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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9일 밤 서울 이태원에서 핼러윈 축제를 즐기던 시민들 156명이 압사당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수많은 언론은 이를 '이태원 참사'라고 명명했다. 이태원에서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지난 5일 MBC는 '이태원 참사' 말고 '10.29 참사'로 부르기로 했다고 알렸다.

MBC의 발표 전부터 '이태원 참사'로 불러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다. 왜 그렇게 부르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지 이유를 듣기 위해 지난 4일 신 교수와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래는 신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

"10.29 참사로 부르자고 이야기한 이유는..."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신지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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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29일 서울 이태원에서 벌어진 참사를 '이태원 참사'라고 부르잖아요. 근데 교수님은 2일 소셜미디어에 이태원은 책임이 없다며 '10.29 참사'라고 부르자고 제안했습니다. 왜 이런 제안을 하셨나요?

"국내 언론에서는 거의 다 '이태원 참사'로 표현하고 있고요. 그리고 외신을 보면 '서울 크라우드 크러시'라고 '서울'을 넣었습니다. 그런데 좋지 않은 것에 서울이나 이태원이라는 이름들이 들어가는 게 과연 괜찮을지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았습니다. 이건 저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2019년부터 세계를 흔든 감염병의 이름이 처음에는 '우한 폐렴'이라고 불리다가 2015년 새로운 질병 이름에 대한 WHO의 권고안에 따라 COVID19이 되면서 국내에서는 국민들이 쉽게 부를 수 있는 '코로나19'가 된 것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WHO는 이름을 붙일 때 '이러이러한 것들은 쓰고 이러이러한 것들은 쓰지 말자'라는 지침을 만들었고 그 지침에 의해서 이런 것들이 나왔는데요. WHO의 권고안을 보면 가능한 것에는 병에 대한 설명 용어라든지 원인균과 관련되는 용어 그 다음에 첫 발생 연도 그 다음에 임의 식별 기호 같은 것들은 괜찮다고 돼 있습니다.

그런데 쓰지 말아야 한다고 지침에 들어가는 게 도시나 국가 지역 대륙과 같은 지리적인 위치라든지 아니면 사람의 이름이나 동물이나 음식, 문화, 인구 산업 직업명 등으로 돼 있습니다. 왜냐면 그런 것이 이름에 쓰여면 낙인이 찍혀서 혐오감을 주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거든요. 이번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거든요. 그래서 이태원이라는 지명을 넣거나 서울 참사라고 얘기하는 것보다는 지명이 들어가지 않는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 좋겠다는 겁니다."

- 이전에도 용산 참사, 상주 참사 등 지역 이름이 붙는 경우가 있었는데.

"물론이죠. WHO의 권고안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스페인 독감 같은 것도 있었고요. 지카 바이러스, 돼지 독감 이런 식으로 지명이나 동물명이 들어가는 경우가 있었죠. 그런데 WHO가 이런 식의 이름 붙이기에 낙인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안 뒤 2015년에 권고한을 만든 겁니다. 옛날에 그랬기 때문에 지금도 괜찮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 낙인 효과의 가장 큰 문제점은 뭘까요?

"예를 들어 '이태원'이라는 이름이 '참사' 앞에 들어가면 사람들은 이태원이라는 지역이 매우 위험하고 가면 안 되는 곳으로 생각할 수 있어요.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나 그 지역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 그 지역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낙인이라는 건 긍정적인 효과가 아니라 부정적인 효과가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10.29 참사'로 부르자고 얘기한 겁니다."

- 명칭이 바뀔 수 있을까요?

"바뀔 수 있으려면 우리가 동의해야 해요. 바뀔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저는 이 예를 듭니다. 옛날엔 국민학교였잖아요. 그런데 국민학교가 하루아침에 초등학교로 바뀌었어요. 그건 국민학교가 황국신민의 학교라는 개념에서 온 거라는 걸 알고 우리는 더 이상 일본의 식민지가 아닌데 왜 우리가 그런 학교를 다녀야 되냐는 물음에서 초등학교로 바꾸는 데 모두 다 동의했고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바꿨죠.

또 최근에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일어났죠. 우리는 전쟁 전에 우크라이나의 수도를 키예프라고 불렀어요. 그런데 키예프는 러시아식 발음이었어요. 그래서 러시아식 발음으로 부르지 않아야 한다고 우크라이나 쪽에서 이야기했죠. 언론 등이 이 이야기에 동의해서 '키예프' 표기를 버리고 우크라이나 발음으로 '키이우'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꿀 거냐 아니냐는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에 달렸다고 봅니다."

"유족과 상의도 않고 사망자라 부른다면..."
 
한덕수 국무총리, 오세훈 서울시장, 이상민 행안부장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10월 31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 마련된 '이태원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에서 조문을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 오세훈 서울시장, 이상민 행안부장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10월 31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 마련된 '이태원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에서 조문을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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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참사가 아닌 '사고'로 규정하고 희생자가 아닌 '사망자'로 부르라고 해서 논란입니다. 이건 어떻게 보세요?

