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1.28 11:02최종 업데이트 22.11.28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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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장례식장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조문을 마치고 마침 그곳을 찾은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조문객이 늘어나 자리가 부족해졌다. 식사까지 마친 나를 포함한 몇몇 친구들이 일어섰고, 고맙게도 한 친구가 날 집까지 데려다주기로 했다.

"잠깐만, 신발이 너무 많네. 내가 네 신발 찾아 줄게. 어디에 뒀어?"


내 신발은 나와 동행했던 친구가 치웠을 텐데 그는 이미 가고 없었다. 그래도 난 내 신발 색이 특이해서 쉽게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디 뒀는지는 모르지만 내 신발 색이 좀 특이해서... 쑥색이야. 쑥색 단화."
"쑥색이라... 근데 안 보이네."


다른 친구까지 합세해서 신발장을 가득 채운 신발은 물론 바닥에 어지러이 놓인 것까지 살폈지만 내 신발을 찾지 못했다. 급기야 상주인 친구까지 나서서 혹시 누군가가 잘못 신고 간 게 아닐 의심할 즈음 난 혹시나 하고 인조 가죽 단화인 내 신발 모양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럼 이거 아닌가? 근데, 이건 갈색인데..."

이미 1년 넘게 신고 다닌 신발이었다. 난 갈색이란 말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도 네가 설명한 모양은 이것밖에 없어. 혹시 모르니까 신어 봐."
"어, 근데 그건 갈색이라며..."

친구가 내민 신발을 얼떨결에 받아든 나는 놀랐다. 새로운 가상의 눈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는 내 손이 그것이 내 신발임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어, 이게 어떻게..."

의아했지만 나는 바닥에 앉아서 조심스럽게 신어 봤다. 내 것이었다. 혹시나 해서 일어서서 걸어도 봤다. 당황스럽고 황당했지만, 그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내 것이었다. 나는 계면쩍게 웃으며 나를 둘러싼 친구들에게 말했다.

"어, 맞네. 내 신발. 벌써 1년은 넘게 신고 다닌 신발인데 내가 이걸 왜 쑥색이라고 알고 있었지? 갈색일 줄 정말 몰랐네, 히히."

모두가 웃었고 당연히 애정 어린 타박도 받았다. 
 

당연히 보이는 신발의 색. 때론 그 당연함이 힘들게 할 때가 있었다. ⓒ 김승재

 
하찮지만 하찮지 않은 것들

시력을 잃고 새로운 세상을 살게 되면서부터 이렇게 정말 사소한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멀쩡하던 컴퓨터가 멈췄다. 화면에는 경고 메시지가 떠 있고 확인 단추만 누르면 되는데 시각 장애인용 음성 프로그램까지 멈췄다. 나는 멍하니 누군가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도서관 장애인 열람실. 내 방처럼 혼자 여유 있고 편하게 이용해서 좋다. 그러나 케이스에 넣으려던 무선 이어폰 한 짝을 떨어뜨리고 5분 넘게 바닥을 손으로 더듬어 보지만 얄궂게도 그건 찾아지지 않는다.

깔끔한 최신 공중화장실. 볼 일을 마치고 이제 물만 내리면 되는데 흔히 있는 물통도 없고 물내림 단추도 없다. 당황해서 변기 여기저기를 더듬고 벽까지 더듬어 찾아보는 사이 밖에서는 누군가가 연방 노크를 해댄다.

홀로 남은 가을 저녁. 제법 굵직한 가을비 소리에 단풍과 더불어 내 마음마저 차분히 젖어 들면서 시원한 막걸리 한 잔이 생각난다. 지갑에는 돈도 있고, 멀지 않은 곳에 편의점도 있지만, 그날따라 가족 모두 외출 중이다. 갑자기 막막하다 못해 비참해진다.

열 개 아니 백 개라도 얘기할 수 있다. 모두 하잘것없고 하찮은 것들이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것들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그렇게도 사소한 것들은 언제나 내 곁에 그림자처럼 있었지만 남의 도움은 그렇게 항상 내 곁에 있을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한때는 짜증도 냈고, 한심한 내 모습에 절망도 했다.

그런데 뒤늦은 깨달음이랄까, 가만히 그런 나를 되돌아보니 참으로 어이없고 한심하기 짝이 없다.

옛날 황제나 왕 곁에는 언제나 환관이나 시녀가 있었다. 옷을 갈아입을 때나 잠을 잘 때는 물론이고 심지어 용변을 보거나 남녀 간에 은밀한 일을 행할 때조차 그들 곁에는 누군가가 있었다. 내가 이런 황제나 왕의 위치에 있다면 늘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만, 난 그럴 수도 없고 결단코 그럴 생각도 없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내가 하잘것없고 하찮은 것이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사실 이것들은 내 일상에서 너무도 소중하고 필요한 것들이다. 그렇기에 보지 못하는 눈만 탓하며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투덜대고 신세타령만 해서는 안 된다. 더불어 근본적으로 태도를 바꿔야 한다.

흔히 말하는 '당연하다'는 것은 때에 따라 무척 상대적이다. 특히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서 그 차이가 확연하다.

당연히 알았을 갈색 신발, 당연히 눌렀을 확인 단추, 당연히 눈으로 찾았을 떨어진 무선 이어폰이나 변기 물내림 단추, 당연히 우산 하나 들고 나가서 사 왔을 막걸리지만 내겐 당연한 게 아니다. 너무 어렵거나 때론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확실한 해결책은 아닐지 모르지만, 의외로 간단한 대안이 있다. 옛날 생각은 이제 그만 그리고 미리미리 확인하고 새로운 건 그때그때 배우면 된다.

