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에 설립된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는 1991년 월드 디즈니 스튜디오와 제휴 계약을 맺은 후 <토이 스토리>와 <벅스 라이프>, <몬스터 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 같은 3D 애니메이션들을 제작해 큰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지난 2006년 1월 디즈니가 픽사를 인수하며 픽사는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의 자회사가 됐다. 할리우드에서 선두를 다투는 두 거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한솥밥을 먹는 사이가 된 것이다.

하지만 디즈니와 픽사는 한 식구가 된 후에도 별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 1998년 현대자동차가 기아자동차를 인수한 후에도 두 회사가 별개의 법인으로 운영되면서 생산과 판매를 철저하게 분리해 운영하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다. 다만 픽사는 디즈니와 한 식구가 된 후에도 <라따뚜이>,< 월-E >,<업>,<토리스토리3> 등 재미와 작품성을 겸비한 히트작을 꾸준히 발표한 데 비해 디즈니는 2000년대 중반까지 상대적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렇게 디즈니는 화려했던 과거를 뒤로 한 채 자회사 픽사는 물론이고 <슈렉>시리즈와 <샤크>,<마다가스카>,<쿵푸팬더> 등을 차례로 히트시킨 후발주자 드림웍스에게도 밀리고 있었다. 그런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2010년대 들어 화려하게 부활했는데 많은 관객들이 꼽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부활의 시작을 알린 작품은 바로 (자신이 초능력을 가졌다고 믿는) 슈퍼독의 이야기를 그린 3D 애니메이션 <볼트>였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볼트>를 시작으로 2010년대 제2의 전성기를 활짝 열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볼트>를 시작으로 2010년대 제2의 전성기를 활짝 열었다. ⓒ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주)

 
<볼트>가 불 부치고 <겨울왕국>으로 대폭발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는 1989년 <인어공주>를 시작으로 1991년 <미녀와 야수>,1992년 <알라딘>, 1994년 <라이온 킹>, 1995년 <포카혼타스>, 1996년 <노틀담의 꼽추>, 1998년<뮬란>을 차례로 선보이며 전성기를 달렸다. 그 시절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흥행은 물론이고 매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음악상과 주제가상을 독식했을 정도로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픽사와 드림웍스 등 3D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들이 급부상하면서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침체기에 빠져 들었다. 물론 디즈니에서도 2000년 <다이너소어>를 시작으로 2005년 <치킨 리틀>, 2007년<로빈슨 가족> 등 3D 애니메이션을 꾸준히 제작했지만 완성도는 물론 흥행에서도 썩 만족스런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그렇게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 업계의 중심에서 한 발 물러나는 듯 했다.

하지만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2008년 3D 애니메이션 <볼트>를 통해  부활을 선언했다. 1억500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만든 <볼트>는 2008년 <쿵푸팬더>와 <마다가스카2>, <월-E> 등 픽사와 드림웍스 애니메이션들의 공세 속에서도 3억 달러가 넘는 흥행수익을 올리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그리고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볼트>를 시작으로 다시 한 번 화려했던 전성기가 찾아왔다.

디즈니는 2009년 <공주와 개구리>로 2억6700만 달러, 2010년 <라푼젤>로 5억9200만 달러, 2012년<주먹왕 랄프>로 4억71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올리며 3연타석 홈런을 기록했다. 그리고 2013년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엘사와 안나 자매가 나오는 <겨울왕국>을 통해 국내관객 1000만을 비롯해 12억8100만 달러라는 역대 애니메이션 최고 흥행성적을 기록하는 '대형 만루홈런'을 작렬했다(6년 후 <겨울왕국2>가 기록경신).

2014년 <빅 히어로>로 6억57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올린 디즈니는 2016년 또 한 번 세계흥행 10억 달러에 빛나는 <주토피아>를 선보이면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전 세계에 코로나19라는 재앙이 찾아오기 1년 전, <겨울왕국2>로 14억50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한 것도 디즈니에겐 큰 호재였다. 코로나19 이후 최근 세 작품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한 디즈니는 내년 월트 디즈니 컴퍼니 100주년 기념 애니메이션 <위시>를 선보일 예정이다.

인간과 동물의 우정 그린 디즈니 애니메이션
 
 <볼트>는 디즈니에서는 흔치 않았던 슈퍼독 히어로 장르의 애니메이션이었다.

<볼트>는 디즈니에서는 흔치 않았던 슈퍼독 히어로 장르의 애니메이션이었다. ⓒ 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주)

 
2000년대 들어 디즈니의 애니메이션들은 흥행에도 실패했지만 평단에서도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제작사가 많아지면서 더 이상 디즈니가 만든 애니메이션이 '세계 애니메이션의 기준'이 되지 못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볼트>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는 오랜만에 미국의 평점 리뷰사이트 '로튼로마토'에서 신선도 89%, 국내 N포털사이트 네티즌 평점 9.04를 받으며 크게 호평을 받았다.

