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면, 국민은 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더는 정치적, 법적으로 희생당하는 국민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연극 <하이타이>(김명환 원작, 최병로 연출) 배우 김필의 말이다. 그는 이번 연극을 준비하며 많이 울고 가슴 아파했다고 한다. <하이타이>는 텍사스주 알링턴에서 세탁소를 하는 해태 응원단장 출신 이만식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만식은 해태 초대 응원단장 임갑교씨를 모티브로 했다. 해태 야구와 5월의 광주. 작품을 관통하는 두 가지 키워드다.

지난 12일 1시간 30분여의 공연을 마치고 나온 김필 배우를 대학로 후암씨어터 7층 극장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객석에서 기자와 인터뷰하는 김필 배우

연극이 끝나고 난 뒤 객석에서 기자와 인터뷰하는 김필 배우 ⓒ 차원

 
-연극 <하이타이>는 어떤 작품인지 직접 소개 부탁드립니다.
"가족을 잃어버린 한 남자의 인생 스토리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살아갈 만하고 아름답다, 이런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또 주인공 이만식은 전두환 정권의 5.18로 인해 굉장한 상처를 받은 사람인데, 오히려 전두환의 3S 정책으로 탄생한 프로야구장에서 자기의 삶을 살았다는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연기 경력이 오래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연극을 시작해서 올해로 한 33년 정도 연기를 한 것 같습니다. 연극은 한 50편 정도 한 것 같고요. 드라마, 영화, 전 장르를 걸쳐서 다 연기를 했습니다. 모노드라마(한 배우가 혼자 모든 배역을 맡아 연기하는 일인극)는 제가 41살 때 '술꾼'이라는 작품을 처음 했었는데요. 그때는 1인 19역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30역을 하고 있습니다(웃음)."
 
-김필 배우의 실제 성격은 어떻습니까? 캐릭터를 어떻게 해석했는지도 궁금합니다.
"저는 원래 굉장히 내성적인 성격이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무대에서 연기를 했는데 그 모습을 보고 관객들이 웃어주더라고요. 그래서 '아, 내 성격이 변하는구나. 내성적이라 늘 우울한 모습일 줄 알았는데 이렇게 사람들을 웃길 수도 있네' 하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배우라는 직업을 선택했고요. 배우는 광대라는 표현이 있잖아요. 스스로 광대라고 생각하며 살아오고 있었는데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광장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이만식을 보며 '이 인물은 진정한 광대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엄청난 매력을 느꼈고, 그런 부분을 잘 표현하고 싶었어요."
 
-극 중 다양한 사투리가 나옵니다. 자연스러운 사투리 연기 비결이 있으신가요?
"세월이 흐르다 보니 여러 지역을 많이 돌아다니고, 또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접하고 들은 것이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또 요즘 여러 매체가 많으니까 열심히 보면서 배우고 있습니다. 아, 작중 현재 시점에서는 한국을 떠난 지 20여 년이 넘은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니 세월이 흘러 살짝 묻어나는 사투리를 쓰고 있고요. 과거 시점에서는 센 광주 사투리를 씁니다."
 
-매일 같은 내용으로 혼자 연기를 하는데, 힘들진 않으십니까.
"힘듭니다. 사실 체력이 안 되면 감정들도 발산이 안 되고, 관객들을 끌어들이지도 못하거든요. 매일 마라톤을 30km씩 달리는 기분이에요. 또 관객들과 호흡하는 신도 많고, 감정의 변화도 많고 그렇잖아요. 이 작품이 정말 잘 짜여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무당이 작두를 타듯 모든 장면에 집중합니다. 그러다 보니 정말 힘든데요, 그만큼 보람이 있습니다."
 
-극에 대본이 몇 퍼센트, 애드리브가 몇 퍼센트라고 보면 될까요?
"이 작품이 마당극 형식이니까, 저는 애드리브라고 따로 생각은 안 하고요. 그냥 자연스럽게 관객들과 주고받는 거죠. 오늘은 비가 오니까 관련된 이야기를 했고요. 보통 제 몸이 반응해서 그렇게 대사들이 나오곤 합니다"
 
"광주에서 친구 잃은 관객, 공연 중 오열"
  
 김필 배우와 관객들이 함께 응원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김필 배우와 관객들이 함께 응원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차원

