 제공은 문제없는" 단계지만 물 회사는 정부 허가 하에 강물을 좀 더 끌어올 수 있고 시민들의 물 사용을 규제할 수 있다. 규제 중의 하나가 호스 사용 금지다. 정원에 호스로 물을 줄 수 없고 개인 세차 및 유리창 청소가 금지된다. 가뭄 선포 후 몇몇 물 회사는 호스 사용 금지를 시작했고 1500만 명 런던 시민의 물을 공급하는 템스 워터(Thames Water) 역시 수주 안에 호스 사용 금지를 발표할 것이라 했다.  
 

애슈턴 킨스 지역에 바닥이 보이는 템스강 12일(현지시간) 템스강 수원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애슈턴 킨스 지역에도 강이 말라 바닥이 드러나 있다. 2022.8.16 ⓒ 연합뉴스

 
정부 발표에 맞춰 물 절약 방법이 속속 나오고 있다. 기후 변화와 환경 보호를 목표로 물 절약 운동을 전개하는 워터와이즈(Waterwise)는 화장실 변기에서 새는 물 확인하기, 물 사용을 확인할 수 있는 미터기 설치, 가정집 물 소비량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샤워를 5분 이내로 하기 등이다.

눈에 띄는 부분은 정원에서의 물 절약이다. 2020년 영국 정부 통계(Office for National Statistics)에 따르면 영국 전체 주택의 88%가 크든 작든 개인 정원을 가지고 있다. 가드닝은 "국민적 취미"로 불리는데, 전체 인구 6700만 중 가드닝 인구가 약 2700만 명에 달한다.  원예산업연합(Horticultural Trade Association)에 따르면 2019년 가드닝 시장은 약 45조 규모에 달하고 약 67만 명이 가드닝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같은 정원을 향한 사회적 애착을 가리켜 혹자는 영국이 정원에 "강박 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묘사할 정도다.

정원이 가뭄 관리에 차지하는 큰 비중에 왕립원예협회(Royal Horticultural Society, RHS)도 나섰다. 왕립원예협회는 첼시 꽃박람회를 주관하는 곳으로, 약 50만 명의 회원에게 가드닝과 관련된 최신 정보를 제공한다.

협회는 물을 현명하게 쓸 시기임을 강조했다. 호스 1시간은 4인 가족이 이틀 쓰는 물의 양으로 호스대신 캔을 사용하고 식물들이 낮을 견딜 수 있도록 아침에 물을 주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타들어가는 잔디에 물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과감히 말한다. 잔디는 생각보다 강해서 비가 오면 금방 초록을 되찾는다는 설명이었다. 또 비누와 세제는 식물에 해를 끼치지 않으니 부엌, 빨래, 목욕에서 나온 물을 재활용하라고 권고했다. 마지막으로 식물도 적응력이 있다면서 물을 조금씩 줄여나가는 식으로 훈련시키라고 했다.  
 

정원이 가뭄 관리에 차지하는 큰 비중에 왕립원예협회(Royal Horticultural Society, RHS)도 나섰다. 왕립원예협회는 첼시 꽃박람회를 주관하는 곳으로, 약 50만 명의 회원에게 가드닝과 관련된 최신 정보를 제공한다. ⓒ RHS

 
사실 협회는 기후 변화가 대두된 이후 정원, 온도, 물을 탐색해 왔다. 2001년 협회 소유 하이드 홀에 '건조한 정원(dry garden)'을 조성, 지중해 지역, 호주, 아프리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자라는 식물과 꽃으로 채우고 22년간 인위적으로 물을 주지 않은 채 관찰했다. 그리고 기후학자, 식물학자, 조경학자들과 협동해 2017년 <변화하는 기후 속의 가드닝(Gardening in a Changing Climate)>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에서 협회는 냉정하다. 강력한 기후 관련 규제안이 실시되더라도 1.5도에서 2도 가량의  온도 상승은 불가피하고 이로 인해 영국이 가뭄과 홍수 등 극단적 날씨를 겪게 될 것은 자명하다고 판단한다. 이 상황에서 정원이 가뭄과 홍수 등 극단적 날씨에 미리 대비하고  탄소 격리(carbon sequestration) 및 야생 식물의 서식처를 제공하는 주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 말한다.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가드닝을 위해 4R(reduce, reuse, recycle, reinvest)을 호소했다.

보고서에서 협회는 또 담담하다. 가든은 "변하는 패션과 삶의 자세를 반영하는 곳"으로 디자인과 내용물은 "가능한 것과 바람직한 것의 상호 작용"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단풍 나무를 정원 한구석에 심으면 홍수 조절에 도움이 되고 초록 담쟁이류를 심으면 여름 실내 온도를 낮추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조언한다. 더위와 가뭄에 강한 것으로 라벤더(lavendula), 아몬드, 시트러스, 로즈메리, 사루비아 등을 추천했다. 여기에 열과 가뭄에 약한 장미와 양귀비 등 전통적으로 영국을 대표하는 꽃은 없었다.   

사회 문화 영역이 조용히 움직이는 가운데 정치 영역에서는 몇 번의 큰 논쟁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50년 탄소 중립을 선언한 보수당 정부는 2020년 말 '그린 산업 혁명을 위한 10가지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노동당과 녹색당은 한발 더 나가 횡재세 도입, 탄소세 부과, 철도 재국유화, 수도 산업 국유화 등을 띄우고 있다. 이 논의들은 새로운 총리가 정해지는 9월 초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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