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연 영화인상 시상식

이춘연 영화인상 시상식 ⓒ 부산영화제 제공

 
"최근 몇 년 사이 떠나시는 분들이 많아졌는데, 즐겁게 기억하는 자리가 되자."
 
6일 저녁 부산국제영화제 1회 이춘연 영화인상(이춘연상) 시상식에 참석한 영화인들은 돌아가신 분들을 즐겁고 의미있게 기리자고 말했다. 슬픔보다는 아름답게 추억하자는 뜻이었다. 
 
코로나19 이후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온 27회 부산영화제에서 근래 유명을 달리한 영화인들에 대한 추모도 중요 행사로 자리하는 모습이다.
 
상으로 승화된 한국영화 큰형
 
5일 개막식에서는 첫 순서로 올해 세상을 떠난 국내외 영화인들을 상기하며 5월 타계한 강수연 배우를 향한 추모의 마음을 나타냈다. 이어 6일 오후에는 2017년 세상을 뜬 김지석 전 부집행위원장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지석>을 공개했다. 저녁에는 한국영화의 거목이자 큰 형님으로 지난해 별세한 이춘연 전 영화인회의 이사장을 기억하며 '이춘연상' 시상식을 진행했다. 
 
이춘연상 시상식은 앞서 떠난 영화인들을 기리는 한편, 추모의 방식을 상으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주목됐다.
 
이춘연 대표는 1980년대 한국 영화운동이 충무로를 개혁하는 과정에서 후배들을 아우르며 가장 앞에 섰고, 영화인들의 권익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1991년 한국영화기획실모임을 만들었고, 1994년에는 이를 바탕으로 한국영화제작가협회를 설립했다.
 
호탕한 성격에 따뜻한 인품으로 영화계를 휘어잡았기에 그의 부재는 여전히 큰 허전함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동료 및 후배들이 한국영화를 향한 그의 역할과 노력을 잘 이어가자는 데 뜻을 모았고, '이춘연상'이란 이름으로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6일 저녁 부산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열린 이춘연 영화인상 시상식에 참석한 이창동 감독과 김유진 감독

6일 저녁 부산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열린 이춘연 영화인상 시상식에 참석한 이창동 감독과 김유진 감독 ⓒ 부산영화제 제공

 
고 이춘연 이사장의 50년 지기인 김유진 감독이 "프로듀서를 위해 이춘연 이름으로 상을 하나 줬으면 좋겠다"고 제안한 것이 출발이 됐다. 1990년부터 고인과 함께 고락을 함께했던 권영락 씨네락픽쳐스 대표도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다.

여기에 한국영화에 적극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아이오케이가 후원하면서 틀이 완성됐다. 부산영화제서 개인 이름으로 수여하는 상은 '지석상'에 이어 두 번째다.
 
특히 첫 수상자로 독립영화에서 연출 제작 연기 등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백재호 프로듀서가 선정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한국영화 출발의 가장 기초인 독립영화를 응원하고 지원하는 뜻이 담겼기 때문이다.
 
"마음껏 기억하자"
 
이날 시상식에는 이춘연 이사장의 상징성을 보여주듯 한국영화의 대표적 인사들이 대부분 자리했다. 정지영, 김유진, 이창동, 배창호 감독을 비롯해 문성근 전 평창국제평화영화제 이사장, 이준동 전 전주영화제 집행위원장, 정상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이사장, 구혜선 배우, 예지원 배우 등 고인과 가까웠던 영화계 인사들의 모였고, 유가족들도 함께했다
 
사회는 <여고괴담> 시리즈로 고 이춘연 이사장과 인연을 맺은 김규리 배우가 맡았다. 김규리 배우는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마음껏 기억하자"며 "(고인의 부재가) 잘 믿기지 않고 믿고 싶지 않다"며 여전히 아쉬운 마음을 표현했다.
 
이용관 이사장은 학교 선배였던 이춘연 이사장과의 첫 만남을 떠올리며 "친형 같았다"고 회고했다. 또 "언제까지나 마음 속에 살아 있을 것 같다"면서 "이춘연·강수연 등 돌아가신 분들의 이름으로 재단을 하나 만들어 기렸으면 좋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6일 저녁 부산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열린 이춘연 영화인상 시상식 사회를 맡은 김규리 배우

6일 저녁 부산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열린 이춘연 영화인상 시상식 사회를 맡은 김규리 배우 ⓒ 부산영화제 제공

 6일 저녁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열린 이춘연 영화인상 시상식에서 인사말하고 있는 정지영 감독

6일 저녁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열린 이춘연 영화인상 시상식에서 인사말하고 있는 정지영 감독 ⓒ 부산영화제 제공

 
정지영 감독은 "지난해 이춘연 이사장을 떠나보냈다"며 "오늘은 즐겁게 추억하는 시간이 되자"고 제안했다. 이창동 감독 역시 "즐겁게 기억할 수 있는 날이 되길 바란다"며 "강수연 배우를 추모하는 것도 보고싶다, '이춘연상'처럼 부산영화제가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배창호 감독은 "이춘연상을 통해 대중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제작자가 나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고인을 기억하는 상을 만들어 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상금은 이춘연 이름으로 인디스페이스에 기부"
 
정한석 부산영화제 프로그래머는 경과보고를 통해 "영화단체들의 추천을 받았고, 여러 후보자 중 강제규 감독, 심재명 대표, 유지태 배우 등과 함께 심사해 만장일치로 백재호 프로듀서를 첫 회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말했다. 이춘연 이사장이 "제작자뿐만 아니라 배우로도 기억되고 있다"며 "프로듀서와 연출, 연기까지 하는 백재호 프로듀서가 적격"이라고 덧붙였다.
 
백재호 프로듀서는 극단에서 배우 생활을 시작해 <쌍화점>(2008) <여배우들>(2009)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2012) 등에 출연했고, 2014년에는 첫 연출작인 <그들이 죽었다>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받기도 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시민 노무현>(2019)도 연출했다.
 
 1회 이춘연 영화인상 수상자인 백재호 감독과 심사위원이었던 심재명 명필름 대표(제일 왼쪽), 유지태 배우(제일 오른쪽).

1회 이춘연 영화인상 수상자인 백재호 감독과 심사위원이었던 심재명 명필름 대표(제일 왼쪽), 유지태 배우(제일 오른쪽). ⓒ 부산영화제 제공

   
심사위원을 대표한 자리에서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앞으로 더 분발하고 성장해 한국영화 제작자로 더 발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격려했다. 유지태 배우도 "상이 기쁘게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지태 배우는 옆에 서 있던 심재명 대표를 언급하는 과정에서 '이재명 대표'라고 잘못 말해 한바탕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수상자인 백재호 감독은 "지난 부산영화제 사태 과정에서 이춘연 대표님이 독립영화인들의 뒷배 역할을 해주셨다"며 "영화계 형님으로서 이춘연 대표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고 고인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이어 함께 작업했던 독립영화인들에게 고마움을 전한 뒤 "앞으로 더 잘하라는 의미로 주신 것으로 알겠다. 잘 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부탁한다"고 인사했다.
 
백재호 감독은 시상식이 끝난 후 "오늘 받은 상금은 독립영화관 인디스페이스 나눔자리 회원에 이춘연 대표 이름으로 기부하겠다"고 말했다. 인디스페이스는 나눔자리 회원으로 참여해 일정 금액 이상 기부한 분들의 이름을 좌석 뒤에 부착하는 것으로 예우한다. 심사위원이었던 유지태 배우도 나눔자리 회원이다.
부산영화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