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신이시여,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함과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그리고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신학자 라인홀트 니부어의 잘 알려진 기도문이다. 상담심리사로 일해 오면서 나는 이 기도문이야말로 마음 건강의 핵심을 담고 있다고 느껴왔다. 삶에서 이 기도문에 나와 있는 세 가지(수용, 도전, 구분)를 잘 실천할 수 있다면, 스스로의 한계를 수용하면서도 성장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또한, 내담자들과 함께 하면서 깨달은 건 바로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얻는 일이 가장 어렵다는 거였다. 어떤 것을 포기하고, 어떤 것에 도전해야 하는지를 분별하는 일은 늘 힘들고 종종 상담의 주제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최근 드라마 SBS <오늘의 웹툰>을 보면서 이 '구분'의 기준을 배웠다. <오늘의 웹툰>은 유도 선수 출신의 웹툰PD 온마음(김세정)의 성장담을 담은 드라마다. 마음과 마음이 소속된 네온 편집팀 사람들, 그리고 웹툰 작가들은 모두 저마다의 '꿈'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꿈을 포기하기도 하고, 도전하기도 하며, 때로는 꿈에게 지배를 당하기도 한다. 이들이 꿈과 관계 맺는 다양한 모습들은 수용과 도전 그리고 이 둘을 구분하는 지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오늘의 웹툰> 속 인물들의 '꿈'을 들여다본다.
 
 SBS 드라마 <오늘의 웹툰> 포스터

SBS 드라마 <오늘의 웹툰> 포스터 ⓒ SBS

   
꿈을 내려놓는 용기와 평온함

 
'꿈'과 관련해 가장 안타까웠던 인물은 동희(백석광)였다. 대가 백어진 작가(김갑수)의 어시스트로 10년째 성실히 일하지만 등단하지 못한 동희는 너무나 착한 사람이다. 후배들이 자신을 앞질러 데뷔해도 '허허' 웃으며 축하해주고, 늘 스스로를 낮추며 살아간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믿는 천재 신대륙(김도훈)은 모두가 좋아하는 동희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 대륙은 동희가 '아무나' 혹은 '10년째 데뷔도 못 하고'라며 자신을 낮출 때 이렇게 대꾸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돼요. 그걸 입 밖으로 내뱉으면 더 그렇게 되구요. 말에는 힘이 있거든요." (5회)
 
"이제 그런 농담하지 마세요. 남들이 들었을 때 저주로 느껴지는 말을 스스로 10년 동안 해온 거예요." (7회)

 
동희는 이런 대륙의 말에 자신의 마음을 직면해 간다. 그리고 대륙에게 화가 나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10년간 매진해왔던 웹툰 작가로서의 꿈을 내려놓는다. 
 
"신대륙을 보면서 알게 됐습니다. 사실은 제가 프로가 되는 걸 두려워했다는 걸. 진지하게 평가받고 부딪히는 걸 두려워하면서 왜 사람들은 날 안 알아주지? 언젠가 누군가 날 알아봐주겠지 원망하고 기다리기만 했어요." (7회)

이렇게 동희는 자신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고, 분노하고 슬퍼하지만 결국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는 꿈을 포기한 후 오히려 평온해진다. 그리곤 "후회없고, 행복했었다"고 회상한다. 꿈을 이루지는 못하더라도 최선을 다해서 추구하고, 현실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선택하는 그의 모습은 진정으로 용기 있어 보였다.
 
도전을 넘어 지배하는 꿈
 
 대륙은 형편없는 그림솜씨에도 불구하고 타고난 감각과 간절함을 살려 웹툰작가로서의 꿈을 이룬다.

대륙은 형편없는 그림솜씨에도 불구하고 타고난 감각과 간절함을 살려 웹툰작가로서의 꿈을 이룬다. ⓒ SBS

 
반면 동희에게 이런 깨우침을 준 대륙은 꿈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인물이다. 어릴 적 학대받은 상처를 안고 있는 그는 오랜 시간 자신을 사로잡고 있던 공포를 만화로 표현한다. 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 그림은 형편없지만, 타고난 감각을 지닌 그의 이야기는 마음을 비롯한 PD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림을 못 그린다는 점은 얼핏 보면 만화가로서 꿈을 내려놓아야 할 치명적인 '한계'로 보인다. 하지만 그와 PD들은 이를 '바꿀 수 있는 것'으로 판단했고, 서로를 믿었다. 결국 이 판단은 옳았고, 여기에 "만화를 그리지 않으면 갈 곳이 없다"는 대륙의 간절함이 더해져 마침내 꿈은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렇게 전부가 된 꿈은 그를 해치기도 한다.
 
