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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디자이너는 생활 속 아이디어로 일상의 불편을 해소하는 사람, 혼자 고민하기보다 함께 이야기하고 궁리하는 사람,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희망제작소가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소셜디자이너들을 만났습니다.[기자말]
이종건  대표를 10월 31일,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 있는 오롯컴퍼니에서 만났다.
 이종건 대표를 10월 31일,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 있는 오롯컴퍼니에서 만났다.
ⓒ 희망제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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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이종건 대표가 군 장학생으로 대학을 마치고, 7년간의 의무복무를 앞두고 있던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청계천 복원사업이 마무리된 참이었다. "너무 힘들게 대학을 마쳤기 때문에 스스로 지식인이라는 자부심이 있었고 지식인이라면 마땅히 지식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이종건 대표는 건축공학을 전공한 지식인으로서, 휠체어를 탄 이동약자들도 청계천변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지 검증해보기로 했다.

영어학원을 다니며 알게 된 건축공학전공자들에게 "같은 지식인으로서" 동참을 호소하고, 장애인협회를 찾아가 프로젝트의 취지를 설명한 후 전동 휠체어를 한 대 빌렸다. 촬영을 위해 꼭 필요했던 캠코더는 그에게 보험상품을 홍보하러 들른 보험설계사에게 "보험이 장애를 대비한 것이고, 이 프로젝트가 장애 관련 인식 개선에 의미가 있어 홍보가 될 것이니 기부해달라"고 설득해 기부받았다. 이웃에 사는 파키스탄 사범대학 출신 이주노동자를 리빙랩 연구자로 섭외했는데, 3개 국어에 능통한 그가 휠체어에 앉아 영어로 도움을 요청하면 내국인인 이종건 대표가 피험자일 때와 다른 반응이 오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군데군데 길이 막혀 성인남자 4명이 전동 휠체어를 들고 옮기며 간신히 이동했다"고 한다. 그는 스물 넷의 자신이 "서울시를 경쟁상대로 보았던 것 같다"며 웃었다. 그는 서울시와 이명박 전 시장에게, 당신들이 그토록 자랑하는 청계천은 시민 모두가 안전하고 편안하게 지나거나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아니며, 그렇기에 공공 공간으로서 자격미달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 비장한 퍼포먼스를 마무리한 뒤 시작된 7년간의 군 생활에서, 그는 이후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커뮤니티 디자인'을 만나게 된다.

- 군 복무를 하면서 '커뮤니티 디자인'을 배우다니, 뜻밖입니다.

"특수부대에 복무할 때였어요. 사회에선 커뮤니티 디자인이라고 부르지만, 군에선 주민 조직화, 공동체 조직화라고 하죠. 북한주민들을 조직화해서 체제가 스스로 무너지게 만드는 건데요, 마을에 잠입해서 그 지역에 오랫동안 살아온 주민을 포섭하고 두터운 신뢰 관계를 형성한 다음 주민들을 서서히 변화시킵니다. 활동의 목적은 전혀 다르지만, 방식만 보면 마을공동체‧도시재생 활동과 유사해요. 제대한 후에 서울에서 도시재생 관련 일을 할 때 마을 자율방범대 활동을 하면서 주민들과 친해지고 신뢰가 생기니 '도시재생이 뭐냐'고 먼저 물어보시더라고요. 비슷하죠?(웃음)"

스스로 만드는 공간, 함께 만드는 마을

- 군 복무 기간이 길어 취업이 급했을 것 같은데, 취업을 하지 않고 도시재생‧마을만들기 활동을 하며 전국을 다녔어요.

"어릴 때부터 건축가가 되고 싶었어요. 건축가가 잘 성장하려면, 사람들이 자기 집을 짓고 그 지역에 오래 살고 집을 스스로 고쳐나가면서 때로 전문가의 손길을 필요로 해야 하잖아요. 집을 팔려고 짓는 우리나라에선 좀 비현실적인 얘기지만요. 그래도 저는 마을의 맥락을 읽을 줄 아는 건축가가 되고 싶었고, 살고 있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독학으로 '마을 공부'를 했어요. 마을이 어떻게 생겨나 변화해가는지 알아보는 거죠.

