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원짜리 변호사>의 한 장면.

<천원짜리 변호사>의 한 장면. ⓒ SBS

 
설령 집중해서 보지는 않더라도 집 안에서 TV를 틀어놓고 사는 친TV형 삶을 살다보면 재미있는 드라마가 얻어걸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최근에 <천원짜리 변호사>라는 드라마가 그랬다.
 
딱히 보려던 건 아니었는데, 집에서 오다가다 곁눈으로 보다보니 너무 재미있어 챙겨보는 드라마가 되었다. 믿고 보는 배우 남궁민이 능청스러운 연기를 어찌나 맛깔나게 하던지 일단 합격이다. 수임료를 천 원만(천만원으로 잘 못 보일 수 있으나 천 원만 받는 게 맞다) 받으니 월세 낼 돈이 없어 건물주 여사님을 만나면 벌벌 떠는 상황부터 웃기다. 남모를 사연을 지닌 변호사가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정답지를 가지고 서민들을 위해 변호하는 정의로움도 내 코드에 딱이고, 코믹과 진지를 넘나드는 이야기 전개도 맘에 쏙 든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가장 눈에 들어온 건 사무장 역을 맡은 '뽀글이' 머리의 아저씨이다. '어디서 봤지?'를 수차례 되뇌게 만드는 친숙한 얼굴의 그는 많은 작품에서 보았던 낯익은 배우였다. '아, 누구지?', '어느 드라마에 나왔지?' 너무나 궁금해 하던 차에, 함께 드라마를 보던 친구가 소리쳤다. "<도깨비>에서 그 봉고차 악당이잖아!" 아, 맞다. 그 사람이다.
 
많은 작품 중 하나였지만, 그의 정체를 확인하고 나니 속이 뻥 뚫리는 듯 개운하다. 드라마 <도깨비> 말고도 다수의 드라마와 영화에서 얼굴을 마주했던 그 배우의 이름은 박진우였다. 단역과 조연으로 스쳐 지나듯 만나던 배우가,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에서 꽤나 비중이 큰 역할로 나오다니, 마치 내가 아는 지인이 잘 되기라도 한 듯 기쁜 마음이 들었다. 사람이 느끼는 건 다 비슷한 건지, 내 친구도 맞장구를 치며 우리는 손을 모으고 한목소리로 외쳤다.
 
"저 아저씨 잘 됐으면 좋겠어!"
 
우리는 왜 잘 알지도 못하는 배우를 이렇게 한뜻으로 응원하고 있는 걸까? 어떤 일이든 분명 이유는 있는 법이다. 그 이유를 찾아야겠다. 일단 그를 어느 드라마에서 봤는지부터 확인해보기 위해 그의 이름을 검색해보았다. 놀랍게도 그의 데뷔작은 2003년 <살인의 추억>이었다. '엇, 여기도 나왔었네? 아, 저기에도 나왔었어?' 아주 작은 단역부터 비중있는 조연을 맡은 최근까지 약 60여 편의 영화와 드라마 곳곳에서 그는 배우로 활동하고 있었다. 무려 20년의 시간을 그는 '무명의 배우'로 묵묵히 그의 길을 걸어왔던 거다. 

20년의 무게감이 그의 연기에 덧씌워진다. 꿈을 찾아 묵묵히 걸어온 20년의 시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꿈을 좇던 시간 동안 그는 행복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어릴 때는 꿈을 꾼다는 건 청춘의 특권이라고 믿었지만, 나이를 먹고 보니 꿈을 좇는다는 건 수많은 것을 포기한다는 뜻이었다. 안정된 생활을 포기하고, 경제적 여유로움을 포기하고, 가끔은 주변의 사람들에게 주눅들지 않는 당당함을 포기하는 고된 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각기의 이유로 꿈을 포기하고 현실을 맞춰 꿈과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가곤 한다.
 
그런데 박진우 배우는 포기하지 않은 듯했다. 그는 2017년까지도 단역을 맡아 연기했다. 요즘 말로 정말 '대.다.나.다.' 그 긴 시간을 어떻게 버텨낸 걸까. 그 시간을 견디고 견뎌 이렇게 비중 있는 역할을 맡게 되기까지 그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어떻게 보면 무모해 보이는, 다른 사람들은 쉽게 선택하지 못했을 길을 뚝심을 가지고 홀로 걸어온 인생의 궤적이 필로그래피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드라마에서는 마냥 귀엽고 웃긴 사람이었는데, 간단치 않은 그의 작품활동을 보니 숙연한 마음마저 든다. 잘 되길 바라던 마음이 그냥 생긴 게 아니었다. 박진우라는 배우를 기억하지는 못했을지라도, 작품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든, 제법 인상을 남겼든 수많았던 그의 캐릭터들이 내 안에서도 한 겹 한 겹 쌓여져서 그를 응원하는 마음이 만들어진 게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지난한 20년 세월의 힘이 이제 빛을 발하기 시작하나보다. 아니, 이미 빛을 발하고 있는 것 같다. 정말 잘 됐다. 긴 시간 스러지지 않고 버텨온 그에게 팬으로서 진심으로 응원의 마음을 전한다.
 
'좋은 연기 오래오래 보여주세요. 이제 시작이잖아요!!'
박진우 천원짜리 변호사 뽀글이 사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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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에도 여전히 꿈을 꾸는, 철없는 어른아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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