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5월에 개봉했던 마동석, 손석구 주연의 <범죄도시2>는 전국 1260만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흥행순위 13위에 등극, 코로나19로 침체에 빠졌던 극장가를 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물론 영화 자체도 많은 재미와 매력이 있었지만 <범죄도시2>가 천만 관객을 동원하며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는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으며 청소년 관객들을 대거 유입한 것도 있었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영상물을 제작하거나 수입할 경우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상영등급을 분류 받는다. 영상물 등급위원회는 주제와 선정성, 폭력성, 대사, 모방위험 등 7가지 항목을 종합해 모든 연령이 관람할 수 있는 전체관람가부터 상영에 제한을 두는 제한상영가까지 구분해 등급을 나눈다. 물론 등급을 신경 쓰지 않고 과감하게 영화를 만드는 제작사도 있지만 대부분의 상업영화들은 최대한 많은 관객들이 볼 수 있도록 등급이 낮게 나오길 바란다.

지난 1992년 국내에서 한 소녀의 성장과 첫사랑을 다룬 할리우드의 풋풋한 성장영화 한 편이 개봉했다. 이 영화는 초등학생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순수한 영화였지만 여학생의 초경과 호기심에 저지른 이성친구와의 첫 키스, 이성친구의 죽음 등을 소재로 해 전체관람가 등급을 받지 못하고 12세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1990년대 초반 할리우드 최고의 아역스타로 군림하던 맥컬리 컬킨이 출연한 하워드 지프 감독의 <마이 걸>이었다.
 
 <마이걸>은 맥컬리 컬킨의 유명세에 힘입어 제작비의 3배가 넘는 쏠쏠한 흥행수익을 올렸다.

<마이걸>은 맥컬리 컬킨의 유명세에 힘입어 제작비의 3배가 넘는 쏠쏠한 흥행수익을 올렸다. ⓒ 콜럼비아트라이스타(주)

 
어린이 주인공이면 유치할 거라는 편견을 버려

흔히 어린이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들은 유치할 거라는 선입견이 있다. 하지만 18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북미 2억8000만 달러, 월드와이드 4억76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한 <나홀로 집에>처럼 어린이가 주인공인 영화들도 결코 완성도나 재미 면에서 떨어진다고 속단할 수 없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나홀로 집에>는 1992년 겨울에 개봉했던 속편도 3억5800만 달러라는 엄청난 흥행성적을 올렸다.

훗날 <쥬만지>와 <퍼스트 어벤저>를 연출하는 조 존스톤 감독의 장편 데뷔작 <애들이 줄었어요>역시 매우 흥미롭게 볼 수 있는 가족 코미디영화다. 1989년에 개봉한 <애들이 줄었어요>는 세계적으로 2억2200만 달러의 쏠쏠한 흥행수익을 올렸다. <애들이 줄었어요>는 1992년 <아이가 커졌어요>에 이어 1997년 <아빠가 줄었어요>까지 제작됐다(1998년에 만들어진 <애들이 똑같아요>는 오리지널 시리즈와 별개의 영화다).

1997년에 만들어졌고 국내에서는 2001년에 개봉한 <천국의 아이들>은 국내 관객들이 쉽게 접하기 힘든 이란에서 만들어진 영화다. <천국의 아이들>은 BBC에서 선정한 '비 영어권 100대 영화 순위'에서 46위에 이름을 올렸는데 그 작품은 이 영화가 아닌 동명의 프랑스 영화다. 하지만 국내 관객들은 1945년에 만들어진 프랑스 영화보다 '3등을 하기 위해'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는 귀여운 남매의 이야기를 더욱 좋아한다.

국내에서는 <엑스맨> 오리지널 3부작의 로그 역으로 유명한 안나 파킨은 1993년 <피아노>로 데뷔한 후 1996년 <아름다운 비행>을 통해 16마리의 기러기를 키우는 엄마(?)로 변신했다. 주인공 에이미와 기러기들의 우정, 그리고 아름다운 영상미가 돋보이는 아름다운 비행>은 1997년 아카데미 촬영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덤 앤 더머>로 유명한 제프 다니엘스가 에이미의 아버지로 출연했다.

국내에서는 <한 지붕 세 가족>의 순돌이 역을 맡으며 최고의 아역스타로 떠오른 이건주가 80년대 후반 3편까지 제작된 <별똥동자> 시리즈를 통해 어린이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우뢰매>와 <밥풀떼기 형사> 등 대부분의 어린이 영화들이 심형래, 김정식 등 '어른'들이 주인공을 맡은데 비해 <별똥동자>시리즈는 같은 어린이인 이건주가 주인공 순돌이를 연기하면서 또래 관객들의 많은 공감을 얻었다.

천하의 맥컬리 컬킨이 준주연?
 
 베이다(오른쪽)와 토마스는 사랑의 감정 없이 그저 '호기심'으로 서로의 첫키스 상대가 된다.

베이다(오른쪽)와 토마스는 사랑의 감정 없이 그저 '호기심'으로 서로의 첫키스 상대가 된다. ⓒ 콜럼비아트라이스타(주)

 
<마이걸>은 1990년 <나홀로 집에>를 통해 할리우드의 벼락스타로 떠오른 맥컬리 컬킨이 1992년 <나홀로 집에2-뉴욕을 헤매다>에 출연하기 1년 전에 제작·개봉한 영화다. <마이걸>은 맥컬리 컬킨의 높은 인지도 덕분에 17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져 제작비의 3배가 넘는 5900만 달러의 괜찮은 흥행성적을 올렸다. 국내에서도 맥컬리 컬킨의 유명세에 힘입어 서울에서만 17만 관객을 동원했다.