그러다 어느 날 동사무소 위에 붙은 플래카드를 봤는데, '도시재생대학'이라고 쓰여 있었어요. 그곳에 찾아가서 도시재생이 뭐냐고 물으니까 더 나은 공간을 만들고 사람들을 정주하게 하는 거래요. 평소 내가 생각하던 마을, 집의 개념과 똑같네?(웃음) 나 혼자 이상한 생각을 한 게 아니라, 이미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했고, 나라에서 이런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니 설레었어요. 그런데 그분들 말씀이, 저 같은 청년들이 관심을 갖고 열심히 활동하는 게 중요하다는 거예요. 솔깃했죠.(웃음)

도시재생 주민협의체로 활동을 시작했고 오래지 않아 도시재생지원센터 코디네이터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일주일에 4일 출근하는 전문가 위촉직이었는데 덕분에 평일 하루를 쉴 수 있었고, 당시 이곳저곳에서 열리던 도시재생 포럼을 찾아가 공부를 하고 관련 정책을 만드는 사람도 만났어요. 저는 '곰팡이연구소'도 그랬지만, 일단 흥미를 느끼면 정신없이 빠져드는 편이에요. 게다가 제가 체 게바라를 좋아했단 말이에요.(웃음) 사상가, 활동가에 대한 동경이 있었는데, 공동체를 고민하는 사상가, 공동체를 변화시키는 활동가가 된 셈이니까 뿌듯했어요."  
 
이종건 대표가 옥탑방과 반지하 등 취약 공간 환경개선을 위해 진행한 '옥반지프로젝트' 현장
 이종건 대표가 옥탑방과 반지하 등 취약 공간 환경개선을 위해 진행한 '옥반지프로젝트' 현장
ⓒ 오롯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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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하신 '곰팡이연구소'는 '반지하'라는 공간에 대한 관심과 고민 때문에 시작하신 거죠? 왜 반지하인가요?

"보통 공간이라고 하면 하드웨어적인 공간을 생각하는데, 제가 보는 공간은 오감 전체예요. 일정한 체적 안에 있는 공기의 양부터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거든요. 공간이 건강해야 그 공간에서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건강한 거고, 그 사람이 건강해야 그 사람이 하고 있는 행위나 결과물들이 다 좋아지는 거죠. 그래서 도시재생‧마을만들기 일을 하면서, 또 5년 전 오롯컴퍼니를 설립한 후에도 노후공간을 개선하는 데 꾸준히 관심을 가졌어요.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곳을 벗어나고 싶어해요. 잠시 머무는 곳이라고 생각해서 열악한 환경을 견디며 지내는데, 사실 반지하를 벗어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평균 거주기간이 4.5년이라고 해요. 만약 그 공간이 건강하다면 더 빨리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고 지내는 동안에도 건강을 덜 해치겠죠. 

반지하의 유일한 장점은 저렴함인데, 이를 대체할 만한 저렴한 주거지를 제공하지 않으면서 반지하가 나쁘니까 없애자고 하는 건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대책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차고지에서 창업을 했던 해외 스타트업들처럼, 반지하의 환경을 개선해서 청년들이 밥 해먹고 잠도 자고, 샤워도 하면서 창의적인 일을 도모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보자고 제안했어요. 그게 '옥반지 프로젝트'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곰팡이 문제를 해결해야 반지하가 더 살기 좋은 환경이 될 테니까 우리나라 주택 반지하에 많은 곰팡이를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곰팡이연구소'를 설립했지요. 몇 년 째 저 혼자 연구하고 있는데, 전문 연구자나 연구기관과 협력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 오롯컴퍼니의 사무실 겸 작업실이 반지하인 데는 이유가 있었군요. 오롯컴퍼니는 공간 업사이클링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인데, 청년들을 전문 시공인력으로 키워내는 교육‧커뮤니티 활동도 꾸준히 하셨어요. 국내에선 드물게 여성 시공인력 양성 교육도 하셨고요.

"저는 '스스로 만드는 문화'를 만들고 싶었고, 도시재생 역시 마을 주민들이 함께 자신의 집과 마을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고 이해했어요. 스스로 만드는 것을 DIY(Do It Yoursef)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공간 업사이클링을 위한 시공은 혼자 하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커뮤티니 디자인 개념을 결합해서 DIT(Do It Together) 프로그램인  '디스쿨'을 만든 거예요.
 
