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1.23 05:26최종 업데이트 22.11.23 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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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가을이 짧아지면서 옷도 간절기옷, 여름옷, 겨울옷 세 가지로 구분되고 있다. 봄 꽃샘추위 땐 겉옷을 챙겨야 하고, 겉옷 없이 폼 나게 입는가 싶으면 어느새 반팔 차림이다. 가을엔 추위가 들쭉날쭉하게 와 옷 맞춰 입기가 더 어렵다. 바바리코트 한번 폼 나게 입자마자 찬바람에 금세 패딩을 꺼내놓았다.
 

11월에 핀 연산홍 늦가을에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있는데 연산홍이 철 모르고 피어있다. ⓒ 최수경

 
이번 주가 가을의 마지막 같아 본격적인 추위가 오기 전에 옷장 정리를 했다. 여름옷을 내년에 입을 옷과 못 입을 옷으로 구분했다. 유독 자주 입었던 옷들은 아쉽게도 대부분 땀에 탈색되었거나, 얼룩져 지워지지 않는 흰색 옷들이다. 흰색 옷은 세탁을 잘 해서 보관해도 해를 넘기면 처음보다 색이 바랜다. 때문에 매년 새 옷을 사서 입는 편이다.

겨울옷도 꺼내어 입을 옷과 못 입을 옷을 가려보았다. 나잇살에 허리가 안 맞아 못 입는 옷, 너무 오래 입어 보풀이 많은 옷, 유행이 지나 못 입는 옷, 비싸게 주고 산 옷이라 버리지 못하고 장롱만 차지하는 옷 등 못 입을 옷이 대부분이다.


살 쪄서 못 입으면 살을 빼면 되고, 보풀은 제거해서 입으면 된다. 3년간 안 입고 장롱만 차지하고 있으면 과감히 버리라고들 한다. 언젠가는 다시 입을 각오로 살을 빼겠다고 하지만, 옷에 몸을 맞추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차라리 몸에 새 옷을 사서 맞추는 게 정신건강상 더 나은 것 같다.

버릴 옷들을 싸 들고 아파트 재활용 수거장에 나갔다. 수거장은 늘 버려진 물건들로 가득하다. 어떤 때에는 멀쩡한 물건들이 나와 있는 것을 본다. 사용하던 물건을 미련 없이 버리는 용기가 놀라울 따름이다. 과연 저 물건은 새로운 것이 들어와 밀려난 것일까, 아니면 미니멀리즘의 시작일까? 
  
재활용 딜레마
 

분리배출에 대한 관리가 수시로 되고 있는 아파트 쓰레기 수거장 대규모 아파트 단지는 일반쓰레기와 재활용쓰레기의 분리배출이 비교적 잘 되고 있는 반면, 일반주택의 재활용 수거함은 상대적으로 관리가 더 필요하다. ⓒ 최수경

 
매체를 통해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크게 호응을 얻으면서, 재활용 수거 장에 나오는 물건이 많아졌다. 나도 가끔 집안 가재도구나 장롱 속에서 무엇부터 비울까 고민할 때가 있다. 소비를 줄이고, 비움을 통해 일상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고민만으로도 마음이 좋다. 미니멀리즘은 단순함과 간결한 생활방식을 추구하면서, 소비와 소유의 순환에서 벗어나는 시작이다. 
   

논산 명제고택의 대청 마루 논산 명재고택의 제사상은 간소함 그 자체다. 전통적 생활양식에서 미니멀리즘을 찾을 수 있다 ⓒ 최수경

 
의류수거함에는 상의와 하의, 코트, 점퍼, 원피스, 신발, 벨트, 모자, 가방 등을 담을 수 있다. 이들은 거의 재활용이 된다. 수거 통은 아파트뿐만 아니라 마을 곳곳에 있는데, 지자체가 수거하기도 하고 전문업체가 수거하기도 한다.     
   