8회에는 대륙이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이미지를 지닌 한 여성을 따라다니며 스케치하다 치한으로 오인되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오직 꿈만을 생각한 그에게 주변 사람들의 불편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그는 솟아나는 이야기들을 그리기 위해 식사를 거르는 등 스스로를 돌보는 일조차 게을리 한다. 결국, 대륙에겐 '꿈'이 자기 자신보다 먼저였던 것이다. 이를 알아차린 마음은 그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만화도 정말 중요해요. 하지만 사람보다 중요하지 않아요. 그 사람에는 작가님도 포함돼요." (9회)
 
10회 등장했던 마해규 작가(김용석)도 마찬가지였다. 타고난 재능을 지닌 탁월한 만화가인 그 역시 자신의 재능과 꿈에 지배당한 나머지 주변과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 그는 만화에만 몰두한 나머지 아내를 떠나보내고, 혼자 남은 딸조차 돌보지 않는다. 대륙과 해규의 모습은 우리가 '꿈'에 도전하는 걸 넘어 지배당할 때 오히려 나 자신을 잃을 수도 있음을 잘 보여주었다.
 
나 자신의 행복과 가치를 따르는 꿈
 
 마음은 자기 자신의 행복을 위해 유도선수로서의 꿈을 접고, 웹툰PD로 새로운 출발을 한다.

마음은 자기 자신의 행복을 위해 유도선수로서의 꿈을 접고, 웹툰PD로 새로운 출발을 한다. ⓒ SBS

 
이렇게 누군가는 꿈을 포기해서 행복해지고, 누군가는 꿈을 이루지만, 또 다른 것을 잃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꿈을 선택하는 것이 좋은 걸까. 나는 마음과 마음의 사수 석지형 부편집장(최다니엘)이 고민한 것들이 기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유도 선수로서 촉망받던 마음은 유도를 돌연 그만두고는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를 만드는 일을 시작한다. 유도 선수 출신의 아버지 기봉(고창석)은 이런 마음을 무척이나 안타까워하며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지만 마음은 아깝다는 주변의 반응에 전혀 흔들리지 않고 이렇게 말한다.
 
"이제는 마지막에 웃는 것보다 그냥 많이 웃는 인생이 더 좋은 삶인 거 같아서 많이 웃고 즐겁게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1회)
 
"난 선택을 한 거야 포기가 아니라.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꿈 이뤘으면 좋았겠지. 하지만 그걸 이루지 못했다고 실패한 인생이 되는 것도 그걸 이룬다고 성공한 인생이 된다고도 생각하지 않아. 이루든 못 이루든 그냥 내 소중한 꿈이었고, 그런 나한테 새로운 꿈이 생긴 거 뿐이야. 실패한 인생이 아니라 그냥 뭐든 할 수 있는 나로 살고 싶어." (5회)


마음이 꿈에 도전하고 포기하고, 새로운 일 선택하는 데는 '나의 행복'이 중심에 있었다. 타인의 시선도, 사회적인 인정도 아닌 오직 나의 행복을 중심에 두었기에 마음은 포기하고 선택하고 도전하는 과정에서 늘 웃을 수 있었을 것이다.
 
10회 방영됐던 지형의 선택 역시 의미심장했다. 지형은 파격적인 조건으로 경쟁사 편집장 자리를 제안받는다. 동료들은 이 제안을 거절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하고 지형을 보내줄 마음의 준비를 한다. 하지만 신중하게 자신의 마음을 돌아본 지형은 다음과 같이 결정짓는다.
 
"안 가기로 했어. 내가 대체 뭐 때문에 여길 떠나는 걸 주저하는지, 괜한 부채감 때문일까 아니면 새로운 도전에 대한 어떤 두려움 때문일까. 계속 나를 들여다봤어. 그런데 나는 여기서 새로 시작한 일들, 인연 맺은 사람들을 끝까지 책임지고 싶더라고. 네온이라는 정원에 내가 심은 나무와 꽃 씨앗들이 잘 자라서 결실을 맺는 걸 보고 싶어." (10회)
 

지형은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삶의 가치를 먼저 생각하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한다. 이런 선택을 한 마음과 지형은 하루하루를 만족스럽게 살아간다. 이들은 '수용'과 '도전'의 기준이 나의 행복, 그리고 내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본질적인 가치에 있어야 함을 알게 해주었다.
 
꿈은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하지만 어떤 꿈에 도전하는 것은 더 큰 용기가 필요하기도 하고, 때로는 꿈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를 잘 구분해야 충만한 삶을 누릴 수 있다. 이 구분의 기준은 바로 <오늘의 웹툰> 인물들이 보여주듯 '나 자신의 행복과 가치'이다. 내가 꾸는 꿈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실천하게 하는지를 먼저 돌아보는 것이 우리가 꿈을 넘어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혹시라도 지금 나의 꿈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면, 그러니까 꿈에 도전할 용기가 나지 않거나, 꿈에 매진하고 있는데도 어딘가 공허하다면, 나 자신을 좀 더 들여다보자. 그 어떤 꿈도 '자기 자신'보다 중요하진 않으니까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오늘의웹툰 김세정 최다니엘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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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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