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13 05:23최종 업데이트 22.12.13 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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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 발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성장이 지속되는 시장은 어디일까? 바로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한 사교육 시장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공교육의 공백이 2년 이상 이어지면서 사교육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통계청에서 실시한 2021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결과, 2021년 국내 사교육 시장규모는 23조 4천억 원에 이른다. 학령인구 감소에도 자녀 당 교육비는 늘어나, 사교육 시장 규모는 오히려 커지고 있다. 

 KB국민카드의 개방형 데이터 비즈니스 플랫폼인 데이터루트에 따르면, 교육부문 지출은 2019년 일시적으로 감소했다가 2021년부터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2021년 8월 한 달 동안 KB국민카드로 결제한 금액을 살펴보면 2020년 같은 기간보다 5.7%포인트 증가한 2945억 원으로 집계되었다. 


서울 기준 교육부문 매출액이 높은 지역은 강남구, 서초구, 양천구, 송파구, 노원구 순으로 나타났다. 이 지역 대부분은 서울에서 소위 '명문학군' 지역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은 고소득 3040 세대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다.

서울시의 학군 이주수요가 아파트 가격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김구회 외 (2016)는 명문학군의 지역적 특성으로 첫째, 고교평준화 이후 특목고 진학에 대한 관심이 증가함에 따라 특목고 진학률이 높은 중학교에 배정받을 수 있는 곳, 둘째, 맞벌이 가구 증가에 따라 방과 후 교육과정이 우수한 초등학교 배정이 가능한 곳, 셋째, 학교와 학원가를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곳으로 보았다.

강남구 대치동은 명문학군의 지역적 특성을 모두 갖춘 곳으로, 전국을 대상으로 사교육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사교육 투자비 대비 입시율 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강한 믿음은 대치동을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로 만들었다.

소위 '명문학군'의 탄생
 

정부에 의한 학원 규제 및 입시제도의 주요한 변화 ⓒ 서울역사박물관


과도한 사교육의 열기를 잠재우기 위해 정부는 여러 차례 입시관련 제도의 변화를 시도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사교육에 대한 수요를 더 부추기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입시 사정에 내신을 반영한 대학별 평가 도입과 특차, 정시, 수시 등과 같은 선발 전형의 일정과 방식 등의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학부모들은 사교육 현장에서 설명회를 듣는다.

대치동이 사교육의 1번지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1970년대 시작된 강남개발로 인한 강북의 명문학교의 이전과 중산층 이상을 위한 대규모의 아파트 단지개발, 1990년대 서울의 중고등학교 재학생들의 학원수강 허용과 대학수학능력시험의 등장, 2000년대 개인과외의 자유화 등을 들 수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의 등장은 입시 제도의 대대적인 변화와 다양화를 가져왔고, 입시학원뿐만 아니라 온갖 종류의 학원이 밀집된 대치동으로 고소득, 고학력의 학부모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교육부와 17개 시도교육청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공공데이터포털에서 제공하는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2월 현재 대치동에 있는 전체 학원 수는 1600개가 넘는다.

우리사회의 높은 교육열은 학군이 우수한 지역, 특히 강남 8학군 지역으로의 수요로 이어져, 이들 지역의 주택 가격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 결과 이 지역들을 중심으로 독특한 전월세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대치동의 경우, 자녀의 학업을 위해 전세로 거주하는 세대를 '대전세대'로 부르는데, 이들의 주거이동은 11월 수능시험이 끝난 이후,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매우 활발하게 일어난다.

대치동에 아파트를 소유한 거주자들은 종종 자녀들의 입시가 끝난 이후, 더 이상 그 지역에 머물 필요가 없기 때문에 다른 지역들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가격의 전세나 반전세를 주고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다. 최근 고금리와 부동산 하락 전망 속에서 대치동의 부동산 상황도 다소 주춤거리고 있으나, 불과 작년 까지만 하더라도 전용면적 84㎡의 대치래미안팰리스의 전세가가 21~23억 원에 거래되었다.

이들 지역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사교육 시장 과열에 대한 사회전반의 비판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그 열기는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2019년 문재인 정부의 자사고 폐지정책 발표 이후 명문학군 지역으로의 초중학생의 전입 쏠림 현상은 오히려 더욱 심화되었다. 자사고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던 학생과 학부모들이 이에 대한 대안으로 위 지역에 몰렸기 때문이다.

2021년 10월 20일자 <서울경제신문>에 따르면, 2021년 초중학생의 강남, 서초구 순유입은 2년 새 80% 급증하면서 주택의 매매 가격뿐만 아니라 전월세 가격까지 급등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자사고 폐지를 통해 교육의 평준화를 이루려고 한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부모의 자산 정도에 따른 교육의 양극화와 사교육 시장의 확대를 가져온 것이다.

학벌주의와 성공에 대한 '지나친' 욕망
 

2021년 11월 9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 학생들이 오가고 있다. ⓒ 연합뉴스

 
물론 자녀의 성공을 위한 부모의 노력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여전히 존재하는 학벌주의와 성공에 대한 '지나친' 욕망이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강남구보건소가 2019년 5-7월 관내 중학교 2,3학년과 고등학교 2학년 16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강남구 청소년 사교육 정신건강 현황조사'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 중고생 중 43%가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서울시 전체 중고생의 스트레스 인지율 40%보다 약 3%포인트 더 높은 수치다.

학생들의 스트레스 주요 원인은 학업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참여자 가운데 지난 1년간 사교육을 경험한 비율은 약 93.7%로 통계청의 '2018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와 비교해볼 때, 전국 (72.8%), 서울시 (79.9%) 보다 10-20%포인트 정도 높게 나타났다. 사교육을 받는 학생 중 최근 1년 동안 2주 내내 일상생활을 중단할 정도로 슬프거나 절망감을 느낀 적이 있는 학생이 17.1%에 달했다. 

약 20여 년 동안 대치동에서 논술강사와 학원장으로 일하던 조장훈씨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 <학벌주의와 부동산 신화가 만나는 곳, 대치동>은 우리 사회의 학벌주의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21세기 초입, 학벌은 여전히 모두가 얻고자 하는 사회적 자원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누구나 좋은 학교에 가기를, 이른바 '스카이 캐슬'에 속하기를 원한다. 학벌은 가난한 이들에게는 계급상승을 위한 마지막 가능성이고, 부자들에게는 안정적인 계급세습에 연착륙하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이다. 그리하여 더 나은 학벌을 둘러싼 경쟁, 대학 입시의 열기는 과거 어느 때보다 더 치열하다." (2020, p.12)
 
우리가 그토록 열망하고 쫓는 '성공'은 무엇일까? 우리의 자녀들에게 '내가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삶', '내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 성공으로 인정되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 줄때, 대치동과 같은 고질적인 학벌주위와 지나친 성공주의가 낳은 일그러진 공간이 더 이상 생산되지 않을 수 있다. 

참고문헌
김구회, 김기홍, 김재태 (2016) 학군 이주수요가 아파트 가격에 미치는 영향: 서울시 11개 학군을 대상으로. 학국정책과학회보, 20(4): 157-171.
서울역사박물관 (2017) 대치동의 역사. 서울역사박물관: 서울.
조장훈 (2020) 학벌주의와 부동산 신화가 만나는 곳, 대치동. 사계절: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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