지자체와 전문업체에서 수거해가는 의류수거함 의류수거함에 넣으면 안 되는 것은 솜이불, 솜베개 등 솜이 들어간 것들과, 방석, 전기장판, 실내화, 골프가방, 캐리어, 인형 등이다. ⓒ 최수경

 
의류수거함에는 남이 사용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되는 것은 넣으면 안 된다. 그런 것들은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려야 한다. 신을 수 있는 신발은 끈을 서로 묶어 비닐봉지에 담아 의류수거함에 넣는다. 속옷이나 양말은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린다.
  

일반쓰레기더미 옆에 있는 의류수거함 수거함에 옷을 넣을 때, 활용에 신뢰가 생기도록 의류수거함을 쾌적하게 관리해야 한다 ⓒ 최수경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선생님은 기름걸레를 두 개씩 만들어오라 했었다. 그 기름걸레로 콩기름을 바른 교실과 복도의 마룻바닥을 윤나게 닦았다. 걸레를 만들려면 헝겊이 있어야 하는데, 엄마는 걸레 만들 못 입는 옷은커녕 헝겊 쪼가리도 구하기 어려웠다. 옷이 떨어지면 기워 입고, 작으면 동생이 넘겨받아 입다보니, 못 입는 옷이 있을 리 만무했다. 오염되어 못 입는 흰 옷들을 종량제봉투에 넣으면서 걸레 만들 헝겊이 없어 애태우던 어릴 적 엄마가 생각났다.
  
나는 특이한 옷을 입는 편도 아니고, 유행에 민감한 편도 아니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그래도 내 주변 사람들의 옷 입는 기준에 맞추어 입을 수밖에 없다. 주로 흰색 남방이나 면 티셔츠들은 어차피 한 해만 입을 생각에 패스트패션의 옷들을 선택하게 된다. 한 해만 입고 버리다보니 의류폐기물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흰 옷은 오염으로 인해 못 입다보니, 의류수거함이 아닌, 재활용봉투에 버린다. 이 쓰레기봉투는 매립이나 소각이 되기 때문에 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패스트패션과 미니멀리즘
 

아프리카 가나의 수도 아크라에 있는 케이포네 매립장에 중고품 옷들이 산을 이루고 있다. ⓒ The Or Foundation


패스트패션은 소비자들의 유행을 추구하는 현상과 그 요구에 부응하고자 소매업자들이 최신 트렌드를 반영하며 형성된 패션을 말한다. 이런 브랜드들은 최신 트렌드를 반영하면서도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을 택해 제품 주기가 짧다. 본사가 전문점(Speciality retailer)과 자사상표(Private label)와 의류(Apparel)를 통합 관리하고 있다. 이런 SPA 대표적인 브랜드는 자라(스페인), H&M(스웨덴), 갭(미국), 유니클로(일본) 등이 있다.

문제는 소비자의 니즈를 반영해 빠른 시스템에 의해 재고가 소진되고, 신제품 출고 시기가 단축되다 보니 버려지는 의류 폐기물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또한 안 팔리는 옷은 브랜드이미지를 고려해 폐기처분되기도 한다.

패스트패션은 면 같은 직물 재배에 따른 과잉 물 소비, 제품 공정에서 발생하는 수질오염 그리고 화학제품일 경우 소비자의 이용기간에 발생하는 미세플라스틱, 폐기물의 처리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등 쟁점이 많다. 게다가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다 보니, 개발도상국에 불공정한 노동환경을 만든다. 내가 내놓는 옷 한 장이 누군가에게 요긴할 것이란 위안으로 재활용 의류함에 넣었지만, 세계인이 입었던 헌 옷의 최종 종착지인 가나는 패스트패션의 무덤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아열대기후로 바뀌면서 한 계절만 입고 버려지는 옷들을 감안하면 의류비 지출이 줄어든 셈이다. 4계절에서 짧아진 간절기로 인해, 3계절로 바뀌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패스트패션의 광범위한 구색 공격에 맞선 미니멀리즘의 확산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해졌다. 나도 올 가을 옷 정리를 시작으로 소비와 소유의 순환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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