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 전도연, 김남길, 임시완 등 명성이 대단한 배우진이 총출동한 한재림 감독의 <비상선언>이 의외로 고전하고 있다. 스타성 있는 배우들에 발전한 영화기술까지 총동원됐음에도 지울 수 없는 식상함이 있다는 혹평이 따라붙은 탓이다.

불행히도 이 같은 비평엔 이유가 아주 없지 않다. 최소한 비행기 공중 납치라는 설정이 벌써 수십 년 째 반복되어온 흔한 소재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비행기를 납치하는 영화가 얼마나 많았기에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걸까. 그중 최고의 작품은 대체 무엇이고. 이번 '씨네만세'에서 잠시 살펴보기로 한다.
 
에어포스 원 포스터

▲ 에어포스 원 포스터 ⓒ 컬럼비아 픽처스

 
비행기 납치 액션 끝판왕

항공기 납치 영화 중 다른 영화의 참고가 될 만큼 알려진 작품목록은 다음과 같다. 물론 모두 할리우드 영화다. 1993년 작 <패신저 57>, 1996년 작 <파이널 디씨전>, 1997년 작 <에어포스 원>과 <콘에어>, 2014년 작 <논스톱>이다. 웨슬리 스나입스, 커트 러셀과 스티브 시걸, 니콜라스 케이지와 존 쿠삭, 리암 니슨 등 액션에 친숙한 당대 스타배우가 출연했단 게 공통점이다.

여기서 살펴보듯 항공기 납치물의 전성시대는 1990년대 말, 그중에서도 1997년이었다. 이 해 개봉한 두 편의 영화는 각 3억 달러와 2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는 성공을 거뒀다. 특히 <에어포스 원>은 3억1500만 달러의 총 매출을 기록했는데, 같은 해 1위부터 4위까지가 <타이타닉>과 <쥬라기 공원 2: 잃어버린 세계>, <맨 인 블랙>, <007 네버 다이>로 채워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영화가 거둔 성공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만하다.

말하자면 1993년부터 가능성을 보인 항공기 내 액션신이 1997년에 이르러 정점을 찍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후 한동안 관련 영화가 나오지 못한 건 1996년과 1997년에 나온 세 편의 영화가 사실상 할 수 있는 액션은 죄다 보여줬다는 평가에 따른 것이라 보는 게 합리적이다. 이후 무려 17년 만에 나온 <논스톱>이 그 당시 잘 나가던 리암 니슨의 액션을 앞세웠음에도 앞선 영화들의 아류라 치부됐으니 90년대 말 영화의 파괴력이 어땠는지 알만 하다 하겠다.
 
에어포스 원 스틸컷

▲ 에어포스 원 스틸컷 ⓒ 컬럼비아 픽처스

 
세계 놀라게 한 미국 대통령 항공기 액션

<에어포스 원>은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해리슨 포드의 출연작이다. 미국 대통령 제임스 마샬(해리슨 포드 분)이 탄 1호기가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돌아가던 중 테러리스트에게 납치된다는 게 주된 얼개다. 테러리스트는 당대 유명 독재자를 석방하고자 하고 미국 대통령은 테러리스트와 타협하지 않겠다며 맨주먹 격투도 불사한다. 결국 당시 유행하던 테러리스트와 미국의 대결구도에 특별한 점이라곤 대통령이 직접 선수로 뛴다는 것 정도인데, 이 변수가 다른 모든 것을 집어삼킬 만큼 파괴력을 보였다.

책임감 있고 위기에 몸을 사리지 않는 용기까지 갖춘 미국 대통령이라니, 마초적 리더십을 바라는 이들에겐 더없이 매력적인 소재가 아닐 수 없다. 해리슨 포드의 열연은 당대 최고의 악역을 자처하던 게리 올드만의 테러리스트 연기와 맞물려 영화를 더욱 극적이며 통쾌하게 만들었다. 지나친 미국뽕 영화가 아니냐는 비판에도 솔직히 멋있지 않느냐는 평가가 우세했단 점은 이 배우들의 활약이 어떠했는지 증명한다.

장점과 단점이 명확했던 이 영화를 감독한 건 독일 출신의 베테랑 영화인 볼프강 페터젠이었다. 연극 연출로 시작해 TV드라마부터 영화까지 차근히 계단을 밟은 그는 1981년 작 <특전 유보트>로 제 재능을 만개시켰다. 이후 할리우드로 넘어와 이번엔 비행기 액션을 찍었으니 그게 바로 <에어포스 원>이었다. 그 뒤로 몇몇 흥행작을 더 찍었으나 한 장르, 한 소재 영화에서 최고작을 찍었다 할 수 있는 게 단연 이 영화였다.

1941년생으로 올해 81세가 된 볼프강 페터젠이 지난 16일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지병인 췌장암이었다. 그만의 스타일로 유럽과 할리우드를 넘나들며 희대의 액션영화를 찍어낸 명감독이 그렇게 세상과 등졌다. 그는 생전 최고의 영화상을 손에 들진 못했다. 그러나 그의 영화는 같은 시대를 살아온 영화팬이라면 모두 기억할 만한 작품으로 남았다. 잠수함이면 잠수함, 비행기면 비행기, 페터젠의 영화는 적어도 두 가지 탈 것에서 벌어지는 액션 중엔 최고로 기억됐다. 그건 그대로 멋진 일이라고, 그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에어포스 원 스틸컷

▲ 에어포스 원 스틸컷 ⓒ 컬럼비아 픽처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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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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