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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은 나처럼 덤벙댄다. 'clumsy(어설픈, 서투른이라는 뜻)'라는 영어 단어를 알고나서, 이건 나랑 딱 맞는 영어 단어이구나 싶었다. 우리 아이들은 셋 다 모두 'clusmy' 하다. 물건을 자주 잃어버린다. 우산 10개를 신발장에 구비하고 있다. 잃어버리고 와도 우산이 또 있으니 괜찮아라고 생각하기 위해서 주문했다.

우리 아이들이 나와 비슷하다는 걸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초등 1학년이 된 아들은 내내 연필, 지우개, 우산, 겉옷을 잃어버렸고 나는 화가 났다. 나도 잘 잃어버리면서, 큰 아이에게 1년을 모질게 하고 나니 마음이 불편했다. 그 뒤로 집에 연필도 5다스, 지우개 한 통, 우산 10개가 구비되어 있다.
아이 모자를 또 잃어버렸다.
 아이 모자를 또 잃어버렸다.
ⓒ elements.env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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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아이들과 남산에 다녀왔다. 북적북적한 거리에서 아이들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집중했다. 아이들은 무사히 집에 돌아왔다. 하지만 막내의 모자가 보이지 않는다.

"뽀로린, 너 모자 어디갔어?"
"유모차에 있잖아."


막내의 지비츠 하나와 빨간 모자가 사라졌다. 난 포기가 빨랐다. 잃어버리는 경험은 수십 번 겪어봤으니깐. 남편은 달랐다. 우리가 지나온 자리를 읊기 시작했다. 지난주에 잃어버린 큰 아들의 모자도 아직 찾지 못했다.

"도대체 어디에서 흘렸을까? 남산에서 있었는데.. 남대문 시장에서 잃어버린 것 같아. 액세서리 가게인 것 같아..."

일요일에 남대문 시장의 안경점에 전화했다. 모자는 없단다.

월요일 점심시간, 남대문을 찾았다. 우리가 지나왔던 길을 되짚어 갔다. 액세서리 가게, 뽀로린 옷을 산 가게, 망고 잠옷 산 가게, 그리고 안경점. 회사로 돌아오다가 지비츠 가게가 생각이 나서 지비츠 가게도 갔다. 빨간 모자는 없었다.

"오빠, 남대문 다 돌았어. 없어..."
"고생했다. ㅎㅎㅎ"


뒤에 'ㅎㅎㅎ'를 보니 포기한 듯 하다. 나는 포기가 안 되었었나 보다. 10년을 육아하며 '잃어버림'에 대해 포기했다고 생각했는데, 남대문 시장을 한 시간 가까이 걸었다.

"잃어버려야 또 사지"라는 친정엄마. 꼭 필요한 소비만 하려고 애쓰는 나를 위해 물건이 스스로 사라지는 것처럼 엄마는 말씀하신다. 엄마는 '잃어버림'에 내가 쿨하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아셨구나. 사라진 빨간 모자는 '잃어버림'에 좀 더 여유로워지라는 신호였다.

태그:#아이셋엄마, #잃어버림,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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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아이를 육아하며 자유를 꿈꾸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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