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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 논현동의 언덕배기에 자작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그 나무는 성사목으로 유명했다. 과부나 노처녀가 소원을 빌면 배필을 만나게 해준다는 전설을 가진 나무였다. 

기자가 '논현동 자작나무'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온 '소덕동 팽나무' 덕분이었다. 그 장면은 어린 시절에 강남에서 본 고목들을 떠오르게 했다. 기자가 역삼동의 한 아파트로 이사한 1976년, 역삼동 인근에는 오랜 역사를 가진 마을들과 그 세월을 함께한 고목들이 있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온 '소덕동 팽나무'의 모티브가 된 나무다.
▲ 경남 창원 북부리의 팽나무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온 "소덕동 팽나무"의 모티브가 된 나무다.
ⓒ 창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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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그 나무들 소식을 알 수 있을까 검색을 하던 중 오래전 기사 하나가 눈에 띄었다. 1972년 8월 14일 <중앙일보>에 실린 "서울 성동구 논현동 76번지 언덕배기에" 있는 자작나무를 소개하는 기사였다. 

사실 이 기사가 눈에 띈 이유는 '성동구 논현동'이라는 표현 때문이다. 논현동을 포함한 강남은 1962년에 경기도 광주군에서 서울로 편입되었고 강남구가 신설된 1975년 전까지는 성동구 관할이었던 것을 상기시켜 주는 문구였다. 

그러다 전설을 품은 6백년 수령의 자작나무가 강남에 존재했다는 사실에 호기심이 일었다. 오래전 어느 과부가 자작나무를 안고 춤을 춘 후 개가하게 되었고, 이후 소원을 가진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은 자작나무는 성사목으로 유명해졌다고. 기사로 유추해 보면 자작나무 근방에 대대로 농사지으며 터 닦은 마을이 자리한 것으로 보인다.
   
1973년 4월 5일 <경향신문>에 실린 ‘보호수로 지정된 서울 성동구 논현동 76 언덕에 있는 자작나무’라는 기사. “수령 6백년, 높이 18m, Y자 모양으로 생겨 성사목(性思木)으로 이름난 거목, 과부를 재가시킨다는 전설이 담겨 있다”는 설명이 담겼다.
▲ 1973년 경향신문에 실린 논현동 자작나무 사진 (빨간 네모 안) 1973년 4월 5일 <경향신문>에 실린 ‘보호수로 지정된 서울 성동구 논현동 76 언덕에 있는 자작나무’라는 기사. “수령 6백년, 높이 18m, Y자 모양으로 생겨 성사목(性思木)으로 이름난 거목, 과부를 재가시킨다는 전설이 담겨 있다”는 설명이 담겼다.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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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현동 자작나무 관련한 다른 기록도 찾아보았는데 1973년 4월 5일 <경향신문>에 실린 '보호수로 지정된 서울 성동구 논현동 76 언덕에 있는 자작나무'라는 기사가 있었다. 나무 사진과 함께 "수령 6백년, 높이 18m, Y자 모양으로 생겨 성사목(性思木)으로 이름난 거목, 과부를 재가시킨다는 전설이 담겨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기사에 수록된 사진을 보면 '논현동 자작나무'는 굵은 밑동에 가지들이 멋지게 흐드러진 고목이다. 사람들이 찾아와 소원을 빌 만큼 염험 있어 보였다. 기사는 논현동 자작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었다는 정보도 담고 있었다. 

하지만 기자는 지난 수십 년간 논현동 주변을 수도 없이 돌아다녔어도 수령 6백년의 '자작나무'를 본 적이 없다. 그런 나무가 있다는 소문도 듣지 못했다. 오래된 수령만큼이나 신비한 전설을 간직한 '보호수' 논현동 자작나무는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논현동 자작나무를 찾아서

논현동 자작나무가 있던 '성동구 논현동 76번지'는 강남구가 신설된 1975년에 '강남구 논현동 76번지'가 된다. 그리고 1976년에는 논현동 76-1번지 등 여러 번지로 분할된다. 

1970년대 진행된 '영동 개발'은 강남 일대 토지를 구획정리했는데 논현동 76번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토지구획정리가 완료된 1982년 논현동 76번지는 논현동 38번지로 변경된다.

토지대장에 나온 땅의 이력은 이 일대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보여주는 듯했다. 구 논현동 76번지는 1960년대와 70년대에 지목이 '전(田)'이었다. 하지만 토지구획정리 후 지번이 '논현동 38'로 바뀐 1982년에는 지목이 '대(垈)'로 변경되었다. 농사짓는 땅이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으로 된 것.

이에서 짐작할 수 있듯 지금의 강남구 논현동 38번지 일대는 주택가가 되었다. 그런데 자작나무는 볼 수 없다. 고급 주택과 대형 빌라가 들어선 골목들을 아무리 돌아다녀도 수령 6백년 된 커다란 자작나무, 보호수로 지정되었다던 그 고목은 볼 수 없었다. 

다만 카메라를 들고 서성이는 기자를 경계하는 고급 빌라의 경비원들과 바로 옆 골목에 자리한 공매 처분이 확정된 전직 대통령의 집을 지키는 경호원들만 눈에 띄었다. 
 
이 근처 어딘가에 수령 6백년의 자작나무가 있었다.
▲ 논현동 38번지 일대 이 근처 어딘가에 수령 6백년의 자작나무가 있었다.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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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수는 어디로 간 걸까?

'보호수'는 법으로 지정해 보호하는 나무를 말한다. <산림보호법>에 근거해 광역 자치단체의 장이나 지방 산림청장이 지정할 수 있다. 서울시의 경우 해당 보호수가 자리한 구청에서 관리한다. 

