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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때부터 히어로물을 참 좋아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디즈니 영화 <빅히어로 6>도 주인공이 자신의 형이 만든 의료 로봇과 뛰어난 친구들과 함께 악당을 물리치는 내용이고, 마블 영화도 다양한 히어로들이 나와서 좋아했다.

히어로물들을 보면서 감정이입을 많이 했다. 일반 사람들이 갖지 못하는 능력을 마음껏 부리면서, 사람들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고 악당을 물리치는 모습이 멋졌다. 동시에 영웅들은 마냥 뛰어나고 완벽하지만도 않았다.

개인적인 고뇌를 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일 때 '아, 저 사람도 나랑 비슷한 사람이구나' 동질감을 느끼며 심장이 더 뛰었다. 영웅들의 화려한 액션이 눈앞에서 펼쳐질 때, 자신에게 놓인 어려움을 해결해 나갈 때 짜릿함을 느꼈다.

의대에 입학했을 때, 나도 화면에 나오는 영웅처럼 되고 싶었다. 뛰어난 능력을 갖춰 부러움도 사고 인정도 받고 싶었다. 무엇보다, 대체할 수 없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그러려면 특출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체 불가능한 역할을 하려면 환자를 보는 의사가 아닌 무언가 큰 시스템이나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 통계나 정책 쪽에도 관심이 있어 이 방향으로 진로를 정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막상 와서 보니 나는 특출나지 않았다. 어떤 점들에서는 장점이 있었지만, 약점들 또한 있었다. 비교하는 마음도 자꾸 생겼다. 내 친구 누구는 이것을 잘하고, 내 동기 누구는 벌써 저것을 이루었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났다. 기대를 걸었던 정책과 시스템에도 내 관심은 점차 멀어졌다. 나는 영웅이 될 수 없었고, 그런 나는 점점 작아져 갔다.

그러다가, 점차 의문이 들었다. 처음 든 질문은 '내가 꼭 영웅이 되어야 할까?'였다. 영웅은 상대적으로 특출난 사람이 불리는 호칭이며, 모두가 영웅이 될 수도, 될 필요도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에게 물어봤을 때, 내가 제일 원하는 것은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나는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라고 진정으로 느꼈던 곳은 내 일터였다. 의원에서 진료하며 내 주변 사람들과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 나에게는 정말 큰 기쁨이 되었다. 환자를 보며 내 의학 지식을 동원해 최선의 치료 방식을 제시하고, 상태가 나아졌다는 말에 무엇보다 큰 보람을 느꼈다. 건강권이라는 같은 지향점을 가진 회사 동료들과 일상을 나누고 생각을 주고받으며 소속감과 동질감을 느꼈다. 이 사람들에게는 내가 특별한 사람이고, 나에게도 이 사람들은 누구보다 특별하다.

우리 모두가 영웅은 아니지만, 주인공은 될 수 있다. 주인공이란 무엇인가? 정의상 작품 내에서 주된 역할을 하는 사람이지만, 그 이상의 뜻을 지닌다. 주인공은 주체이다. 작품의 기승전결에서 갈등의 시작부터 고조, 절정, 해결까지 그 과정을 걸어 나가는 사람이다.

주인공은 남들보다 뛰어날 필요가 없다. 주인공이 만들어 나가는 고유한 이야기 그 자체가 우리의 마음을 울리기 때문이다. 우리 사람들 또한 그렇다. 자신의 자리에서 사건을 겪고, 감정을 느끼고, 맞서 행동할 때, 우리의 생각과 감정은 그 누구의 것보다 고유하다.

모두가 초능력이 있는 세상에서는 뛰어난 능력 자체가 또 다른 보통이 될 것이고, 그곳에서도 특출한 사람과 평범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도 사람 간의 비교가 있고, 우월감과 열등감이 있을 것이다. 영웅은 비교적 남보다 뛰어난 사람이기에 몇 명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주인공은 각자의 고유함이 특징이다.

어떤 세계에서도 사람들은 각자의 삶에서 주인공이 된다. 배우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말했다. 나는 희극이랄 것도, 비극이랄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나와 남에게 최선을 다하는 하루하루를 보낼 때, 자신은 진정한 주체로 '극' 그 자체를 만든다. 자신에게 몰려오는 감정들을 받아들이고, 사람들과 웃고 울며 싸우고 사랑하면 나는 주인공이 되고, 내 극은 상당히 볼 만한 작품이 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히어로물, #의사,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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