"정부가 합동분향소를 차리면서 참사가 아니라 '사고'라는 말을 썼고 그 다음에 희생자나 피해자가 아니라 '사망자'라고 부르겠다고 얘기했잖아요. 우리는 잘 생각해봐야 해요. 왜냐하면 정부가 분향소를 차리겠다고 얘기하면서 국가애도기간을 설정했잖아요. 그다음엔 용산을 재난지역으로 선포해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죠. 또 희생자들의 장례를 치러줄 것이고, 다치신 분들한테는 치료해 줄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일에 정부의 책임이 있다고 얘기한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이 아직 어디 있는지 모른다면서 '희생자'나 '피해자'라는 말을 쓰지 않겠다고 얘기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죠.

그리고 분향소를 차리는 건 돌아가신 분들을 추모하기 위해서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돌아가신 분들은 이야기할 수 없으니 분향소를 차리는 데 있어서 유족들의 의견을 듣는 것은 아주 당연한 절차입니다. 그런데 유족과 전혀 상의도 하지 않고 사망자라고 부르겠다고 한다면, 유족들은 '우리 가족이 그냥 죽은 건가'라고 생각하게 되죠.

그게 아니라 사실 안전이 잘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에 희생되고, 피해를 입었는데 '희생자' '피해자'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하면... 정부는 과연 그 죽음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갖는 것인가 의문이 생깁니다. 정부의 이런 태도에 유족들을 비롯한 국민들이 '말이 안 된다'면서 저항하고 있는 것이죠."

- 참사와 사고의 차이는 뭔가요?

"사고는 더 큰 의미죠. 사고는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로 정의할 수 있고요. 참사라는 건 그중에서 정말 비참하고 끔찍한 일을 얘기하거든요. 그러니까 참사는 사고의 한 종류죠. 이번 사고는 너무나 거대한 정말 비참하고 끔찍한 일이잖아요. 그러니 이건 '참사'라고 부르는 것이 맞습니다.

'참담하고 끔찍한 사고가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될 것이고, 희생당한 분들을 위해서 참사라고 부르면서 우리가 기억할 것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끔찍하고 비참했던 일을 기억하겠다. 다음에는 절대로 이런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이 참사라는 단어를 선택하게 하는 것이죠."

-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라고 부른 기억이 있는데 그것도 안 맞을까요?

"10월 29일 일어났던 참사를 사고라고 한다고 문제가 되는 건 아니에요. 문제는 정부가 분향소를 차리면서 굳이 참사라고 쓰지 말고 사고로 쓰라고 했기 때문에 문제라는 거죠. 정부가 '참사'라고 바라보지 않고 '사고'라고 바라보겠다고 얘기하는 거잖아요. 참사라고 쓰지 말라는 건 참사가 아니라고 얘기하는 거니까요."

"'참사'가 주는 다른 의미가 있을까봐 걱정했을 수도"
 
이태원 압사 참사와 관련해 행정안전부는 공문을 통해 '이태원 사고'로 표기했다.
 이태원 압사 참사와 관련해 행정안전부는 공문을 통해 '이태원 사고'로 표기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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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도가 있다고 보세요?

"참사를 쓰지 말고 사고로 쓰라는 건 당연히 의도가 있는 거죠. 참사라는 단어가 '세월호 참사' '용산 참사'를 떠올리게 하니까 문제로 본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특히 용산 참사는 이명박 정부-오세훈 서울시장 때였잖아요. 그렇다면 '참사'가 주는 또 다른 의미가 연상적으로 있을까봐 걱정했을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지금 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거의 다 이명박 정부의 인사들이잖아요. 그리고 지금 서울시장은 오세훈 시장이고요. 그런 것과 연결이 되지 않을까라고 합리적 의심을 해볼 수 있어요."

- 용어가 주는 의미가 있겠죠?

"물론이죠. 이름 붙이기는 엄청난 틀을 짜주게 됩니다. 생각의 틀을 구성하잖아요. 어떤 단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틀이 잡히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거죠. 어떻게 그 사태를 바라볼 건지에 대한 틀을 주니까 그 틀 안에서만 생각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그 용어를 선택하는 것은 굉장히 신중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당연히 의미가 있는 일이죠. 그러니까 이태원에 낙인을 찍을 수도 있는 '이태원 참사'라는 것보다 그렇지 않은 '10.29 참사'라고 부르자는 것을 제가 제안하는 거고요."

-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주세요.

"사고를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쁜 일이 나 혹은 주변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걸 원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 나쁜 일이 일어났을 때 그걸 어떻게 부를 건가에 대해서 고민해 보면서 내게 편한 방법으로 이름을 붙일 건지 아니면 그 이름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고려해서 이름을 붙일 건지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특히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들은요.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전문성은 바로 이런 훈련과 고민이 평소에 얼마나 돼 있는지에 있습니다. 기자는 일반시민이 아닙니다. 일반시민들의 의식보다 조금은 앞서가야 진짜 언론인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WBC 복지TV 전북방송에 중복게재 합니다.


태그:#신지영, #이테원, #핼로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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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이태원 압사 참사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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