그래서 보호수인 논현동 자작나무의 행방이 어떻게 되었는지 강남구청 담당 부서에 질의를 해보았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보호수를 담당하는 직원은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은 다 뒤져 보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전산 기록은 물론 수기로 기록된 자료에서도 '논현동 자작나무'와 관련한 문헌은 찾을 수 없었다고. 기록이 안 된 건지, 기록은 했으나 보관이 안 된 건지 지금은 알 수 없다고도 했다.

다만, 그 자작나무가 보호수였다면 그냥 베어버릴 리는 없고, 혹시 보호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지정이 해제된 후 그 땅의 권리를 가진 측에서 베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을 전했다. 

결국, 보호수였던 '논현동 자작나무'의 행적을 더는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자료도 50년 전 기사 두 편이 전부였다. 전설을 간직한 6백년 수령 자작나무의 신비한 모습은 오래 전 기사에 삽입된 흐릿한 사진으로만 남았다.

항공사진에 비친 변화의 그림자

과거 기사에 따르면 논현동 자작나무는 높이 18m에 너비가 네 아름이었다고 한다. 그 정도로 큰 나무라면 가지들도 옆으로 넓게 퍼져 멀리서 봐도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혹시나 하며 항공사진을 뒤져보았다.

1972년 논현동 일대를 촬영한 항공사진을 확대해 봤지만 해상도가 낮아 옛 논현동 76번지 일대는 어둡게 나왔다. 하지만 1973년 항공사진부터는 나무로 보이는 음영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해상도가 높았다. 

특히 1974년에 촬영한 항공사진에서 옛 논현동 76번지 일대를 확대하니 <경향신문> 1973년 기사에 수록된 자작나무 사진과 닮은 굵은 밑동에 가지들이 Y자로 뻗어나간 나무가 또렷하게 보였다. 그 기사에서 언급한 논현동 자작나무가 확실한 듯했다. 

이후 1977년까지 매해 논현동 자작나무를 항공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78년부터는 항공사진에서 사라졌다.   
 
강남구 논현동 (구)76번지에 있는 자작나무의 1974년 모습. 확대하면 예전 경향신문에 실린 자작나무의 모습이 드러난다.
▲ 1974년 항공사진으로 본 논현동 자작나무 (노란 원) 강남구 논현동 (구)76번지에 있는 자작나무의 1974년 모습. 확대하면 예전 경향신문에 실린 자작나무의 모습이 드러난다.
ⓒ 국토지리정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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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논현동 (구)76번지에 있는 자작나무의 1977년 모습. 확대하면 예전 경향신문에 실린 자작나무의 모습이 드러난다.
▲ 1977년 항공사진으로 본 논현동 자작나무 (노란 원) 강남구 논현동 (구)76번지에 있는 자작나무의 1977년 모습. 확대하면 예전 경향신문에 실린 자작나무의 모습이 드러난다.
ⓒ 국토지리정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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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논현동 (구)76번지의 자작나무가 베어진 자리. 이후 이 일대는 주택가가 된다.
▲ 1978년 항공사진으로 본 논현동 자작나무가 있던 자리 강남구 논현동 (구)76번지의 자작나무가 베어진 자리. 이후 이 일대는 주택가가 된다.
ⓒ 국토지리정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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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항공사진으로 논현동 자작나무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니 옛 논현동 76번지 일대가 개발되는 과정이 보이는 듯했다. 농지로 보이는 논현동 자작나무 주변에 집들이 하나 둘 세워지더니 결국 자작나무가 사라졌다. 그리고 논현동 38번지로 변경된 그 일대는 모두 주택가로 변해갔다. 

논현동도 마찬가지였다. 1970년대에 촬영한 항공사진들을 비교하면 주택가가 점점 빽빽해지는 논현동 일대를 확인할 수 있다. 아파트 단지로 변한 역삼동이나 서초동과는 또 다른 양상이지만 이 또한 강남이 개발되는 모습 중 하나였다.   
 
왼쪽이 1973년, 오른쪽이 1974년에 촬영한 논현동 일대 항공사진이다. 빨간 원은 지금의 논현역 사거리, 노란 원은 공무원 아파트로 현재 논현신동아파밀리에 아파트다. 당시 영동 개발로 1년 사이에 크게 변한 모습을 볼 수 있다.
▲ 1970년대 논현동 일대 항공사진 왼쪽이 1973년, 오른쪽이 1974년에 촬영한 논현동 일대 항공사진이다. 빨간 원은 지금의 논현역 사거리, 노란 원은 공무원 아파트로 현재 논현신동아파밀리에 아파트다. 당시 영동 개발로 1년 사이에 크게 변한 모습을 볼 수 있다.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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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옛 논현동 76번지에 있던 자작나무는 1977년과 1978년 사이 어느 날 누군가에 의해 베어졌다. 그리고 보호수였던 논현동 자작나무를 기억하는 이는 물론 관련 서류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물론 수십 년 전에 사라진 나무의 행방을 캐고 다니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오래도록 민초들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그들의 삶까지 목격한 고목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아쉬움이 있었다. 혹시 드라마 속 '우영우 팽나무'처럼 논현동 자작나무도 보호되었다면 강남의 과거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위로를 주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그래서 논현동 자작나무가 1972년과 1973년에 신문기사로 소개된 이후 50년 만에 다시 소환해 보았다. 논현동 자작나무를 기억하는 이들이 나타나 그 정경을 상상으로나마 복원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다. 

덧붙이는 글 | 논현동 자작나무를 기억하시는 분들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이 기사는 강대호 시민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강남, #논현동, #우영우 팽나무, #논현동 자작나무, #소덕동 팽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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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을 지나며 고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내가 나고 자란 서울을 답사하며 얻은 성찰과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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