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25 11:43최종 업데이트 22.10.28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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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2호선 합정역 자동심장충격기 안내문 ⓒ 최준화


시민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서울 지하철, 언제 다급한 일들이 벌어질지 모르는 공간이다. 서울 지하철은 다급한 상황에서 필요한 물품이나 문구를 여기저기 많이 비치하고 안내하고 있다.

그런데 생명과 직접 연관된 안내문 중 시민과 안전을 배려하지 않은 언어들이 많이 쓰이고 있다. 종종 뉴스로 나오는 '자동심장충격기'에 대해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 지하철 2호선 합정역 설치물을 중심으로 살펴봤다.

아예 영어로만 돼있는 안전 설치물
 

주요 제목을 아예 영어로만 표기한 안내문(합정역) ⓒ 최준화


'자동심장충격기'는 중앙 부착물에는 이 말을 앞세웠으나 옆면은 영어(AED)와 '자동제세동기'만을 사용하고 있다. 설명문에는 '자동심장충격기'는 온데간데없고 '자동제세동기'라고 해 놓았다.

"자동제세동기를 켜고, 패드를 붙이세요.", "지시에 따라 제세동을 시행하세요"라고 약칭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안내문처럼 "우리 이웃이 쓰러지면 1분 안에 심폐소생술을 시작하고 3분 안에 자동제세동기를 사용합시다"처럼 하려면 당연히 용어와 관련 설명이 있어야 한다.


심장(염통)을 뛰게 하는 전기 제품은 "HEARTON AED 사용법"이라고 주요 제목이 아예 영어로만 되어 있다.

휴대용 비상조명등은 "유사시 아크릴판을 위로 열고 사용하십시오"라고 해 놓았지만, '아크릴판'을 알기 어렵다. 차라리 아크릴판을 '투명 뚜껑'이라는 일상어로 사용하는 것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합정역과 서울교통공사와 보건소, 제작사인 ㈜메디아나에 왜 이런 말을 사용했는지를 전화로 문의했다. 제작사 전화는 바뀌었는지 아예 연결이 되지 않았고 관리자 표시가 되어 있는 마포구 보건소로 전화했더니 자신들이 관리하는 것은 맞지만, 시설물 용어 문제는 합정역 책임이므로 쉬운 용어를 권고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합정역 관리자에게 문의했더니, 합정역이 현장 관리는 하지만, 관리 주체가 아니므로 본사(서울교통공사)에 문의하라고 했다. 서울교통공사 관련 부서인 '영업기획부'에 전화했더니 관리 주체는 보건소이므로 시설 용어 책임도 보건소에 있다고 했다.

다만 올해 11월부터 새로 설치하는 것은 서울교통공사가 맡아서 하기로 했으므로 그때 쉬운 말을 사용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결국 생명과 직접 연관된 기기 설치와 관리에 대해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격이어서 더욱 우려가 됐다.

왜 이렇게 어려운 말이? 
 

영어 남용을 경고한 <말이 쉬우면 더 행복해> 표지 ⓒ 한글문화연대


한글문화연대는 최근 어려운 공공언어를 바로잡는 만화 책 <말이 쉬우면 더 행복해>(최솔 그림, 최재훈 글)를 펴냈는데, 표지 그림에서 '자동심장충격기'를 앞세우고 있다. 최재훈 작가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런 만화책을 낸 이유에 대해 "생명과 직접 연관된 공공언어에까지 영어 남용과 어려운 말을 마구 쓰는 것이 이해도 안 가고 화가 나 더욱 강조했다"라고 한다.

합정역 1번 출구 바로 옆 마리북스 출판사에서 근무하는 이용혁씨는 "'자동제세동기'라는 말이 늘 뜨악스럽고 'AED'가 회사 이름인 줄 알았다"며 "이런 어려운 말이 사용된 제품들은 아예 입찰 과정에서 걸러내야 한다"라고 했다. 우리말 운동가 정혜인씨는 페이스북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 누리집에서 '자동심장충격기'라고 안내하고 있는데도 지하철에서 제대로 사용하지 않고 있어 급할 때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것 아니냐 답답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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