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최대의 명절 설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여느 때보다 이른 설 명절이 반갑기만 하면 좋으련만 생각만 해도 가슴 한 편이 답답해지는 이들도 있죠. 남편 뒷바라지만 강요하는 시어머니, 걱정인지 염장인지 모를 말만 늘어놓는 친척들, 설 연휴에도 일하라는 사장님, 찬바람 불면 생각나는 '추억의 빌런'까지. 그들이 보고 무언가 깨달을 수 있는 영화와 드라마, 노래를 소개합니다.[편집자말]
설 명절이 다가오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없어진 뒤에 맞는 첫 명절이라 더 많은 이들이 여기저기서 모여들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그럴까, 벌써 '빌런'의 존재가 신경 쓰인다. 바로 명절 때 만나는 친척 어른들. 공부, 취업, 취직, 결혼, 출산 등등 다양한 주제의 잔소리들이 명절 밥상에 오르기 마련인데, 그중에 결혼 잔소리는 언제나 상위권을 차지한다.

그런데 그래서 결혼만 하면 '만사 오케이'가 되는 걸까? 결혼은 현실이라는데, 그 현실이 어떨지에 대한 고민 없이 무턱대고 결혼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박강아름 결혼하다>(2021)는 그렇진 않다는 걸 보여준다. 

정상가족과 결혼·출산·육아에 질문을 던지다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관련 사진.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관련 사진. ⓒ 영화사 진진

 
<박강아름 결혼하다>는 아름과 성만의 결혼 생활을 담은 자전적 다큐멘터리다. 독립영화 감독이었던 아름과 진보신당의 활동가였던 성만은 정당 활동을 하면서 처음 만났고, 연애를 한 뒤에 결혼을 했다. 흔한 결혼 얘기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고백도, 살림을 합치자는 얘기도, 결혼을 하자는 얘기도 모두 아름이 했기 때문이다. 성만은 연애하면서 본인은 비혼주의자라고 아름에게 털어놓기도 했다. 

직업적인 부분에서도 둘은 '보통'의 모습과 다르다. 자신의 작업세계가 한국에서는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빚을 갚고 수중에 3000만 원만 생기면 프랑스로 떠날 생각에 부풀어 있던 아름과 달리, 성만은 주 3일은 보조 요리사로, 나머지 시간은 집에서 소설을 쓰고 있었다. 엄연히 하던 일이 있는 성만을 프랑스로 데려가는 과정을 말하면서 아름은 고백한다. '유학을 준비할 때 가서 뭘 할지에 대한 계획은 있었지만 성만에 대한 계획은 없었다'고.

프랑스에 막상 와서 보니 할 수 있는 일은 같이 먹을 밥을 차리는 것밖에 없던 성만은 급속도로 우울해져갔고, 아름은 성만을 위해 원테이블 식당 '외길식당'을 차리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차린 외길식당은 프랑스 유학생들과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식당이 된다.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관련 사진.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관련 사진. ⓒ 영화사 진진

 
외길식당의 손님 중 한 명의 말이 울림이 크다. "남편분이 아내분 때문에 (프랑스에) 온 거잖아요. 저는 그걸 듣고 이런 생각을 했어요. '아, 남편도 와줄 수 있구나' 저는 그런 걸 생각지도 못했거든요".

이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아내가 집안일을 하는(그러다가 경력 단절도 되곤 하는) 주부이고 남편은 밖에서 돈을 벌어오는 경제주체인 이른바 '정상가족 모델'과는 분명 다르다. 남편이 아니라 아내의 꿈을 위해 삶의 터전을 옮기는 모습이 특히 그렇다. 불어를 할 수 있던 아름이 행정과 경제를, 성만이 가사를 자연스럽게 맡게 됐다.

그런데 기존에 유지되던 남녀의 성역할이 바뀌었다고 해서 바뀌지 않는 게 있다. 바로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들여야 하는 노력과 관계에서 생겨나는 갈등상황이다. 아름이 출산을 한 뒤에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게 된 성만은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아름의 몸까지 이해해줄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고 두 달이 지나서도 어린이집에는 자리가 없어 성만은 다니던 어학원을 쉬고 육아를 하기로 결정한다. 경제를 맡는 아름은 성만이 사온 음식들의 영수증을 보다가 '왜 더 비싼 걸로 사왔냐'며 화를 내기도 한다.

결혼 이후의 삶에도 관심을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틸컷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틸컷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틸컷 ⓒ 영화사 진진

 
결혼을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 시절이 되었지만, 결혼 잔소리는 여전하다. 결혼 이후에도 삶은 계속되건만, 결혼만 하면 된다는 식의 잔소리는 아무래도 현실성이 없는 것 같다. 그런 '잔소리 빌런'들에게 영화는 의미있는 문제의식을 던진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새로운 공동체를 꾸리는 것은 둘의 삶이 이전과는 많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는 뜻이고, 이전에 고민하지 않던 문제들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을. 그것은 가정 내에서 아내와 남편의 역할이 달라진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 점이라는 것을. 이랑이 부른 OST의 한 소절처럼, "매일 또다시 반복되는 건 산더미처럼 쌓인 문제들"('빠까아뚬' 중)이니까. 

언제 결혼하냐는 잔소리 대신, 결혼은 이렇게 힘든 일이라고, 결코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라고 이야기해줄 수 있는, 그리고 결혼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줄 수 있는 어른의 존재가 필요한 시절이 아닐지. "언제나 어딘가로 뛰어가고 있"는 아름과 상만에게 이런 삶이 "버거운 일"('박강아름은 어떤 사람일까' 중. 제목은 아름에 대한 이야기지만, 상만에게도 이런 삶이 버거울 수 있다고 얘기하며 위로해줄 사람이 필요하지 않았을까?)이라는 걸 알려주고 위로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덜 힘들지 않았을는지. 

"평범한 사람, 평범한 가족"('빠끼아뚬' 중)으로 살아가는 게 어려운 시절에 이 영화를 명절 빌런들과 빌런들에게 고통받는 이들(?)에게 권한다. 이랑의 노래와 함께 삶에 대한 고민을 곱씹으며. 

정상 가족이란 도대체 뭘까
여전히 알 수 없는 말이지
내가 원한 건 별거 아닌데
평범한 사람 행복한 가족들
- 이랑, '빠까아뚬'

너는 언제나 어딘가로 뛰어가고 있어
그 모든 게 너에게는 버거운 일이면서도
너의 삶도 너의 학교도 너의 결혼도
너의 아이도 너의 영화도
- 이랑, '박강아름은 어떤 사람일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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