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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위 2차 청문회에 출석해 마스크를 벗고 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위 2차 청문회에 출석해 마스크를 벗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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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이후 불거진 '유가족 명단 논란'의 기괴한 점은, 행정안전부가 도대체 왜 '명단을 갖고 있지도 않다'는 주장을 극구 고수하느냐다. 

이 문제가 처음 거론된 것은, 지난해 11월 16일 예산결산특별위에서 이상민 행안부 장관을 상대로 한 질의에서였다. 당시 이 장관은 유가족 명단을 갖고 있지 않느냐는 의원들의 질문에 "국무위원이 하는 말을 왜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시고 자꾸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행안부에서는 명단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이태원참사 국정조사 과정에서 서울시가 세 차례에 걸쳐 유족 명단을 보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경찰도 중대본에 유족 연락처를 넘겼다고 진술했는데도 이상민 장관은 주장을 철회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위증으로 고발을 당하게 될 처지에 이르게 됐다(관련 기사: 정의당 "'이태원 참사' 특검 추진하고 위증 이상민 고발해야" https://omn.kr/22cju ). 

유가족 명단, 없는 게 이상하지 않나
 
이태원 참사 유가족 조경선씨가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2차 공청회에서 진술하며 흐느끼고 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 조경선씨가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2차 공청회에서 진술하며 흐느끼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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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 명단이 없다'는 행안부의 애초 주장부터 희한하다. 행안부는 재난대응의 주무부처로서 피해자와 유가족 지원의 책임이 있다. 행안부 측이 하겠다고 한 각종 지원책, 이를테면 피해자 및 유가족의 원스톱 통합지원센터, 1:1 전담공무원 매칭, 지방세 감면과 같은 각종 유가족 지원 조치들은 명단 없이는 수행이 어려웠을 일들이다. 

실제로 행안부는 이태원 사고 유가족들의 지방세 감면을 위해 지자체에 '사망자 및 유가족 내역'을 붙임자료로 넣은 공문을 내려보냈는데, 이 사실이 국조특위에 의해 지난해 12월 공개되기도 했다.장관 자신도 겸연쩍었던지 국정조사 기관보고에서 "(행안부가 명단이 없다는 주장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이라고 인정하고, 청문회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조차도 명단이 없다는 주장이 상식적으로 들리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이상민 장관은 서울시가 행안부에 건네준 명단은 사망자 명단에 유가족 명단이 포함된 형태이므로 유가족 명단은 아니라는 '지록위마'식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명단 숨기기'는 정권 리스크 관리의 한 단면

이는 장관의 단순한 고집이라기보다는 윤석열 행정부가 이태원 참사를 이해하는 방식과 맞닿아 있는 듯하다. 그들에게 유가족과 시민은 참사에 '슬퍼하는 존재'여야하지 '분노하는 존재'여서는 안 된다. 지원과 진상규명도 정권의 '리스크'를 관리하는 차원에서 제한적으로 이뤄져야 하고, 수사를 통해 법적으로 직접적 과실이 있는 하급직원을 희생양으로 삼아 권력의 핵심은 보호하겠다는 의도에 따라 행정력이 소비됐다. 

그러니 '근조 없는 애도 리본', '영정과 위패 없는 일방적 분향소 설치'와 같은 일들이 벌어졌던 것 아니겠는가. 청문회에서 유가족들이 거듭 진술하듯 유가족 모임 결성 시도는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묵살되고 방치되었고, 지원을 위한 연락조차 받지 못한 유가족들도 부지기수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상민 장관 측이 행안부 관계자들을 통해 개별적으로 비밀리에 유가족들을 접촉, 만나려 시도했다는 사실이 지난해 12월 초 언론 보도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들이 중립적이고 무결한 관료로 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유가족 명단은 있어서는 안 됐던 것이다. 이는 충분하지 않은 피해자와 유가족 지원을 두고 행안부에 쏟아지는 책임 추궁을 회피하기 위해서, 동시에 정권의 불안요소를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행안부의 의도가 들켜서는 안 된다는 집념이 빚어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관료가 위증하는 것이 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크게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는 전례 역시 그 배경이 됐을 것이다.  

