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1.14 05:01최종 업데이트 22.11.14 05:01
  • 본문듣기

2021년 4월 19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여성도 징병대상에 포함시켜 주십시오"라는 청원은 한 달 만에 29만 3140명의 국민이 동의했다. ⓒ 청와대


2021년 4.7 보궐선거에서 오세훈 후보가 박영선 후보를 큰 표 차이로 제치고 당선되었는데 출구조사를 보면 강남 3구 거주민과 60세 이상 등 전통적인 지지층뿐만 아니라 20대 남성 중 72.5%가 압도적으로 오세훈 후보에게 투표를 한 것으로 나와 큰 이슈가 되었다. 그러자 당시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선 여성징병제가 뜬금없이 호출되었다. 아마도 성난 20대 남성의 민심을 달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물론 당시 여성징병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아니었다. 정치권은 병역제도에 대한 진지한 접근보다는 당장의 표 계산만 하는 경향이 크다. 한쪽에서 군인 월급 200만 원을 외치면 다른 쪽에서도 덩달아 외치고, 저쪽에서 여성징병제를 외치면 다른 쪽에서는 여성징병제와 군가산점제 부활을 외치는 식이다. 위 논란도 여성징병제 이슈가 가진 파급력의 크기만 확인하고 곧 사그라들었다.


흥미로운 점은 여성징병제에 대한 입장이 기존의 진보와 보수로 나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당내 경선 당시 하태경 후보는 남녀 모두를 징집하는 공동징병제도를 주장하며 여성징병에 반대하는 홍준표 후보를 비판했다. 페미니스트 중에도, 안티페미니스트 중에도 여성징병제를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이 모두 존재한다. 그렇다고 찬성하는 쪽끼리 혹은 반대하는 쪽끼리 같은 입장인 것도 아니다. 여성징병제를 반대하는 보수주의자들은 전통적인 성역할 고정관념에 입각해 여성이 군대 갈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반면 여성징병제를 반대하는 페미니스트 그룹은 성역할 고정관념을 강화시키는 군사주의와 가부장제의 동맹을 비판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징병제에 대한 논의도 단순하게 찬성과 반대로 나눠서 보면 안 된다.

[쟁점1] 여성징병제는 성평등을 구현할까?

여성징병제의 필요성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은 성평등이다. 현행 징병제가 성평등과는 거리가 먼 제도이니 여성을 징병해야 한다는 주장인데, 이 주장 안에서도 하늘과 땅 차이만큼 입장 차가 크다.

먼저 남성만 징집 대상이 되는 현행 징병제도는 남성에게 차별적이기 때문에 여성도 징병의 부담을 함께 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입장이 있다. 남성들만 군대에 가면서 여성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군복무 기간이 자기계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청년 남성들의 감각은 비교적 정확하다. 과거 산업화 시기에는 군복무가 개인의 취업과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군가산점제다. 1969년 개정한 군사원호대상자고용법에 따라 국영기업체나 국가가 주식의 과반수를 차지한 기업들, 하루 16인 이상을 연평균으로 고용한 기업들에서는 채용시험에서 군복무를 마친 이들에게 가산점을 주었다. 1999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이런 방식의 군가산점제는 없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사업주들은 군대 다녀온 남성을 선호했다. 군대에서 배운 것들, 예컨대 윗사람의 명령에 복종하는 문화나 정해진 시간에 맞춰 노동하는 것이 익숙한 신체적 정신적 준비가 회사 생활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구조가 바뀌면서 과거와 같은 남성성은 환영받지 못한다. 20대가 가장 가고 싶어 하는 트렌디한 기업들에서는 명령에 복종하고 시키는 일만 잘 해내는 수동적인 사람보다는 창의적인 인재를 선호한다. 그러니 과거보다 짧은 군복무라고는 하지만 개인이 실제로 느끼는 부담과 단절감은 더 커지는 것이다. 하지만 군복무가 더 이상 취업시장에서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남성에 대한 차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군대 가지 않는 사람들을 차별했던 것들이 사라져 가는 추세라고 봐야 할 것이다.