 
-공연을 준비하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궁금합니다.
"이 작품을 만나고 주인공 이만식과 동생 만우를 생각하면서 너무 많이 울었어요. 공연을 올리기 전에도 그냥 등산을 갔다가 울기도 하고...얼마나 아팠을까요. 어떤 정치적인 상황, 또 자본주의의 힘에 의해서 억울함을 당한 사람들은 세상을 살기가 참 힘들잖아요. 외국에 나가봤더니 대한민국에서 상처받고 그곳에 와계신 분들도 많았습니다. 국가가 국민을 지켜줘야 하는데, 국가가 국민의 입장에 서 있지 않으면, 또 국가가 내 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국민은 이 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법이 만인에게 평등할 수는 없어도, 최대한 국민을 지켜줘야 합니다. 더는 정치적인, 법적인 희생양이 나오지 않도록 우리가 민주주의의 힘으로 서로를 지켜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객석에서 공연 보시는 분 중 눈물을 흘리시는 관객분들이 많아 깜짝 놀랐습니다. 옆자리에 앉으신 분도 많이 우시더라고요. 배우님도 연기하면서 우신 적이 있습니까?
"매일 웁니다. 그런데 매번 감정이 고조되는, 눈물이 나오는 장면이 달라요. 항상 절제하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이타이>는 관객 참여형 공연이잖아요. 가장 인상 깊었던 관객이나 공연이 있다면요.
"저번 공연 때, 맨 앞줄에 어떤 어르신이 앉아계셨는데 그분이 중간에 너무 오열하셔서 공연이 중단될 뻔한 적이 있습니다. 나중에 사연을 들어보니 대학생 시절 그분은 서울에 남아계시고, 그분의 친구가 서울에서 광주로 가서 시위에 참여했던 거죠. 그리고 거기서 사망하신 겁니다. 공연을 보시면서 정말 크게 목놓아 우시더라고요. 작품과 관련된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보시면서 정말 많이 감정이 드실 것 같습니다."
 
-연극을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가 야구인데요. 야구를 좋아하십니까?
"해태 타이거즈부터 시작해서, 지금의 기아 타이거즈까지 응원하고 있고요. 어렸을 때는 야구를 많이 했는데 팔을 다쳐서 이후에는 못 했습니다. 이번에 작품 하면서 또 초창기 야구, 그리고 선동열·최동원 선수에 대해 많이 공부했죠. 그리고 해태 타이거즈라는 팀이 전라도 사람들한테 얼마나 큰 위안과 희망이었는지도 이번에 더욱 잘 알게 됐어요."
 
-차후에 <하이타이>를 광주에서 공연할 계획도 있으신지요.
"꼭 해야죠. 반드시 하고 싶습니다. 이 작품으로 당시의 아픔을 겪은 분들을 위로해드리고 싶어요. 이번에도 망월동 5.18 묘역에 다녀왔지만, 우리의 이 민주주의와 경제적 성과는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분들의 희생 덕분이죠. 그래서 그분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위로해드리고 싶고요. 광주라는, 해태 타이거즈라는 이야기를 사람들이 잊지 않고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이건 다른 지역들도 마찬가지고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하이타이>에 관심이 있는 관객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대한민국에서 모노드라마라는 장르의 작품은, 몇십 년에 한 편 나올까 말까 합니다. 또 사실 흥행도 쉽지 않아요. 그럼에도 이 역사를 배경으로, 또 야구라는 소재를 담은 작품을 꼭 봐주셨으면 좋겠고요. 1명이 30명의 역할을 하면서 1시간 30분을 끌어가는 연극, 그 배우의 얼굴이 어떤 모습일지 한번 오셔서 직접 보시면 좋겠습니다. 아마 일인극을 이렇게 다채롭고 에너지 있게 끌고 가는 작품은 지금까지 한 편도 없었고, 다시 보기도 힘든 작품일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웃음).
 
한편 연극 <하이타이>는 현재 대학로 후암씨어터 7층 극장에서 공연 중인 작품으로, 11월 27일까지 평일 저녁 7시 30분, 주말 오후 4시에 진행된다.
덧붙이는 글 * 공연정보

극단도시락 창작극 김필의 모노드라마 하이타이
대학로 후암씨어터 2022.11.3.(목)~11.27(일)
평일 저녁 7시 30분/토,일요일 오후 4시 (월요일 휴무)
하이타이 김필 해태 5.18 대학로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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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언론정보학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교육언론[창]에서도 기사를 씁니다. 제보/취재요청 813arse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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