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1.25 18:48최종 업데이트 22.11.25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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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은 명확했다. 그가 지닌 세계관에서의 선은 그저 '돈을 버는 것'이었다. 경제, 수익, 이윤 같은 말들이 그의 세계를 이루고 있는 말이었다. 그래서 그의 세계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이해하기 어렵지 않으니 그를 비판하기도 쉬웠다. "건물을 올려 돈을 벌자고 사람들을 쫓아내선 안된다", "기업의 이윤을 위해 노동자들을 착취하면 안된다", "교육이란 돈을 잘 버는 사람을 키워내는 것이 아니다", "자동차를 더 팔자고 농민들에게 고통을 감내하라고 해선 안된다".

이명박이 청와대에 있던 5년간 우리가 했던 말들엔 핵심적인 주제가 있었다. 어떤 면에선 오히려 속이 편했던 시절.


박근혜는 모호했다. 그녀는 사실 세계관이라는 것이 없는 것처럼 굴었다. 이명박처럼 노골적이고 적극적으로 자기 욕망을 표출하지 않았다. 그는 이명박보다는 자기의 욕망과 공적인 바람, 개인의 욕망과 대통령의 권리, 정치인 박근혜의 소명과 대통령의 의무를 구분하지 못하는 쪽에 가까웠다.

공적 권력을 사적으로 사용했고, 사적 욕망을 공적 공간에 투사했다. 아마 악의는 아니었을 것이다. 박근혜는 그저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하며 세계관을 구축해나갈 기회를 잃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엄마 아빠가 다 총 맞아 죽은 영애'를 안쓰러워하는 어른들이 그녀에게 관대한 이유겠지.

청와대를 집으로 여기고 자란 '큰 영애'의 세계는 그저 청와대였을 것이다. 이명박이 청와대를 통해 무엇인가를 갖기 위해 분주한 사람이었다면, 박근혜는 청와대가 세계의 전부인 사람에 가까웠달까. 물론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건 너무 위험한 일이었고, 우리는 그를 끌어내렸다.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서 열린 제1차 수출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초월자로 군림하려는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은 아무래도 저 둘의 혼종이다. 그는 박근혜처럼 서초동 어디쯤에 국한된 세계관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그는 이명처럼 자기 세계관에 대한 명확한 확신을 지니고 있다. 그야말로 혼파망(혼돈, 파괴, 망각).

그의 세계관에서 절대 원칙은 '법'을 어기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그의 세계는 법을 잘 지키는 사람과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자신은 법을 지키는 사람과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구분해주고 이따금 혼내줄 수 있는 사람으로 존재한다. 어쩌면 그의 세계에서 그 자신을 포함해 그의 서초동 출신 친구들은 모종의 '초월자'에 가까워 보인다. 이 때문에 그의 세계에서 원칙이란 언제나 자신과 자신의 친구들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자신의 친구들이 적용하는 것이다(이건 이것대로 주체적인 것일까).

대통령은 연일 언론과 싸우고 있다. 대통령실은 최근 대통령 해외순방에 MBC 기자들의 탑승을 배제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적 취재 공간인 대통령 전용기 탑승에 특정 언론을 배제하는 일도 놀라운데, 대통령실이 밝힌 이유라는 게 한마디로 MBC가 했던 보도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대통령실은 MBC가 대통령의 '날리면' 발언을 부러 왜곡·조작해 보도했다고 '주장'하면서 그 주장에 대해 MBC가 사과하고 시정하지 않았다며 MBC를 '왜곡 편파 언론'이라고 주장했다.

대통령이 해외순방에서 돌아온 뒤에는 한술 더 떠 진행하던 짧은 출근길 문답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대통령실은 "최근 발생한 불미스러운 사태와 관련해 근본적 재발방지 방안 마련 없이는 지속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입장을 냈는데 한마디로 MBC 기자가 무례하게 슬리퍼를 신고 팔짱을 끼고 서 있던 것도 모자라 퇴장하는 대통령에게 감히 무례하게 질문을 했기 때문에 중단하기로 했다고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렇게 언론과 대통령의 접촉면 하나를 일방적으로 '날린' 것이다(정말 쪽팔려서 어떡하나).

언론과 싸우는 대통령의 태도에서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대통령은 "언론을 민주주의를 지키는 기둥"이라고 말했고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청와대 밖으로 나가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권력의 권위를 해체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요체라고 말했지만 국민이 알아야 할 것도, 해체해야 할 권위도 스스로 선택하고 있는 셈이다. 그것은 자신을 시스템의 일부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시스템의 조율자로 인식하는 일이다. '오빠가 허락한 민주주의' 같달까.

이 정부가 정말 무서운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스스로 '초월자'의 위치에 군림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군림'이라거나 자신들만을 예외로 놓는 후안무치한 태도라고 인식하지도 못하는 것. 세계가, 정치가, 저잣거리가 어떻게 이뤄지고 작용하는지는 알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고, 어쩌면 그런 게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의 정치적 적대자들이 천공이니 영부인의 조명이니, 대통령의 청담동 술판이니 하는 하찮고 천박한 것들에 집착하느라 정말 무서운 것을 가려주고 있어 답답할 노릇이다.)

언론은 대통령의 말대로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인 디딤돌이다. 민주주의의 요체란 어쩌면 헌법보다는 누구든 떠들고 말하고 토론하여 쟁명하는 '언론'의 발전에 있다. 이 '누구든'에는 어떤 예외도 있을 수 없다.

물론 MBC의 보도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순 있다. 정말로 욕도 하지 않고 바이든이라고 하지도 않아서 억울했을 수도 있고, MBC 기자들이 악의적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슬리퍼를 신고 팔짱을 낀 기자의 태도를 무례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음'이나 '생각'이나 '느낌'으로 언론을 배제하고 취재를 방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특히 대통령에게는 더욱 없다. 이 세계는 법을 어겼거나 어기지 않은 사람과 그걸 판단하는 검사만 있는 서초동의 취조실보다 훨씬 넓고 복잡하다. 세계의 원칙을 만드는 것은 어떤 예외적인 '초월자'일 수 없고, 대통령은 '초월자'도 아니다.     

정부·여당은 MBC와 YTN 민영화 추진, TBS 지원 조례 폐지 등 마음에 들지 않는 언론사를 하나씩, 하나씩 배제하고 있다. 나중엔 무엇이 남게 될까. 그러다 국내 모든 언론사가 대통령 취재 안 해주면 쪽팔려서 어떡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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