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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달라졌으면 좋겠다" 정치에 대한 주민들의 오래된 숙원이기도 하다. 이런 주민들에게 "한 명만 있어도 정치가 바뀐다"고 자신있게 답하는 사람들이 있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진보당 지방의원들의 공통점은 '꾸준히 지역을 일궈왔다'는 것이다. 이들이 현장에서 일궈낸 정치가, '이상한 정치'의 한국사회에서 주목해야 할 점이 아닐까. 그 첫 번째로 30년 동안 농민운동, 지역정치를 일구며 2022년 전남도의회와 전북도의회에 입성한 오미화(전남 영광), 오은미(전북 순창) 의원을 만났다.[기자말]
운명처럼 향한 농촌, 30년 동안 지역을 일구다

오미화, 오은미 의원의 공통점은 대학졸업 후 '농촌현장'으로 향해, 여성농민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농민운동을 일구고 정치에 입문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왜 농촌으로 향했고, 어떻게 지역 정치를 시작했을까.

전남 영광의 오미화 의원은 서울에서 태어나 덕성여대를 졸업한 '87학번 대학생'이다. 원래는 특수교육과를 가고 싶었을만큼 봉사에 관심이 있었고, 사회봉사동아리에서 만난 농촌이 그의 운명을 바꿨다.

"87학번이지만 학생운동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데모 나가는대신 88올림픽 기념품 만드는 알바도 하고 미팅도 했죠. 그러다 사회봉사동아리에 들어갔는데 농촌 봉사를 가더라고요. 거기서 운동을 배웠고, 다들 졸업하고 '현장' 가는 분위기였는데 저는 농촌을 가기로 했어요. 영광농민회에서 실무자, 당시 간사일을 할 수 있게 되어 내려왔어요. 영광에서 배우자를 만나 결혼했죠."

서울에서 내려온 대학생의 농촌 적응이 쉽지는 않았다.

"남편과 시부모님이 농사 지으셨고, 저는 농사일도 돕고 동네 아이들도 가르치고 그랬어요. 서울에서 대학까지 나오고 하니 처음엔 다들 어려워하시기도 했지만, 누구 돌아가시면 장례일도 같이하고, 언니 언니 하면서 언니들과 친해지고. 남편 찾아온 형님들과 술 한잔하며 친해지고, 그렇게 점차 마음을 트고 지냈죠."

남편 상 치르고 주변에선 "서울 돌아갈 거지?" 했지만
 
지역주민과 만나 특산물을 들고 환히 웃는 오미화 의원
 지역주민과 만나 특산물을 들고 환히 웃는 오미화 의원
ⓒ 진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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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뜻밖의 일이 생겼다.

"10여 년 전에 배우자가 먼저 세상을 떠났어요. 그 전에 시부모님도 이미 고향을 떠나셨고요. 영광 염산면이 배우자 고향이었고 제가 시집온 거니까 연고가 사라진 거죠.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요. 이제 서울 돌아갈거지?

사람들이 돌아갈거야? 물어보는 것도 아니고 돌아갈 거지? 당연히 여기더라고요. 그래서 곰곰히 생각하게 됐어요. 내가 여기에 왜 왔지? 내가 여기서 하고 싶었던 일들이 있었는데, 다 이뤘나? 그러고보니 이대로 돌아가는 건 아니겠더라고요. 사람들한테 말했어요. '저 여기 뼈 묻어야 해요, 이제 영광에서 지낸 시간이 더 긴데, 제 고향이고 우리 애들 고향이에요.'"(오미화 의원은 성인이 된 딸과 아들, 두 자녀를 두고 있다)

그렇게 다시 한번 마음을 먹고 고향에 정착했다. 지금 오미화 의원이 사는 곳은 전남 영광 염산면 마을 한 가운데, 영광에 내려왔을 때부터 살던 동네다.

"마당에 차라도 주차돼 있으면 동네 어르신들이 '오미화 의원 있는가' 하고 들르셔요. 아무래도 도의원이니 동네에 자주 오는 게 아닌데, 그렇게라도 뵐 수 있으니 좋죠."