개봉 당시 맥컬리 컬킨의 지명도가 워낙 높았고 3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마이걸>을 맥컬리 컬킨의 영화라고 기억하는 관객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마이걸>의 주인공은 맥컬리 컬킨이 아닌 11세 소녀 베이다를 연기한 안나 클럼스키였다. <마이걸>은 장의사 아버지, 정신이 혼미한 할머니와 함께 사는 사춘기 소녀 베이다가 남사친 토마스(맥컬리 컬킨 분)를 비롯한 여러 사람을 만나며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국어선생님을 짝사랑하던 베이다는 아버지가 새로 고용한 직원 쉘리(제이미 리 커티스 분)와 이성적으로 가까워지자 알 수 없는 질투심을 느낀다. 그리고 아버지와 쉘리의 키스장면을 목격한 베이다는 한 번도 이성으로 생각한 적 없었던 토마스를 불러 첫 키스를 나눈다. 사실 키스랄 것도 없이 찰나의 시간 동안 입술만 살짝 닿은 뽀뽀였지만 베이다와 토마스는 어색함에 갑자기 벌떡 일어나 가슴에 손을 얹고 '충성의 맹세(미국의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운다.

하지만 베이다가 처음으로 입술을 허락했던 토마스는 베이다가 잃어버린 반지를 찾으러 벌집이 있는 숲으로 갔다가 벌에 쏘여 그만 짧았던 생을 마감한다. 베이다는 토마스의 장례식에서 "나무 타러 가자"고 매달렸지만 토마스는 끝내 눈을 뜨지 못했다. 남자 주인공 토마스가 고작 벌에 쏘여 죽는 <마이걸>의 결말에 불만을 갖는 관객들도 적지 않았지만 실제로 국내외에서는 벌에 의한 사망사고가 심심찮게 발생하곤 한다.

<마이걸>은 안나 클럼스키와 맥컬리 컬킨이라는 귀여운 커플이 등장하는 예쁜 영화로 끝냈으면 좋았겠지만 어른들의 욕심에는 끝이 없고 결국 <마이걸>은 2년이 지난 1994년 속편이 제작됐다. 하워드 지프 감독이 전편에 이어 다시 연출을 맡은 <마이걸2>는 전편에서 세상을 떠난 맥컬리 컬킨을 제외한 대부분의 주요인물들이 그대로 캐스팅됐지만 북미 1700만 달러, 서울관객 6500명으로 흥행과는 거리가 멀었다.

에미상 노미네이트 4회의 클럼스키
 
 <마이걸>의 실질적인 주인공이었던 안나 클럼스키는 훗날 에미상 여우조연상 후보에 4번이나 이름을 올리는 배우로 성장한다.

<마이걸>의 실질적인 주인공이었던 안나 클럼스키는 훗날 에미상 여우조연상 후보에 4번이나 이름을 올리는 배우로 성장한다. ⓒ 콜럼비아트라이스타(주)

 
안나 클럼스키가 연기한 <마이걸>의 주인공 베이다는 귀여우면서도 독특한 정서를 가진 아이다. 베이다는 아버지와 훗날 엄마가 되는 쉘리, 짝사랑하는 국어선생님, 유일한 친구이자 첫키스 상대 토마스를 만나며 점점 성장한다. 베이다는 토마스의 죽음 이후 한 동안 괴로워하지만 다시 기운을 내고 아들을 잃고 실의에 빠져 있는 토마스의 어머니를 안아주며 "토마스는 걱정 마세요. (천국에서) 저희 엄마가 지켜 주실 거에요"라는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마이걸>을 통해 아역스타로 급부상한 클럼스키는 1994년 <마미 마켓>과 <마이걸2>에 출연했다가 1995년 <베어 마운틴의 비밀>을 끝으로 한 동안 연기활동을 중단했다. 13년이 지난 2008년 <이브즈드라프>를 통해 연기활동을 재개한 클럼스키는 <VEEP 1: 부통령이 필요해>와 <한니발 시즌1>, <할라> 등 여러 드라마에 출연했다. 클럼스키는 에미상 여우조연상 후보에만 4번이나 노미네이트되며 성인이 된 후에도 연기력을 인정 받았다.

<마이 걸>에서 아내가 일찍 세상을 떠나고 장의사라는 직업 때문에 딸에게 살갑게 굴지 못하는 베이다의 아버지 역은 SNL 출신의 코미디 배우 댄 애크로이드가 연기했다. 70년대 후반부터 배우로 활동하며 <고스트버스터즈> 시리즈와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채플린> 등에 출연한 애크로이드는 지난 2019년 <좀비랜드: 더블 탭>에서 <고스트 버스터즈>에 함께 출연했던 빌 머레이와 자신의 실명으로 출연해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할머니와 아버지,딸까지 3대가  단란하게 살고 있는 베이다 가족의 분위기에 반해 베이다의 아버지와 함께 일하게 된 쉘리는 1978년부터 2020년까지 10편의 할로윈 시리즈에 빠짐없이 출연하고 있는 제이미 리 커티스가 연기했다. 올해 화제작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 출연했던 커티스는 국내 관객들에게는 1994년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아내로 나왔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트루 라이즈>에 출연한 배우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마이걸 하워드 지프 감독 안나 클럼스키 맥컬리 컬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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