남성이 차별받는다는 생각은 기실 군복무에 대한 합당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것에 대한 반감에서 기인한 감정이다. 여성들이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군대에 간다고 해서 남성들이 군복무에서 느끼는 박탈감이나 어려움은 줄어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사회와의 단절, 강압적인 위계질서에서 겪는 고충, 최저임금도 안 되는 노동 착취 같은 문제는 여성이 징집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반면 징병제가 여성을 차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은 징병제가 가지는 시민권 획득의 의미에 주목한다. 징병제는 군대 갈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과 군대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자격을 나누는 제도이고 이 자격은 시민의 권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군대에 징집될 자격이 없는 여성이나 장애인, 이주민들을 차별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투표권이라는 명명백백한 제도적 형태로 국민과 비국민의 차이가 나뉘어졌다면 지금은 문화적인 차별과 제도적인 차별이 혼재되어 있다. 이주민의 경우 군대도 가지 못하고 투표권도 없으며, 여성이나 장애인의 경우 투표권은 있지만 다른 제도적 차별을 겪기도 하고, 일상적인 문화적 차별을 겪기도 한다. '군대 갔다 와야 사람(남자) 된다'는 편견이 이런 일상적인 차별의 근거가 된다.

하지만 군대 갈 자격이 없는 여성들이 군대에 갈 자격을 획득하더라도(혹은 장애인이나 이주민들이 징집 대상자가 된다고 하더라도) 평등이 구현되는 것은 아니다. 여성징병제의 예시로 늘 거론되는 나라가 이스라엘과 스웨덴과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다. 두 경우는 조금 다른데 이스라엘의 경우 여군이 맡는 보직은 주로 비서, 교관, 간호사, 행정직 등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로 여겨지는 일이다. 오히려 성별 역할이라는 고정관념을 여성징병제가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셈이다. 북유럽국가들의 경우 여성징병제를 통해 평등을 구현했다기보다는 평등을 위한 사회의 노력의 결과로 봐야 한다. 대부분의 영역에서 성평등을 구현하고 마지막 남은 공간이 군대여서 여성징병제를 실시한 것이다.

징병제도가 여성이나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강화하는 것은 맞지만, 차별의 역사는 징병제의 역사보다 훨씬 견고하다. 차별이 가득한 사회에서 군대는 사회의 차별을 확대 재생산하는 역할을 한다. 성평등을 위해서는 여성징병제보다는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어야 한다.

[쟁점2] 여성이 군대에 가면 군대가 달라질까?
 

2021년 5월 11일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병역제도 개편 이슈 라운드테이블 '징병제 논란, 어떻게 볼 것인가' 행사가 열렸다. ⓒ 박정훈


이 질문도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한국 군대가 과거에 비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가장 낙후된 집단이고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하지만 무엇을 얼마나 고쳐야 하는지는 의견이 다르다. 그 가운데 군대 내 여군들이 겪는 일이나 처한 상황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여성의 군 참여가 군대의 폭력적인 문화를 바꾸고 여성들에게 친화적인 쪽으로 군대를 변모시킬 것을 기대한다.

확실히 한국군은 군사 집단 특유의 폐쇄성 때문에 다양성이나 인권과 같은 가치가 쉽게 훼손된다. 폭력적인 군 문화는 내부 구성원 중에서도 소수자들-주로 여군이나 성소수자 혹은 남자답지 못한 남성 병사들에게 유무형의 폭력들을 자행하거나 묵인한다. 여군들에게는 화장실이나 샤워실 같은 기본적인 생활공간이 없거나 부족한 것은 너무나 일상적이고, 여군에 대한 성희롱과 성폭력도 만연해 있다. 술자리에 여군을 보내라는 사령관의 명령에 고민 끝에 부하들에게 전투복을 입혀 내보냈다는 피우진 전 중령의 이야기를 옛날이야기로 치부할 수 없다.

2021년 세상을 떠난 이예람 중사의 경우도 상급자의 친구가 주선한 술자리에 상급자의 지시에 따라 참석해 강제추행을 당했고,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애쓰다가 사건을 은폐하고 무마하려는 국방부와 가해자에 절망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군인권센터 김형남 사무국장의 책 <군, 인권 열외>를 보면 2013년(육군 제15사단), 2017년(해군본부), 그리고 2021년 공군 제20전투비행단의 이예람 중사까지 4년에 한 번 꼴로 성폭력으로 여군이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다고 한다.

