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바둑 최정 9단이 여자기사로는 최초로 메이저 세계대회 결승에 올랐다. 11월 4일 열린 2022 삼성화재배 세계바둑 준결승에서 최 9단이 한국 랭킹 2위 변상일 9단을 꺾은 것이다.

최 9단은 16강전에서 일본의 대표 기사인 이치리키 료 9단을 격파했고, 8강전에서는 중국의 대표기사 양딩신을 제압하면서 준결승에 진출한 바 있다. 사실 세계대회에서 여자기사가 준결승에 오른 것도 1992년 전설적인 중국 여성기사 루이나이웨이 9단에 이어 사상 두 번 째 쾌거였다.
 
'오만'이 무너지다

 
바둑은 그간 도(道)나 예(藝)의 세계로 지칭되어왔다. 특히 일본에서 그러한 경향이 강했다. 세계 바둑계를 일본이 오랫동안 평정해왔기 때문에 바둑에 대한 이러한 시각은 우리나라에서도 자연스럽게 일반화되었다. 불과 몇 년 전에 이세돌 기사와 인공지능, AI가 대결했을 때만 해도 인공지능이 고차원의 바둑을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론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오만이 붕괴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 후로 몇 년이 지나지 않아 그간 천하의 묘수라고 칭찬이 자자하던 수들이 최선의 수가 아니며 심지어 엉터리 수로 판명되기 시작했다. 거의 모든 정석(定石)이 속절없이 폐기되어야 했다. 이른바 명국(名局)에 대한 적지 않은 그간의 해설과 평가들도 실은 오류라는 사실이 잇달아 밝혀지고 있다.
 
그간 바둑계에서는 여성이 바둑에서 남성에게 현격하게 실력이 부족하여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정설 아닌 정설로 굳어져왔다. 그리고 이러한 '남성 우월주의'는 바둑계에서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그간 남성 기사들이 여성 기사에 비해 압도적인 성적을 보였던 것은 이제까지 바둑이 사실상 남성에 의해 독점되어왔고, 따라서 바둑을 전업으로 하는 프로기사의 수에서도 남성이 압도적인 비율을 점해왔기 때문이었다고 판단한다. 남성에 의해 독점된 바둑계에서 예전에는 바둑의 수(手)를 배우고자 하려면 남성 최고수들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했다. 오직 그들 고수들만 더 좋은 수와 방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 무엇보다도 상황이 달라졌다. 별도의 고수나 스승이 필요없는 시대이고, AI가 모든 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바꿔말하면 누구나 재능 있고 열심히 공부하면 가장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거기에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은 무의미하다.
 
물론 아직 프로바둑 기사 중 남성의 비율이 훨씬 많고 또 그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앞으로도 남성의 바둑 성적이 앞설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남성과 여성의 구분이 없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돌이켜본다면, 고등학교나 대학의 학업성적도 예전에는 남학생이 훨씬 앞섰다. 기본적으로 학업 자체가 오랫동안 여성에게 기회가 제한되면서 결국 남성에 의해 독점되어왔기 때문이었다.

남녀 차별이 사라진 오늘날에는 남녀 간 차이가 거의 나지 않고 오히려 여학생이 앞선 결과도 많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바둑 역시 머지 않아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무의미해지고 오히려 여성이 앞서는 경우도 적지않게 나타날 것으로 생각된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바둑 최정 AI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국제관계학 박사,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근무하였고, 그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이상한 영어 사전>,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 <논어>, <도덕경>, <광주백서>, <사마천 사기 56>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시민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 그리고 오늘의 심각한 기후위기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