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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삶의 ‘흔적’이 쌓인 작은 공간조직이 인접한 그것과 섞이면서 골목과 마을이 되고, 이들이 모이고 쌓여 도시 공동체가 된다. 수려하고 과시적인 곳보다는, 삶이 꿈틀거리는 골목이 더 아름답다 믿는다. 이런 흔적이 많은 도시를 더 좋아한다. 우리 도시 곳곳에 남겨진 삶의 흔적을 찾아보려 한다. 그곳에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를 기쁘게 만나보려 한다. [기자말]
동네는 낙산 언덕배기에 기댔다. 다닥다닥 어깨 겨누어 앉은 집들이 평화로워, 오히려 맵시 있다. 구불구불 골목은 가파르다 못해 숫제 등산을 방불한다. 아슬아슬 주차된 차 바퀴엔 예외 없이 벽돌이 괴이고, 걷기에도 버거운 가파른 길을 오토바이는 빨리도 오른다.

골목은 온통 소리로 그득하다. 오토바이와 삼발이가 쉴새 없이 누빈다. 이곳을 동대문 패션타운과 연결하는 실핏줄 같은 존재다. 여기저기 돌아가는 재봉틀 소리는 마치 재깍거리는 시계 같다. 하지만 이곳엔 빨갛고 노란 꽃 가득 필 꽃밭은 없다. 오히려 소금 땀 비지땀 연신 흘려야, 다가오는 계절을 온전히 맞을 듯 보였다.
 
창신 숭인 채석장 전망대에서 바라본 창신동과 그 너머 동대문 패션타운.
▲ 창신동과 동대문 패션타운 창신 숭인 채석장 전망대에서 바라본 창신동과 그 너머 동대문 패션타운.
ⓒ 이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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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 하얘진 봉제 기술자의 잰 몸놀림이 바지런히 옷을 짓는다. 평화시장에서부터 봉제 기술로 잔뼈가 굵었음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손놀림이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재봉틀 돌림 바퀴에 청춘도 감돌았고, 이젠 주름진 손으로 바늘판에 연신 옷감을 먹이고 있다.

하도급과 재하도. 재단에서부터 한 벌의 옷이 완성되기까지 공정과 공정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공간. 일한 만큼만 임금을 받는 객공(임시로 고용한 직공)의 공간. 그러함에도 기획·주문에서 유통까지 하루면 해결되는 공간. 젊은이들이 대를 이어 재봉틀을 돌리는 공간. 'Made in 창신동' 봉제거리 일상이다. 하지만 마냥 평화롭기만 한 건 아니다. 이런 평범한 일상이 '도시재생과 철거재개발'로 대척하는 위태로운 공간이기도 하다.
 
창신동 봉제거리박물관으로 드는 초입. 옷감을 들고 걷는 사람과 오토바이가 분주함.
▲ 봉제거리박물관 초입 창신동 봉제거리박물관으로 드는 초입. 옷감을 들고 걷는 사람과 오토바이가 분주함.
ⓒ 이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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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없던 평화시장

1970년 11월 13일은 우리를 성찰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된 날이다. '어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인간 존엄의 가치에 대한 피 끓는 외침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날 평화시장 노동자의 분신은 그때는 물론 지금도 충격과 울림으로 남아있다.
 
1970년 11월 13일.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 반신상과 평화시장 입구.
▲ 전태일과 평화시장 1970년 11월 13일.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 반신상과 평화시장 입구.
ⓒ 이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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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함에도 평화시장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폭압적 저임금엔 큰 변화가 없었다. 분신에 놀란 당국의 손에 겨우 다락이 뜯겨 나가는 수준이었고, 판매장과 공장을 직영하는 체계도 인근 다른 시장으로 옮겨갔을 뿐이다. 반면, 의류 산업은 끝없는 내수 확장과 수출 호조로 1970년대 엄청난 호황을 누린다.

1980년대 이르러 청계천 봉제공장이 줄기 시작한다. 생산과 유통 위험, 비용을 하도급 업체에 전가하려는 회피전략 때문이다. 또한 봉제 노동자의 수급이 어려워진데다가 수출에 치중하던 의류 대기업이 내수시장에 진출하면서 청계천의 시장지배력이 급격히 줄어든 까닭도 있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지대(地代)와 지리적 접근성으로, 공장과 노동자들은 인근 창신, 신당, 장충동 등지로 옮겨간다. 하도급의 시작과 성립이다.
 