물리적인 폭력과, 그 폭력을 은폐하려는 구조적인 폭력으로 목숨을 잃게 되는 것이 여군들만의 일도 아니다. 2014년, 선임병들의 가학적인 괴롭힘과 폭행으로 사망한 윤승주 일병이 대표적이다. 드라마 〈디피 D.P.〉가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던 까닭은 배우들의 연기나 연출력도 한몫했겠지만 괴롭힘이나 폭력에 노출된 군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부대원들을 향해 총기 난사를 하는 일들이 실제로 한국군의 자화상이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군대의 폭력적인 문화를 바꾸는 데 여성징병제가 효과적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물리적으로 여성 군인의 비율이 늘어나면 변하는 것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군대 자체가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군대 내부에서 군대를 변화시키려는 여성들의 노력을 존경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자면 군대 내에서 살아남기 위해 많은 여군들은 군대를 변화시키기보다는 남성중심 문화에 맞춰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전략을 택할 수밖에 없다.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소수자에 대한 폭력이 줄어들지 않는다면 군대 또한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여군의 비율이 늘어나야 하는 것과 별개로, 여성을 포용할 수 있는 군대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고 그러기 위해선 성폭력과 성차별에 대한 경각심이 사회에서부터 일어야 한다.

여성이 안전한 군대, 여성이 차별받지 않는 군대는 비단 여군의 처우가 좋은 군대를 의미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김엘리의 책 <여자도 군대 가라는 말>에는 여군 모범 사례로 알려져 있는 북유럽 국가들의 특징이 잘 정리되어 있다. 이들 군대가 정책적으로 취한 사회적 가치가 다양성인데, 이는 군대 구성원의 다양성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군대의 역할이나 안보의 개념 자체 변화를 수반하는 개념이다. 한국 군대는 과연 이 정도의 변화를 추구할 수 있을까?

[쟁점3] 인구절벽 시대 대안이 여성 징병제일까?
 

지난 6월 24일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호국보훈의 달을 기념해 열린 여군장교들과 간담회에 참석해 있다. ⓒ 연합뉴스


여성징병제를 주장하는 입장 가운데 가장 현실적이고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인구절벽 시대에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여성도 징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인구 감소는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이다. 2020년에 스무 살이 된 남성은 약 29만 명이다. 현재 한국군은 50만 명을 살짝 넘는 규모인데 세계적 징집률(2020년 95.8%)로 겨우 50만 대군을 유지하고 있다. 2020년에 태어난 이들이 스무 살이 되는 2039년에는 입영대상자가 되는 남성 인구가 14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하니 인구 감소는 징병제 유지의 가장 큰 위기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과연 우리나라에 필요한 군 규모가 꼭 50만이어야 할까? 50만 대군이라는 전제 자체에 질문을 던져볼 수도 있다. 현재 한국군이 50만 대군을 유지하는 까닭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거나 유사시에 북한 전역을 수복하는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작전이 과연 유효하거나 효과적인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필요한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

한국군의 적정규모가 얼마인지 사회적인 토론이나 논의가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나마 참여연대와 군인권센터는 연구를 통해서 한국군을 30만 규모로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국방부나 정치권에서는 아직까지 이 문제를 깊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전제의 타당성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병력 자원이 부족하니 여성도 징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여성징병제의 타당성에 대해 세 가지 쟁점을 중심으로 살펴봤다. 나는 기본적으로 여성징병제가 과연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성차별과 평등의 문제, 군 개혁, 안보의 문제 모두 아주 중요한 것들이고,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변화하는 과정에서 여성징병제는 얼마든지 검토하고 토론할 수 있는 제도다.

하지만 먼저 한국군이 변해야 한다. 젊은 남성들을 강제로 데려다가 싸게 부려먹고 죽거나 다쳐도 제대로 책임도 안 지는 군대, 여성을 차별하는 사회의 습성을 더욱 강화시켜 현재 존재하는 여군들조차도 성폭력과 성차별에 시달리게 만드는 군대가 바뀌지 않고서야 여성징병제 논의는 변죽만 울리다 사라지고 잊힐 만하면 다시 소환되는 의미 없는 반복이 이어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참고 문헌
김엘리, <여자도 군대가라는 말>, 동녘, 2021
김형남, <군, 인권 열외>, 휴머니스트, 2022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