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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운규
 나운규
ⓒ 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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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김일성 우상화체제가 강화되면서 그의 자서전 <세기와 더불어>는 역사ㆍ문화ㆍ예술ㆍ음악 분야에 이르기까지 일종의 '교범' 역할을 하였다. 제6권의 1937년 간산봉 전투시기 아리랑에 대해 언급한 부문이다. 

우리는 정황을 효과적으로 리용하면서 날이 저물도록 적들을 답새기였다. 녀대원들이 싸움을 하면서 부른 〈아리랑〉이 전대오에 퍼지었다. 격전장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은 강자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간산봉 전투장에 울린 〈아리랑〉은 혁명군의 정신적 중심을 비쳐 보이고 낙천주의를 시위하였다. 적들이 〈아리랑〉을 듣고 어떤 기분에 잠겼겠는가 하는 것은 그 상상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후에 포로들이 고백하기를 그 노래를 듣고 처음에는 어리둥절해졌고 다음 순간에는 공포에 잠기였으며 나중에는 인생허무를 느꼈다고 하였다. 부상자들 중에는 신세를 한탄하며 우는 자들도 있었으며 한 쪽에서는 도망병까지 났다는 것이다. (주석 9)
30년 넘게 아리랑 연구에만 매달려 온 김연갑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가 아리랑과 한국전쟁에 얽힌 사연을 설명하고 있다.
▲ 김연갑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 30년 넘게 아리랑 연구에만 매달려 온 김연갑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가 아리랑과 한국전쟁에 얽힌 사연을 설명하고 있다.
ⓒ 김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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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아리랑에 대해서도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해온 김연갑 씨는 연구를 바탕으로 설명한다.

"북한이 아리랑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영화 〈아리랑〉과 그 주제가에 대표성을 부여한 1962년 <나운규와 그의 예술>의 발간으로부터이다. 이로부터 1971년 혁명가극 〈피바다〉와 1976년 〈관현악곡아리랑〉으로 형상화하면서부터 주요 아리랑들을 기악화(관현악ㆍ병창ㆍ독주)하고 무대예술 작품에 소재화하기 시작했다. 이는 예술적 형상화와 통속성의 부가가치화라는 점에서 성과로 평가된다." (주석 10)

그는 10가지 관점으로 북한의 아리랑 인식(정책)을 정리했는데, 다음은 ⑦ ⑧ 항목이다.

⑦ 1980년대 중반까지는 예술성보다는 계급성과 투쟁성에 그 가치를 강조하고 확대한 것은 우리와 다른 부분이지만 2000년에 들어서서는 연대와 대동성에 역점을 두기 시작한 것과 위상에서 〈민족의 노래〉, 〈통일의 노래〉로 보는 것은 우리와 동일한다.

⑧ 결국 근본적으로는 우리와 그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 이 사실은 아리랑이 민족동질성의 구체적인 인자임을 입증해 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아리랑의 현재적, 미래적 가치와 위상을 담보하는 것이다. (주석 11)


주석
9> 김연갑, <북한 아리랑 연구>, 337쪽, 재인용, 도서출판 청송, 2002.
10> 앞의 책, 344쪽.
11> 앞의 책, 345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문화열전 - 겨레의 노래 아리랑]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겨레의노래, #겨레의노래_아리랑,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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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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