청계천 양측으로 길게 늘어선 의류상가와 높이 솟은 수십 개 패션몰이 구축한 동대문 패션타운. 멀리 청계천에선 패션쇼가 열리고 있음.
▲ 청계천과 동대문 패션타운 청계천 양측으로 길게 늘어선 의류상가와 높이 솟은 수십 개 패션몰이 구축한 동대문 패션타운. 멀리 청계천에선 패션쇼가 열리고 있음.
ⓒ 이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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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이 '동대문 패션타운'으로 변모하고 K-패션이 세계 패션계를 선도하고 있는 지금도,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패션타운은 창신동 등 주변 봉제거리에 여전히 의존하고 있다. 봉제 노동자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자긍심과 자괴감 사이

의류 산업도 비용에 민감했다. 비교적 유행에 둔감한 신사복 제작은 임금이 더 싼 중국과 동남아로 이전한 지 오래고, 민감한 여성복이 동대문 주변에서 제작된다. K-패션은 주문자 요구사항에 즉시 대응 가능하다는 장점으로, 대량생산보다 소량 다품종이 대세를 이룬지 오래다. 이런 영향으로 한때 3천여 곳이던 창신동 봉제공장 수가 급격히 줄어 1천여 곳 남았다. 여기에 수십 년간 별로 오르지 않은 공임(직공들 품의 대가)은 이중 고통이다.
 
'이음피움봉제역사관' 2층 전시실에 그려진 창신동 지역 봉제공장 현황.
▲ 봉제공장 현황 "이음피움봉제역사관" 2층 전시실에 그려진 창신동 지역 봉제공장 현황.
ⓒ 이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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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다. 옷이 갖는 품위의 다른 표현이다. 격을 옷만으로 평가할 순 없겠으나,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봉제인은 기술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하다. 아름답고 멋진 옷, 예쁜 옷을 짓는 손길에 자긍심이 없다면 이율배반이다. 품위를 높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기술로 아름다움을 짓는 일이며, 궁극은 창조다.

이렇듯 봉제는 삶과 인품을 일궈가는 기술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로 고된 노동이기도 하다. 가내 수공업 수준의 작업장 환경은 열악하고, 많은 종사자가 객공이다. 이런 고용환경은 4대보험에 취약함을 뜻한다. 사회보장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봉제거리박물관 어느 공장 벽에 표현된 시간대별 창신동의 하루.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일상을 잘 표현하고 있음.
▲ 창신동 하루 봉제거리박물관 어느 공장 벽에 표현된 시간대별 창신동의 하루.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일상을 잘 표현하고 있음.
ⓒ 이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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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서울봉제인노동조합'이 창립되고, 1년 후 '봉제인공제회'가 세워져 노동환경과 임금 개선, 소액대출 및 퇴직공제부금 마련 등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많은 제약 요소가 있는 것도 현실이다. 자괴감이 드는 대목이다.

자긍심과 자괴감의 틈을 좁히는 일은 결국 '어떻게 활력을 불어넣을 것인가?'로 귀결된다. 의류 산업의 이익분배와 재편이 화두일 것이나, 이는 거대 담론이다. 활력있는 골목은 일감 창출과 직결된다. 아울러 창신동 봉제거리라는 공간구조를 어떻게 지키고 가꿔나갈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도시재생과 불가분의 관계로 이해해야 하는 지점이다.

도시재생

도시재생의 핵심은 '공간과 장소의 매력 창출'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람을 끌어모으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조화로워야 한다. 하드웨어는 도시 인프라 개선이다. 오로지 공공부문 몫이다. 골목을 넓혀 단장하고 공영주차장을 만들며 상하수도 및 전기, 에너지 공급시설을 개선하고, 소방·방재시설이 취약한 곳에 적정 시설을 설치하는 등의 일이다. 이런 바탕이 이뤄지면 민간의 소프트웨어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동대문 패션타운과 창신동 봉제거리 간, 4단계로 축약된 옷 만드는 공정이 설명되어 있는 봉제거리박물관 전시물.
▲ 의류 생산 공정 동대문 패션타운과 창신동 봉제거리 간, 4단계로 축약된 옷 만드는 공정이 설명되어 있는 봉제거리박물관 전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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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부터 시작된 도시재생에, 창신동 활동가들은 그간 여러 노력을 기울여왔고 다양한 성과를 거뒀음도 사실이다. '봉제거리박물관'이 생겨났고 '이음피움 봉제역사관'도 들어서 봉제거리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고 있다. 조선총독부 건물 재료로 사용되기도 한 창신동 채석장 자리에 '전망대'가 들어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의상 디자인을 전공한 청년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예술과 문화행사가 벌어지며, 봉제를 기반으로 하는 패션쇼가 열린다. 협업을 통한 생산구조의 변화 조짐도 보인다. 백남준 등 창신동에서 살았던 문화·예술인의 옛집 등 묻혀 있던 역사가 발굴되어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몇몇 사회적기업이 여러 공익사업을 벌이고 있으며, 도시재생 스타트업도 관심을 보이며 투자에 나서고 있다. 공간구조가 좋은 방향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는 징조다.
 