청년들을 교육해 보다 전문적인 수준의 시공 문화를 확산하고자 진행한 DIT 프로그램 '디스쿨' 참가자들과 함께.
 청년들을 교육해 보다 전문적인 수준의 시공 문화를 확산하고자 진행한 DIT 프로그램 '디스쿨' 참가자들과 함께.
ⓒ 오롯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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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원룸촌에 살고 있는 청년들이나 도시재생사업을 하는 지역의 어르신들이 스스로 공간을 관리하며 살아갈 수 있게 간단한 집수리 교육을 하기도 했는데요. 그보다 더 중점을 둔 것은 스스로 공간을 만들 수 있는, 손재주가 좀 있는 청년들을 교육해서 좀더 전문적인 수준의 시공 문화를 만들고 확산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시공 전문인력이 되고자 하는 청년들의 커뮤니티를 만들어 실무교육을 하고 현장경험을 쌓을 기회를 만들었어요.

여성 시공인력 교육을 생각한 건, 현장이 '중장년 남성' 중심이기 때문이에요. 이 말은 청년 남성인 저 역시 현장에선 배제되고 고립되기 쉽다는 뜻인데요, 현장에 여성 시공팀이 오니 문화가 바뀌더라고요. 보통은 막내가 남아 뒷정리를 다 하는데, 다 함께 뒷정리를 하고 마치는 식이었죠. 아, 시공 현장의 문화를 바꾸려면 여성 시공인력이 더 많아지고 남녀노소 구분이 흐려져야겠구나 싶어 교육과정을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관심이 쏠려 놀랐어요. 때로 무거운 자재를 옮겨야 한다는 걸 제외하면 시공 일이 남자에게 더 적합하다고 볼 아무런 근거가 없어요. 자재가 무거우면 함께 들면 되잖아요. 여성 시공팀이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버려지고 소외된 존재의 쓸모를 고민하다

- 나무젓가락을 건축자재로 재생하는 기술도 개발하셨어요.

"버려지고 소외된 공간에 대한 관심이, 버려진 나무젓가락의 새로운 쓸모를 찾는 것으로 연결된 것 같아요. 도시에서 나오는 쓰레기로 시공재료를 만드는 건 이미 세계적인 트렌드고, 나무젓가락의 경우 외국의 성공사례가 있거든요. 저는 우리가 나무젓가락 사용량이 둘째라면 서러운 나라이니만큼 국산화를 시도해본 거고요. 아직 개발 중이고, 시설설비 투자를 앞두고 있습니다.
 
나무젓가락을 재활용한 우드칩으로 만든 소품.
 나무젓가락을 재활용한 우드칩으로 만든 소품.
ⓒ 오롯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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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유통되는 나무젓가락은 보통 백양목으로 만드는데 백양목이 인테리어 재료로는 나쁘지 않습니다. 애초 젓가락을 만들 때부터 대장균이나 곰팡이가 잘 생기지 않도록 처리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사용한 젓가락을 친환경 세제로 세척만 해도 깨끗해지고요, 고온에서 압축해 집성목을 만드는 과정에서 한 번 더 멸균처리가 됩니다. 다만, 저는 지금 30톤짜리 압축기를 사용하고 있는데, 100톤짜리 압축기가 있다면 더 단단한 자재를 만들 수 있으니 경쟁력이 높아질 것 같아요. 관심 있는 분들의 연락을 기다립니다.(웃음)

나무젓가락은 아름다운가게와의 협업을 통해 전국 곳곳의 환경 활동가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수거해 택배로 보내주시고 있어요. 앞으로 취약계층에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하면 좋겠습니다."

- 전국을 다니며 살고 싶은 마을을 물색 중이라는 소문이 들리던데요. 또 다른 재미있는 계획이 있나요?

"메이커(Maker)들의 마을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자신의 공간을 스스로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 마을이죠. 그 공간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되, 혼자서도 만들고 함께 만들기도 하고 만드는 방법을 가르치고 배우기도 하는 거죠. 그리고 그 재미있고 역동적인 마을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 잠시 머물다 가고 싶은 이들로 북적거리는 마을이 있다면 어떨까. 그런 마을을 상상하며 짬 날 때마다 전국 곳곳을 돌아보고 있어요."

덧붙이는 글 | *인터뷰 및 정리=희망제작소 미디어팀. 이 글은 희망제작소 홈페이지(www.makehope.org)에도 게재되었습니다.


태그:#소셜디자이너, #오롯컴퍼니, #이종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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