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08 19:54최종 업데이트 22.10.08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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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안드라프라데시주 아라쿠 밸리에서 재배 중인 커피 ⓒ 위키미디어 공용


인도와 커피, 커피와 인도. 오랫동안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었다. 인도는 차의 나라라는 이미지가 강한 탓이었다. 차 생산량이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인 나라가 인도이고, 총소비량 역시 중국에 이어 2위이니 그럴 만하다. 그렇다고 1인당 차 소비량이 최고는 아니다. 1인당 차 소비량 1위는 튀르키예(터키)이고 중국은 19위, 인도는 27위에 불과하다. 차의 나라는 튀르키예다. 튀르키예는 중국에 비해 1인당 차 소비량이 5배, 인도의 10배 수준이다.

중국에 이어 튀르키예가 커피에 빠진 것을 보면 차 문화가 커피 소비의 확산에 큰 장애물이라는 속설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게 되었다. 아일랜드가 1인당 차 소비량에서 세계 2위이고 영국이 3위이지만 이들 국가의 1인당 커피 소비량도 꽤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일본이 1인당 차 소비량에서 세계 10위권 안에 들지만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커피 대중화를 이룬 것도 이런 속설의 설득력을 낮게 만드는 사례다. 커피를 우리보다 먼저 즐기기 시작한 오스트레일리아, 독일, 캐나다, 스위스, 미국, 핀란드, 프랑스 등도 1인당 차 소비량에서 우리나라를 앞선다.

인도에 주목하는 이유
 

인도 서던 웨스턴 가츠의 아나이말라이 힐즈에서 커피를 수확하고 있다. ⓒ 위키미디어 공용


최근에는 세계인들 사이에 차의 나라 인도의 커피 산업과 문화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커피업 종사자들의 관심이 매우 크다. 중국에 이어 인구대국 인도에서 커피 대중화가 시작되면 커피 원료 가격은 다시 한번 요동칠 게 뻔해 보인다. 세계 커피인들이 인도를 바라보며 느끼는 설득력 있는 우려다.

커피가 예멘 지역을 벗어나 가장 먼저 재배된 곳은 실론이었다. 17세기 유럽에서의 커피 대중화, 커피하우스의 증가에 맞추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서 커피 가격 상승을 예견하고, 기후 조건이 아라비아반도와 비슷한 실론에 커피나무를 옮겨 심는 시도가 1616년부터 이루어졌지만 실패하였다.

바바 부단이라는 용기 있는 인도 무슬림 승려의 전설도 전해진다. 부단은 16세기(17세기라는 설도 있음) 메카에 성지순례 차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예멘에서 커피 생두 7알을 숨겨서 가져왔다. 가져온 생두를 그의 고향 미소레, 지금 인도 커피의 주 생산 지역인 카르나타카 지역에 뿌렸고, 이것이 발아하여 인도 커피 '올드 칙'이 시작되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이다. 고려시대 목화씨를 가져온 문익점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에 심었던 실론이나 인도 커피가 생산되어 아랍이나 유럽 지역에서 팔렸거나 소비된 흔적은 없다. 성공적이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인도에서 커피 생산이 본격화한 것은 1840년대였다. 인도를 지배하던 영국이 플랜테이션 산업의 하나로 커피 재배를 권장하기 시작하면서였다.

그러나 커피 생산이 절정에 달했던 1870년대에 갑자기 시작된 커피녹병의 대유행으로 인도의 커피 산업은 초토화되고 말았다. 커피 농장은 대부분 차 농장으로 바뀌었다. 당시 인도 지배하에 있던 실론도 마찬가지였다.

20세기 들어 몇 차례에 걸쳐 나타났던 세계적인 커피 붐을 타고 인도 커피 생산은 점차 증가하여 왔다. 현재 인도는 커피 생산량이 년 34만 2000톤 수준으로 세계 7위의 국가이다(국제커피기구 통계). 아시아에서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 이어 세 번째이고 전 세계 생산량의 3.3%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 커피인들이 인도에 주목하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인도 커피 생산량의 급격한 증가 추세다. 최근 브라질, 베트남, 콜럼비아 등 커피 생산지 대부분에서 기후 이상으로 큰 폭의 생산량 감소가 나타났고, 이것은 커피 생두가격 상승을 부채질했다. 브라질은 2020년 커피 생두 생산량이 370만 톤이었던 것이 2021년에 280만 톤으로 25% 이상 급감하였고, 이제 시작한 2022년 수확량은 더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 시장에서 커피 생두 가격은 2020년에 비해 2022년에 이미 두 배 정도에 이르렀다. 이런 세계적 위기 속에 인도는 최근 몇 년간 지속적으로 연 10% 이상의 생두 생산 증가를 보인 유일한 생산국으로 기록되고 있다. 국제 커피 생두 생산의 감소와 거래 가격 상승 국면에서 세계의 많은 커피산업 종사자들이 인도에 주목하는 이유다.

