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1.09 05:10최종 업데이트 23.01.09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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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시동생, 그리고 남편의 후배가 경량 목조주택 벽체를 세우고 있다. ⓒ 노일영

     
우리가 49.59m²(15평)짜리 경량 목조주택 한 채를 완성하기까지는 거의 6개월이 걸렸다. 2층을 다락방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장기 공사라 할 수 있다. 관련 업계 종사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는 고비용·저효율의 신세계를 열어젖힌 것이나 다름없다.

15평이라면 전문 목수들이 1달이 지나기도 전에 완공했을 정도의 규모다. 하지만 비전문가인 나와 남편, 그리고 시동생과 남편의 후배가 무턱대고 덤벼들어 만든 결과물이라, 6개월 만에 끝낸 것도 사실은 기적이라 할 만하다.


생초짜에 불과한 4명의 손으로 만든 집 한 채. 집 하나를 지을 때까지 손과 몸을 쓰는 것보다 말싸움하느라 입을 더 많이 사용한 것 같다. 아침에 작업이 시작될 때마다 4명 모두 중구난방으로 의견을 마구 쏟아내면, 배가 산으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집이 점점 바다로 내려앉아 침몰하는 느낌이었다.

이것은 사실 남편이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 4명 중에 경량 목조주택 관련 교육을 받은 사람은 남편뿐인데, 작은 문제라도 발생하면 남편은 늘 갈팡질팡 헤매기 일쑤였다. 문제 해결 능력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남편은 그다지 믿음직한 리더는 아니었다.

하지만 남편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경량 목조주택 시공 기술을 가르치는 곳에서 고작 3개월을 배우고, 집을 짓겠다고 달려들었으니 말이다. 남편이 아는 거라곤 학교에서 배운 것이 전부인데, 다들 잘 알다시피 학교와 현실 세계는 아주 많이 다르지 않은가! 그렇다고 쳐도 남편의 현장 대처 능력이나 응용력은 솔직히 정말 터무니없을 정도였다.

그래도 각양각색의 난관을 헤치고 집을 완성할 수 있었던 건 남편의 후배가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의 후배인 영대는 예전에 실내 인테리어 일을 해본 터라, 집을 짓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재빨리 해결책을 내놓곤 했다. 그러면 그다음에는 늘 정해진 패턴대로 사태가 흘러갔다.

손재주 없는 남편
 

지붕에 서까래를 걸기 전 모습, 이 공간은 현재 다락방으로 사용되고 있다. ⓒ 노일영


일단 남편이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으며 영대의 해결책을 거부한다. 거부의 논리는 단순하다. 남편은 학교에서 그런 방식으로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형, 진짜 답답하네. 현장은 학교처럼 돌아가는 데가 아니라니까요. 현장을 학교에서 배운 대로 끼워 맞추려고 하면 답이 없다구요, 거참!"

"무슨 말인지는 잘 알겠는데, 일단 교육받은 내용을 바탕으로 해결책을 만들어야지. 우리가 만드는 건 인간이, 생명이 사는 공간이라고, 임기응변 따위로 집을 지을 수는 없다고!"


그리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남편은 시간을 달라고 요구한다. 남편이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는 동안 3명은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진다. 체면치레할 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 나는 남편에게 투표를 제안한다.

영대의 해결책을 수용할 것인지를 묻는 투표에서 남편은 늘 1:3으로 패한다. 이후 남편이 임기응변이라고 규정한 영대의 제안이 아주 훌륭하게 문제를 해결한다. 남편은 마른기침을 쿨럭대며 집 짓는 현장에서 잠시 사라진다.

남편이 직접 경량 목조주택을 짓겠다고 선언했을 때 나는 결사반대했다. 이미 남편에게는 2번의 집짓기 경험이 있었지만, 시작은 창대하고 나중은 늘 미미했다. 2번의 집짓기를 통해 내가 확인한 거라곤 손재주도 없는 남편이 대책도 없이 겁만 없다는 것뿐이었다. 남편은 직접 집을 짓는 것을 레고 놀이 정도로 여기는 것 같았다. '레고라면 돈이라도 덜 깨지지···.'

지금도 나는 집짓기와 관련해서 남편의 근거 없는 자신감을 이해할 수 없다. 남편은 문과 출신으로 귀농을 마음먹기 전까지 망치로 못 한 번 박아 본 적 없는 사람이고,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일을 해본 적도 전혀 없었다.

게다가 남편은 요즘 말로 '똥손'이다. 손에 무슨 분쇄기라도 붙어 있는지, 뭔가를 고치려고 손만 대면 그 물체는 갑자기 기능이 전체적으로 파괴돼 버린다. 그리고 가끔 아들이 색종이 오리기 놀이를 함께하자고 해서 가위를 들면, 듣도 보도 못한 기괴한 형상들이 색종이에서 마구 튀어나와서 아이를 놀라게 만들 정도다.

경량 목조주택 건립 선언
 

경량 목조주택이 거의 완성된 상태다. ⓒ 노일영


예전에 시어머니에게 한번 물어봤다.

"어렸을 때는 어땠어요?"

"얘야, 말도 마라. 뭘 뜯는 걸 좋아해서, 라디오도 뜯어 놓고 했거든. 그래서 얘가 기술자나 과학자가 되려나 생각했지. 그런데 뜯어 놓은 물건들이 전혀 원상복구가 안 되더라고. 어이구, 그 손에 작살난 물건이 어디 한두 개라야 말이지. 그럴 때마다 내가 등짝을 그냥 확···."


킥킥대는 나를 보고 아차 했는지, "그래도 뭐 겁도 없이 물건들을 분해하는 걸 보면서, 동네에서 탐구심만큼은 신동이라고 소문이 자자했지"라고 시어머니는 훈훈하게 대화를 마무리했다.

이 정도 깜냥밖에 안 되는 사람이 무슨 자신감으로 경량 목조주택을 직접 짓겠다고 마음먹었는지 정말로 불가사의할 따름이었다. 물론 귀농해서 남편은 19.83m²(6평) 정도의 오래된 집을 흙 부대 공법으로 리모델링하기도 했고, 황토로 23.14m²(7평) 정도의 집을 지은 적도 있다.

하지만 흙 부대 공법으로 리모델링한 집은 구들 공사에 실패해서 온종일 아궁이에 불을 때도 방바닥이 따듯해지지 않았다. 그리고 황토로 지은 집도 1년이 지나자 비가 오면 천장에서 물이 똑똑 떨어지기 시작했다.

남편은 자신이 창조한 결과물들의 참혹한 상태를 잘 알면서도 다시 직접 집을 짓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도대체 이 남자의 머릿속과 가슴속에는 뭐가 들어앉아 있는 것일까? 불굴의 도전 정신으로 위장한 오기?

"나한테 뭘 증명하려고 굳이 직접 경량 목조주택을 지을 필요는 없다고."

"뭘 증명하려고 집을 짓나? 거기서 살려고 짓는 거지."


내 반대는 무의미했다. 남편은 이미 전라북도 임실군에 있는 한 목조주택 교육기관에 등록을 마치고 내게 '경량 목조주택 건립 선언'을 한 것이다. '내일배움카드'로 직업훈련 과정에 수강 신청했으므로 3개월 동안의 교육 비용은 들지 않는다고 남편은 통보했다.

선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가족은 임실군으로 이삿짐을 옮겼다.
덧붙이는 글 <함양타임즈>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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