신발이나 옷 색깔은 외출 전에 확인하고, 음성 프로그램이 동작을 멈췄다면 윈도 자체 음성 기능 사용법을 배워서 이용할 수 있다. 낯선 화장실이나 시설을 이용할 땐 구조를 확인하고 필요한 건 배우면 된다. 혼자 갈 일이 많을 것 같은 곳은 가는 길을 익혀두고, 편의점 같은 곳에서는 주인이나 점원에게 도움을 청하면 될 것이다.

혼자 있을 때 떨어뜨린 물건을 찾는 것처럼 어쩔 수 없는 것도 있겠지만 미리 확인하고 끊임없이 배울 일이지 신세타령이나 하고 있을 이유가 없다.

한참 떠들고 보니 우습게도 만사에 초연한 성인군자 같다. 눈치챘겠지만 그럴 리가 없다. 당연히 오버하는 것이다. 사실 이 글을 쓰는 날에도 수백 아니 수천 번은 오갔을 부엌 식탁 의자를 걷어차서 엄지발가락 발톱이 깨졌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혼자 해야 하는 사소한 것 그러나 내 일상에선 너무도 소중한 것을 배우고 익힐 수밖에 없기에 오버라도 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들이 혼자 할 수 있는 걸 돕기 위해 많은 애를 쓰고 있다. 나 같은 시각 장애인을 위해서도 참으로 많은 것들이 제공된다. 일반 폴더폰을 사용하다가 처음 스마트폰을 접했을 때 아무 느낌 없는 매끈한 화면에 황당함을 넘어 막막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리 오래되지 않아 기쁨과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내장된 시각 장애인을 위한 기능을 실행시키고, 한 손가락 혹은 두 손가락 심지어 세 손가락과 네 손가락까지 사용해서 화면을 터치하거나 좌우 또는 위아래로 쓸다 보면 내 능력이 닿는 한 맘껏 스마트폰을 이용할 수가 있었다. 거기에 음성 인식 기능까지 더해지니 오히려 기존 폴더폰보다 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고대비로 화면을 조정하고 아무리 글자 크기를 키워도 점점 보기가 어려워지는 컴퓨터 화면에 절망할 무렵, 시각 장애인용 음성 프로그램인 '센스 리더'를 사용하면서 내 컴퓨터 생활에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비록 마우스 대신 키보드만으로 모든 걸 해결해야 해서, 'Contl + C'나 'Contl + V'와 같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윈도우 단축키는 물론 화면 전환, 인터넷 검색, 편집창 이동 메뉴 선택 등 마우스 클릭 한 방으로 간단하게 해결하던 모든 걸 키보드 단축키를 외워서 사용해야 했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이렇게 맘껏 글을 쓸 수 있다는 건 놀람이요, 기쁨이었다.

그래도 한계는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가끔 이용하는 도서관 장애인 열람실 내부에 책상은 어떻게 배열돼 있으며, 의자나 책장 등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화장실은 어떻게 가야 하는지, 우리 집 내부 구조와 가구 배치는 물론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구조까지 모두 머릿속에 집어넣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배우고 익힐 게 너무 많았다.

수많은 앱이나 프로그램은 화면 디자인이나 효율성을 높이려고 모두 다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고, 그곳에서 메뉴나 실행 단추 하나하나를 살피면서 내가 원하는 걸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도 이건 내가 노력할 일이지 누굴 나무랄 일이 아니다.
  

새롭게 배우고 익혀야 할 것들. 거기에는 남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있다. ⓒ 김승재

 
좀 더 사소한 것까지 신경 써 준다면

그런데 또 아쉬운 소리를 하고 싶은 것도 있다.

디자인이나 효율성을 높이려고 끊임없이 업데이트하는 것까지는 좋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메뉴나 실행 단추까지 텍스트가 아닌 그래픽으로 처리하면서 음성 프로그램이 읽어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어떤 기능들이 있는지 알려고 메뉴바를 찾아가도 그냥 '단추' 혹은 '그래픽'이라고만 읽어준다. '찾기'도 그냥 '버튼'이라고 읽어 주고, '보내기', '입력하기', '이전 페이지'도 모두 그냥 '버튼'이라고만 읽어 준다. 일부 웹페이지에서는 음성 프로그램이 전혀 읽어주지도 못한다.

시각 장애인을 위해 웹페이지나 프로그램, 그리고 앱들도 텍스트로 모든 걸 읽어줄 수 있게 디자인해야 하는 게 세계적 규정이고 원칙이다. 하지만 보기 좋은 디자인과 효율성을 추구해서인지 점점 이런 게 지켜지지 않는 것 같아 조금은 서글프다.

점자 블록도 마찬가지다. 정작 필요할 때는 그게 제 역할을 못 하는 경우가 많다. 도서관 입구에서 장애인 열람실로 바로 안내하는 점자 블록도 그다지 많은 편이 아니고, 심지어 장애인 열람실에서 장애인 화장실까지도 점자 블록이 설치돼 있지 않다.

일상의 사소한 것, 그런데 꼭 필요한 아주 중요한 것, 비장애인들은 너무도 당연히 무심코 해결하는 그런 것들을 해내기 위해 장애인들은 부단히 노력하고 애쓰면서 배우고 익힌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이런 장애인들을 위해 참으로 많은 것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쉽다.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는 심정으로 좀 더 사소한 것까지 신경을 써 준다면, 지금도 그런 하잘것없이 사소한 것과 끊임없이 실랑이 중인 장애인의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감사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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