14억 이상의 인구, 세계 7위의 영토를 가진 인도의 중남부 지역 대부분은 커피 재배에 적당한 기후를 가진 커피벨트에 속한다. 커피벨트 지역만으로 따지면 세계에서 브라질 다음으로 커피 재배에 유리한 곳이 바로 인도다. 인도의 선택이 향후 세계 커피 생산 시장과 소비 시장의 변화를 좌우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인도 커피로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몬순 커피 하나였다. 인도 서쪽 해안에서 몬순 바람을 맞고 발효된 커피를 일컫는다. 산미는 낮고 바디감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다양한 맛과 향을 지닌 고급 커피가 적지 않게 생산되고 있다. 생강이나 계피 농장 주변에 있는 커피 농장에서 생산된 인도 커피에서는 미묘한 매운맛이 느껴지고, 오렌지나 바닐라, 바나나 농장 주변의 커피 농장에서 생산된 커피에서는 복합적 과일 향과 단맛이 나기도 한다.

인도의 커피 소비 증가
 

인도의 커피 체인점 '바리스타' ⓒ 위키미디어 공용


세계 커피인들이 인도에 주목하는 또 다른 이유는 커피 소비의 급격한 증가다. 새로운 커피 브랜드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였고, 젊은이들의 취향을 존중하는 스페셜티 커피 시장도 급격하게 확대되고 있다.

지난 40년간 인도 커피 수출 위주로 사업하던 인도의 대표적 커피 기업 알라나 그룹이 인도 국내 커피 소비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한 것이 최근이다. 몇몇 인도 국내 커피브랜드와 카페의 인기가 드러나기 시작한 최근의 흐름, 그리고 스타벅스의 인도 진출도 작용한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팬데믹으로 인한 해외 유학생들의 귀국, 이들에 의한 서구 카페문화의 전파도 커피 소비를 불러온 또 다른 배경이다. 사교 장소로서 카페가 지닌 가치가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팬데믹이 불러온 세계적 홈카페 문화는 인도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커피 시장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20년 전에 토종 커피체인점 '바리스타'가 문을 열었을 때, 비싼 커피 가격과 강력한 차 소비문화의 벽을 넘지 못해 고전하였다. 이후 인도의 스타벅스라 불리며 150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커피 데이'를 비롯하여 토착 카페가 하나둘 등장하면서 커피 문화가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위기를 지켜보던 인도 차 사업자들이 2013년에 인도 정부를 찾아가 차를 인도의 국가 음료로 지정해줄 것을 건의한 바 있었다. 인도 정부는 단호히 거절하였다. 인도의 유망한 신산업에 지장을 주고 싶지도 않았고, 새로운 세대의 커피 선호를 부정할 수도 없었다.

최근에는 커피 시장에 새로운 브랜드들이 넘쳐나고 있다. '커피 데이', '바리스타' 등과 같은 프랜차이즈 카페 이외에도 제품 커피를 판매하는 '블루 토카이', '서드웨이브 커피', '도페 커피', '슬리피 아울' 등의 이름이 전혀 낯설지 않다.

아직은 인도의 커피 생산량 중 국내 소비 비중은 20%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점차 증가하고 있다. 인도에는 인디안 비튼 커피라는 달달한 메뉴가 있는데, 최근 인기가 폭발한 이 커피를 세계인들은 '인도의 달고나커피'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두 음료 레시피가 비슷하다.

인도의 커피 소비 증가는 희망이며 공포이기도 하다. 중국의 커피 소비 증가와 세계적 커피 생산량 감소가 결합하여 최근 2년 사이에 커피 수입 가격의 2배 상승을 경험한 것이 우리나라다. 커피류 수입 세계 6위권 국가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는 희망보다는 걱정스런 시각으로 지켜보아야 할 것이 인도의 커피 소비 증가세다. 걱정은 크나 아무런 국가적 대응이 없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차 소비국 이미지를 지니고 있던 대표적인 나라들이 한 세대만에 영국을 시작으로 일본, 중국, 러시아, 튀르키예에 이어 인도까지 커피 소비국으로 변하고 있다. 차 문화가 발전한 지역에 커피가 자리를 잡기 어려울 것이라는 속설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알 듯, '차든 커피든 마셔본 사람만이 마시는 음료의 가치를 안다'는 새로운 속설이 만들어지고 있다.

- 유튜브 채널 '커피히스토리 ' 주인
덧붙이는 글 참고문헌

이길상(2021). 커피세계사+ 한국가배사. 푸른역사.
Shuchi Bansal(2022). A Strong coffee culture in brewing in India, bit by bit. MINT. April 1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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