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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곡1904 1978년에 지어진 옛 역사를 리노베이션 한 '능곡 1904'에서 어반스케쳐스고양 첫 정기 전시회를 한다. ⓒ 오창환
 
10월 14일 '능곡 1904'에 어반스케쳐스 고양 전시 설치를 마쳤다. 이 전시장은 구 능곡역사를 개조한 공간에 있는 갤러리인데, 처음 이 갤러리를 보자마자 우리 전시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역사성도 있고 교통도 좋은데다가 크기도 적당했다. 고양시 관광과의 도움을 받아 대관 예약을 했다.

이번 전시는 약 25명 정도가 참가하는 단체전인데, 아침에 각자 자기 그림을 갖고 와서 걸게 된다. 그림을 못 가져오는 경우는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기도 한다. 이렇게 여러 명이 모이면 꼭 해결사가 나타난다. 이날도 한 분이 나타나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레일과 조명 위치를 조정하고, 건물 밖의 현수막 거는 것도 간단히 해결해주셨다.

그림을 걸고 몇 명이 남아서 주변을 스케치했다. 스케쳐 한 분이 이 동네에 추억이 있다고 하신다.

"아빠가 능곡역에서 근무하시면서 우리 집이 이 동네로 이사 와서 살았거든요... 저 앞에 보이는 2층 커피숍 자리가 그 당시로서는 가장 힙하고 멋진 곳이었지요. 당시는 능곡역 앞이 상당히 번화했고, 심지어 이 동네에 나이트클럽도 있었답니다. 옛날에 알던 가게가 생각나서 오늘 몇십 년 만에 가보니까 그때 주인 아줌마는 할머니가 되었고, 딸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데, 할머니는 몸이 안 좋으시다고 해서 걱정이네요. 어렸을 때 봤던 나무 선반이 아직도 그대로 있더라고요. 할머니랑 사진을 찍고 나오는데 눈물이 나오더군요."
 
능곡역사는 물받이까지 달린 한옥을 모델로 한 듯하다. 처마가 하늘로 치켜올려져 있다. ⓒ 오창환
 
능곡역은 1904년 경의선 역으로 영업을 시작하였고, 1963년부터는 경의선과 교외선의 분기역이 되었다. 현재 '능곡 1904'로 사용되는 구역사는 1978년에 건축되었다. 2004년 누적된 적자로 교외선 영업이 중단되었다.

2009년 경의선 전철이 개통하였는데, 구역사로부터 200m 남쪽에 전철역사를 신축했다. 2021년에 옛 능곡역사를 복원하고 새로운 공간을 증축해 복합 문화공간 '토당 문화플랫폼 1904'가 문을 열었다.

'능곡 1904'는 70년대 후반에 건축된 건물인데, 그때는 한참 콘크리트 한옥이 유행하던 때라 이 건물도 철근콘크리트 한옥이다. 그런데 이 건물은 여느 한옥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한옥은 건축적으로나 미학적으로 매우 뛰어나고, 한옥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부심도 대단하다. 그런데 한옥도 안 좋은 점이 있다. 비가 왔을 때 지붕 기와 끝에서 떨어진 물이 튀어서 벽을 손상시키는 것이다. 

게다가 한옥은 흙벽이 많았기 때문에 빗물 처리가 큰 문제였다. 그래서 시골집이나 절집들은 돌로 된 기단을 높게 세워서 빗물을 기단에 튀게 한다. 그런데 근대에 지어진 도시형 한옥은 기단을 설치할 여건이 안 된다.

그때 마침 양철로 된 물받이가 나와서 도시형 한옥은 너나없이 모두 양철 물받이를 달았다. 보통 처마 물받이에 모아진 물은 선홈통으로 보아져 빗물 배출구로 나가게 된다. 여건상 선홈통을 설치하기 어려울 때는 물을 멀리 보내는 짧은 홈통을 만들기도 하는데 이를 학각(鶴角)이라고 한다. 학각은 꼭 학 모양만 있는 것은 아니고 오리도 있고 용도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한옥이 양철 물받이가 있다면 물받이를 포함한 형태를 한옥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70년대에 우리나라 문화에 대한 대대적인 열광이 생겨나서, 관공서나 공공건물을 지을 때 한옥 형태를 차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때 지었던 한옥은 외형은 한옥이지만 건물의 기둥, 보, 서까래 등이 모두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진 건물이었다. 

심지어 문화재를 복원할 때도 철근콘크리트로 건물을 만들고 외부에는 한옥 건물처럼 단청을 입혔다. 이는 일종의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으로 볼 수 있는데 동도(東道) 즉 동양의 사상, 우리의 정신은 한옥의 외형에서 찾고, 서기(西器) 즉 건축기술은 서양의 철근콘크리트에서 찾았던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구능곡역사는 궁궐이나 사찰 같은 전형적인 한옥이 아니라, 우리가 흔히 도시에서 볼 수 있는 도심형 한옥, 즉 슬레이트 지붕에 양철 물받이를 달아서 처마가 다소 과장된 그런 형태를 모델로 삼은 것 같다. 아마도 예산이 제한되어 있어서 그렇게 지었겠지만 능곡역처럼 절충형 한옥 스타일은 사례를 찾기 힘들고, 그만큼 건물의 보존 가치는 있다고 본다.

'능곡 1904'가 온전히 보이는 곳에서 그리려면 길을 건너야 한다. 그런데 역 건너편에는 그늘이 없어 해가 약한 아침에 그림을 그리러 나섰다. 앉을 자리가 마땅치 않아 서서 스케치를 하는데 근처 가게에서 관심을 보이신다.

"지난번에도 여자분이 여기서 그림 그리고 갔는데 그림이 예쁘더라구요."
"아, 저희 회원이에요. 그때 그린 그림이 저기 현수막에 보이는 그림이죠. 요즘 장사는 어떠세요?"


능곡역 앞은 상권이 많이 가라앉아 장사는 예전과 같지 않다고 하신다. 우리 전시에 꼭 구경오시라고 말씀드리고, 스케치를 마무리하고 손님들을 맞으려 전시장으로 향했다. '능곡 1904' 옆에는 주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공유 부엌 '키친 1904'가 있는데, 아담하고 깔끔한 공간이다. 

그곳에는 쿠킹클래스를 진행할 수 있는 주방 시설도 있고 식탁도 있어서  전시 마지막 날인 22일에 포트럭  파티를 하려고 예약을 했다. 회원 각자가 음식을 준비해와서 먹고 마시는 자리다.

그날은 전시로 올해를 마무리하는 자리니까 긴장의 끈을 풀어놓고 웃고 떠드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겠다. 우리나라 잔치는 누가 오든 마다하지 않는 법이니, 많이들 오셔서 그림도 감상하고 즐거운 대화도 시간도 가졌으면 좋겠다.
 
전시 포스터는 어반스케쳐답게 고무 스템프를 겹쳐 찍어서 아나로그 방식으로 만들었다. 22일에 '키친 1904'에서 포트럭 파티를 한다. ⓒ 오창환

덧붙이는 글 | 고양신문에도 게재됩니다

태그:#토당문화플랫폼1904, #능곡1904, #키친1904, #능곡역, #어반스케쳐스고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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