반복되는 명단 논란... 국민 안전 아닌 정부 안전 챙기는 행안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5일 오전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모습. 가운데 한덕수 국무총리, 오른쪽 이상민 행안부 장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5일 오전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모습. 가운데 한덕수 국무총리, 오른쪽 이상민 행안부 장관.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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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안부에서 이와 비슷한 논란이 처음 있었던 것이 아니란 점도 주목해야 한다. 5월 대통령 취임식에 안정권씨 등 극우 성향 유튜버나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의 아들 등이 초대되었다는 논란이 있었고, 이들이 초대된 경위를 밝히려는 언론과 야당의 요구가 있었다. 이 당시 주무부처인 행안부는 대통령 취임식 초대 명단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는데, 결국 거짓말로 밝혀졌다. 명단은 있었다. 이후 해명과정에서 취임식 직후 명단을 모두 파기했다고 말을 바꿨는데, 이 역시 거짓말이었다. 일부 명단이 여전히 남아 있었고 언론을 통해 공개되기까지 했다.

이번 논란과 똑같은 구조다. 사실 대통령 취임식 초대명단이 없을 리가 없지 않은가? 국가 공식 행사에 참석하는 수만 명의 인사들에게 초대장을 보내는 고도의 체계적인 행정 업무를 수행하면서 '명단을 관리하지 않았다'는 해명은 설득력이 전혀 없다. 대통령기록물법 위반 소지가 있는 명단 전수파기 해명도 역시 마찬가지다. 정권의 불안요소를 관리한다는 인상 자체를 주지 않으려 엉겁결에 무리수를 두다 보니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서 볼 때, 이번 논란의 복선이기도 했던 셈이다.

이상민 장관의 행정안전부는 자신들을 국민의 안전이 아니라 행정부의 안전을 관리하는 부처로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검수완박' 대응 차원에서 경찰국을 설치할 때는 행동대장격 면모를 보여주더니,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농성 해산을 위한 작전회의를 주도하고 화물연대 파업을 국가재난이라 취급하면서 컨트롤타워를 자임했다. 대통령실 위협이 되는 일에는 누구보다 빨리 움직이지만, 앞선 참사에서 확인했듯 국민의 안전은 돌아보지 않았다.

이것은 동시에 참사의 원인과도 관련이 있다고 본다. 과거 핼러윈 축제 때 배치되었던 경찰기동대는, 왜 이번에는 배치되지 않았을까.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의 진술이나 용산구청과 서울시의 사전대처에서 확인할 수 있듯, 정권의 관심사였던 마약단속과 집회 관리에 치안력과 행정력을 집중한 탓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기본적인 안전관리는 배제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벌어진 참사를 수습하는 과정에서도 역시 최우선 순위는 행정부의 보신이었다고 보인다. 사태가 반복될까 두려운 이유다. 

'겁쟁이 보수주의'로의 퇴행

보수주의는 본디 겁이 많다. 기존 질서를 흔들거나 흔들 수 있는 모든 것에 느끼는 두려움과 공포의 감정이 권력의 원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한 손에는 낡은 법전을 들고, 또 한 손에는 행정력이라는 망치를 쥐고 잠재적 위협들을 가려내고 박살내려는 유혹에 늘 내몰린다. 재난의 피해자나 조선소 하청노동자는 늘 '불쌍한 존재'로 머물러야 하지만, 그들이 권리를 주장하는 순간 '불온한 존재'로 낙인찍히게 마련이다.

진정으로 품위 있는 보수주의는, 보수주의에 내재한 그 막연한 두려움과 공권력 남용의 유혹을 참아내고 조건 없는 대화와 박애로 포용하는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윤석열 정부는 단 한 순간도 품격과 참을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태원 참사 명단 논란은 '겁쟁이 보수주의'로의 퇴행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유가족 명단은 국가의 충실한 지원과 유가족들의 상호 부조를 위해 활용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상민 행안부에게서 유가족 명단은 통제와 관리의 수단 중 하나였기에, 극구 숨겨야 할 무언가가 되고 말았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국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이태원 참사, #행정안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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