"지금 예수라면 어디에 가 있을까?" 농촌으로 향한 신학생
 
지역주민을 만나 인사하는 오은미 의원
 지역주민을 만나 인사하는 오은미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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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한일신학교 신학과를 나온 오은미 의원 역시, 30여 년 전 대학을 졸업하고 농촌으로 향했다. 순창군 농민회를 만들어 농민운동을 하던 남편과 순창군 농민회를 보고 전북 순창으로 향했다.

"지금 예수라면 어디에 가 있을까? 생각하다 농촌으로 가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때는 정말 농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치는 기대도 못했어요. 정치는 서민들과 약자들에게 관심이 없었죠. 그땐 그냥, 앞뒤 없이 열심히 했어요."

오은미 의원은 2006년 농민 비례대표 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했고 그 이후 '앞뒤 없다'는 말 그대로 농민들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특히 밭직불금 조례를 만들고 예산 편성을 위해 '단식'까지 하면서 농민들의 기억에 남는 정치인이 됐다. 

"농민 위해 밥 굶어준 오은미" 이름 그려가며 외워 투표한 여성농민들

2009년에도 2022년 올해처럼 쌀값이 폭락했었다. 오은미 의원은 "국가가 할 일이 있고, 전북도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근데 도가 꿈쩍을 안 하더라"고 그때를 회상했다.

당시 오은미 의원의 대표발의로 밭직불금 조례가 통과된 상황이었다. 쌀직불금처럼, 밭농사를 하는 농민들에게 밭면적을 기준으로 직불금을 지급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전북도에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예산 편성을 하지 않았다. 도의원 오은미는 예산 편성을 요구하며 도청 현관에서 21일 동안 밥을 굶었다. 그 해 전북의 쌀직불금 예산은 60억 원에서 100억 원으로 증액됐다. 그러나 밭직불금은 계속 미뤄지고 있었다.

2010년, 다시 도의원으로 출마한 오은미 의원. 지역에서는 "농민 위해 밥 굶어준 정치인이 어디 있었느냐"고 소문이 퍼졌다. 선거 기간 글씨를 모르는 여성농민들은 명함에 있는 오은미 이름을 따라 그려서 외웠다. 허리가 아픈 사람들도 일어나 지팡이를 짚고, 투표장을 찾았다. 지역언론의 한 기자는 오은미 의원을 이렇게 표현했다. '농민들의 심장에 박힌 정치인'. 

재선된 오은미 의원은 밭직불금 도입을 위해 끈질기게 싸웠고, 5년만에 마침내 전북도가 손을 들었다. 전북에는 전국 최초로 밭직불금이 생겼다.

진보정치, 지역을 일구다
 
주민들과 만나 이야기나누는 오미화 의원
 주민들과 만나 이야기나누는 오미화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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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을 일궈온 이들의 정치는, 지역 주민들의 기대와 응원을 자양분으로 한다. 어느 의원이 안 그렇겠냐마는, 만나는 주민들마다 응원과 격려가 쇄도한다. 동네 축제장에서 오미화 의원과 마주친 주민은 카메라를 든 기자를 보자 "우리 의원님 잘 부탁드린다"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특히 평생을 농촌에서 살아온 여성 농민들에게, 이들의 존재는 남다르다. 

"여성농민분들이 그러세요. (오미화 의원이)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도 자랑스러워. 이런 걸 생각하면, 정말 많은 여성들이 정치에 도전했으면 좋겠어요."
 
지역 행사장에서 주민들을 촬영하는 오은미의원
 지역 행사장에서 주민들을 촬영하는 오은미의원
ⓒ 진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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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은미 의원은 길을 걸으며 모든 주민들과 인사하느라 걸음이 지체되곤 한다. "차마 못 보고 지나치면, 주민이 서운해 하신다"며 지나가는 차를 불러 세워 운전자와도 인사를 나눈다. 노인의 날 행사장, 지역 어르신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에 휴대폰 카메라를 들어 촬영하며 기뻐하기도 한다. 평소에도 주민들과 사진 찍고 인사하는게 '너무 행복하다'는 오은미 의원.