창신동에서 그나마 규모를 갖춘 공장이 많다는 골목 풍경. 곳곳에서 돌아가는 재봉틀 소리가 정겹다.
▲ 봉제거리 골목 창신동에서 그나마 규모를 갖춘 공장이 많다는 골목 풍경. 곳곳에서 돌아가는 재봉틀 소리가 정겹다.
ⓒ 이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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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창신동 도시재생은, 미흡한 인프라 개선에 발목 잡혔다. 서울시 책임으로 긴 시간 동안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삶의 질을 개선하겠다는 확고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 도시정부 수장인 오세훈이 "벽화 그리기로 대변되는 도시재생사업"이라는 엉뚱한 말을 하기 전에 말이다.

재생과 철거의 갈림길

창신동은 이미 오래전, 도시재생을 지속하려는 주민과 재개발을 밀어붙이려는 주민으로 편이 갈려버렸다. 정치인 등 토건족이 주입한 삿된 욕망이 빚어낸 비극이다.

2007년 지정된 뉴타운에, 소송으로 맞선 주민의 극렬한 반대로 뉴타운이 해제된 1호 지역이다. 박원순 시장에 이르러 '도시재생 선도사업지구'로 지정(2014)되어 생활 공동체 보존과 복원이라는 '서울형 도시재생 사업지구'로 탈바꿈한다.

다시 시장이 된 오세훈은 그간의 도시재생 성과를 폄훼하기 바쁘다. 이를 지워내려는 듯 작년 12월 창신동 일부 지역을 '신속통합기획 민간 재개발 후보지'로 선정한다. 이는 인허가 기간 단축과 도시계획 등에 서울시가 개입하고, 시행은 조합 등 민간이 주도케 하는 철거재개발이다.

뉴타운 도돌이표다. 사업을 주도하는 '창신동 재개발추진위원회'는 애초 공공 재개발을 선호하다가, 임대주택 의무비율이 없는 민간 재개발로 선회했다. 회피책이다. 하지만 여전히 핵심 쟁점은 분담금이다.
 
봉제거리박물관이 있는 골목 초입. 오른쪽에 초록색으로 단장한 '전태일 재단' 건물이 보임.
▲ 봉제거리 봉제거리박물관이 있는 골목 초입. 오른쪽에 초록색으로 단장한 "전태일 재단" 건물이 보임.
ⓒ 이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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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적 보존을 말하는 건 어리석다. 도시 공간은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시재생에 시간제한이란 있을 수 없다. 긴 시간을 갖고 공간구조를 변화시키겠다는 마음가짐과 실천이 우선이다.

철거재개발은 더더욱 어리석은 짓이다. 머니게임으로, 용적률 따먹기와 다름 없는 도시 약탈이다. 철거재개발 이전에 단위 토지당 분담금이 얼마인지, 둔촌주공 재건축 등 사례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위험요인을 반영한 경우의 수만큼, 상황별 구체적 액수가 제시되어야 한다.

토지나 건물 소유자와 임차인은 어떤 혜택과 손해를 입게 되는지도 명확히 알려야 한다. 그러함에도 주민 대다수가 동의한다면 재개발하라. 하지만 현재의 생활과 기능, 문화와 역사 공동체 파괴는 불가피하다. 봉제거리도, 그 삶도 사라진다.
 
동대문 북쪽 낙산 성벽에서 바라본 창신동 풍경.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이는 이 동네가 도시재생과 철거재개발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음.
▲ 창신동 동대문 북쪽 낙산 성벽에서 바라본 창신동 풍경.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이는 이 동네가 도시재생과 철거재개발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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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은 변해야 한다. 뉴욕 파수꾼인 도시사회학자 제인 제이콥스는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이란 책에서 '작은 블록과 오래된 건물이 도시 다양성의 요체'라 갈파한다. 오래된 공간 철거로 골목을 없애, 더 넓은 직선 가로와 고층 건물을 세운다고 도시경쟁력이 높아지는 건 아니다. 똬리 튼 고층 아파트는 하늘을 가렸고, 거대해진 블록(大街區)의 수만큼 서울은 이미 충분히 거칠어졌다. 그래서 길을 걷고 있으면 더 빨리 피곤해진다.

덧붙이는 글 | 취재에 많은 도움을 주신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의 도슨트님과 관계자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태그:#창신동_봉제거리, #전태일_평화시장, #도시재생_철거재개발, #자긍심_자괴감, #객공_공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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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레 타인과 소통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그래도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소통하는 그런 일들을 찾아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보다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서로 교감하면서,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풍성해지는 삶을 같이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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