<볼트>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인간소녀 페니(마일리 사이러스 분)와 함께 악당에 맞서 정의를 수호하는 '슈퍼독' 볼트(존 트라볼타 분)가 할리우드 촬영장을 떠나 뉴욕으로 오면서 겪는 모험을 다룬 작품이다. 알고 보니 볼트는 초능력을 가진 슈퍼독이 아닌 어린이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견'이었고 엄청난 전투기술과 필살기인 '슈퍼 목청'을 사용하긴커녕 현실에서는 똑같이 피를 흘리고 배고픔을 느끼는 평범한 개에 불과했다. 

볼트는 시크한 길고양이 미튼스(수지 에스먼 분)와 볼트의 열혈팬인 햄스터 라이노(마크 월튼 분)를 만나 함께 페니를 구하기 위한 긴 여행을 시작한다. 우여곡절 끝에 할리우드까지 오게 된 볼트는 촬영장의 화재로 위험에 빠진 페니를 구하기 위해 불속에 뛰어들고 환풍구를 향해 힘껏 짖으면서 소방관들에게 자신과 페니가 있는 위치를 알렸다. 악당들을 물리쳤던 장면보다 훨씬 멋졌던 볼트의 '슈퍼목청'이 빛났던 순간이었다. 

<볼트>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흔치 않게 인간과 동물의 우정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반려동물 문화가 발전한 북미관객들이 <볼트>에 더욱 열광했던 이유다. 실제로 <볼트>에는 드라마 촬영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볼트를 놀리는 '초록눈 인간'(말콤 맥도웰 분)의 두 애완 고양이와 볼트의 모험담을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해 페니의 엄마를 설득하는 드라마 제작사 대표 정도를 제외하면 악한 캐릭터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사실 <볼트>의 흥행석적은 3억900만 달러로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대표 흥행작인 <겨울왕국>시리즈나 <주토피아> 등에 비하면 아쉽다 못해 초라해 보일 정도로 적었다. 하지만 <볼트>가 호평을 받으면서 디즈니는 2000년대 초·중반까지 이어지던 결코 짧지 않았던 암흑기를 극복했고 2010년대 두 번째 르네상스를 활짝 열 수 있었다. <볼트>가 디즈니에게는 여러모로 의미 있는 작품으로 기억되는 이유다.

'상남자' 존 트라볼타가 귀여운 강아지 연기를?
 
 장문에 얼굴을 내밀고 만족스런 표정을 짓는 볼트를 보며 '상남자 배우' 존 트라볼타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장문에 얼굴을 내밀고 만족스런 표정을 짓는 볼트를 보며 '상남자 배우' 존 트라볼타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 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주)

 
사실 <쿵푸팬더>의 잭 블랙과 <슈렉>의 에디 머피, 카메론 디아즈,<꿀벌 대소동>의 유재석(?)처럼 애니메이션에서 스타 배우를 성우로 캐스팅하는 것은 그리 새로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존 트라볼타는 1977년 <토요일 밤의 열기>로 스타덤에 오른 후 <그리스>와 <마이키 이야기>,<펄프픽션>,<페이스 오프>,<장군의 딸>,<스워드 피쉬>,<헤어 스프레이> 등 여러  영화에서 주로 남자답고 마초적인 캐릭터를 많이 연기했던 배우다. 

하지만 존 트라볼타는 <볼트>에서 자신의 정체(?)를 모르고 살아가는 슈퍼독(인줄 아는 배우견) 볼트의 목소리 연기를 맡아 기대 이상의 호평을 받았다. 아무리 히어로 개 역할이라지만 존 트라볼타에게 개 연기를 시킨 것은 상당한 반전이었다. 존 트라볼타는 <볼트> 이후 더 이상 애니메이션 목소리 연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볼트>는 그의 필모그라피에서 더욱 특별한(?) 작품이 됐다.

볼트의 파트너이자 친구, 그리고 볼트가 뉴욕에서 할리우드까지 여행을 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 페니 역은 당초 아역배우 시절의 클로이 모레츠가 맡을 예정이었다. 실제로 모레츠는 페니 분량의 녹음까지 마쳤지만 최종적으로 페니 역의 성우는 가수 겸 배우 마일리 사이러스로 교체됐다. 결국 모레츠는 영화 초반부에 잠시 등장하는 페니의 어린 시절 장면에만 잠시 목소리가 등장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볼트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존 트라볼타 클레이 모레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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