"주민들 만나는걸 '일'이라고 생각하면 못 그래요. 만날 때마다 주민분들 사랑이 느껴지니 마냥 행복하더라고요."

권한과 지위를 아낌없이 쓰는 정치... "한 명만 있어도 바뀐다"
 
지역주민들에게, 자신의 모든것을 아낌없이 쓰고 싶다는 오은미 의원
 지역주민들에게, 자신의 모든것을 아낌없이 쓰고 싶다는 오은미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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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생각하는 지역정치인의 소명 중 하나는, '정치인으로서의 모든 권한과 지위를 아낌없이 주민들에게 돌려드리는 것'이다. 3선 의원이 된 오은미 의원은, 전북 유일의 진보정당 도의원이지만, 혼자서도 자신있다고 말한다. 

"농민분들이 공무원 한 명을 만나는 걸 어려워하시는데, '내 편' 의원 한 명 생기니까 달라지는걸 느끼세요. 그런 정치적 효능감을 드릴 수 있어 기쁘죠. 그리고 주민들과 같이 문제 보따리를 싸들고, 같이 군청으로 도청으로 가면서 문제를 해결할 때 보람이 있고 재미도 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다는걸, 정치를 할 수록 깨닫죠. 한 명만 있어도 정말 바뀌어요.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많거든요."

"농업, 농민을 지켜낼 단 한 명의 의원이 되겠다"
 
지역주민들이 행복한 정치를 꿈꾸는 오미화 의원
 지역주민들이 행복한 정치를 꿈꾸는 오미화 의원
ⓒ 진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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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지역, 국가가 포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농업과 농민. 오미화, 오은미 의원을 비롯한 진보당의 농민의원들은 '농민수당'을 만들어내며 농민을 대변하는 정치의 첫발을 뗐다. 오미화 의원은 '농민수당'과 '여성농업인행복바우처'의 보람을 이야기했다.

"농민수당을 받으신 이장님들 1000명한테 설문조사를 했었어요. 농민수당의 긍정효과 1위가 '자긍심'이라고 답하세요. 실제 금전적 이익보다도, 농업과 농민의 가치를 인정해주니 자긍심이 느껴지신다는 거예요. 여성농업인행복바우처도 그래요. 평생 밭일을 해온 여성농민들이 어디 가서 손 내미는 걸 싫어하셔요. 일해서 투박해진 손이 부끄러울 때가 있는거죠. 그런 분들이 '여성농업인행복바우처'를 받았을 때 그렇게 기쁘셨다고 해요. 여성농민이라는 존재 자체가 인정받은 거라서요."

오은미 의원은 새롭게 '거주수당'을 제안하고 있다. 

"순창에서 올해 태어난 아이가 60명뿐이에요. 돌아가신 분들은 360명이고요. 순창은 인구 감소율 1위 지역이에요. 순창이 작지만 행복한 도시인데 안타깝죠. 지역을 살리려면 인구 유입도 좋지만, 무엇보다 지역을 지키며 살고 있는 주민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행복하게 만들어줘야 합니다. 수당이야말로 단순히 돈이 아니라 자긍심이거든요."

지역에서 30년, 농민운동과 지역정치를 일궈온 이들은 농업과 농민들의 '자긍심'을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걸 다하겠다고 말한다. 

"주민들이 자기가 살던 그대로 행복해지는 것, 그게 지역정치인이 할 일 아닐까요. 농업과 농민이 버려지는 일 없도록 지켜내는, 그 한 명의 의원이 되겠습니다."
 
지역주민과 손을 맞잡은 오은미 의원
 지역주민과 손을 맞잡은 오은미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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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주민과 손을 맞잡은 오미화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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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진보당은 지방자치위원회(위원장 장진숙)를 두고, 지역정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지방의원> 연재기획은 지방자치위원회 편집팀에서 공동 취재해 기고한 글입니다.


태그:#지방자치, #지방의원, #진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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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서민의 정당 진보당 공동대표, 지방자치위원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진보당 지방자치위원회에서는 지역정치, 지방자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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