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1.18 05:22최종 업데이트 23.01.1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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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의장이 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의사당에서 열린 제118차 하원의회에서 의장으로 선출되자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21년 1월 6일 의사당 점거 폭동 사태를 겪은 미국이 올해 초 또 한 번 의회 민주주의 위기를 경험했다. 미국 하원은 118대 하원 의장 선출을 위한 투표를 무려 15회나 반복한 끝에 7일 새벽 가까스로 케빈 매카시(공화당) 의장의 당선을 확정했다.

의석수 과반을 넘는 다수당이 한 번의 투표로 의장을 선출하지 못한 예는 현재의 미국 정당정치 문화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다당 체제의 의원내각제 국가들이 흔히 겪는 난맥상이 사실상 양당 체제인 미국에서 발생한 것이다.

충격적인 사건

민의가 제대로 수용되지 못한다는 비판에도 불구, 안정적 양당제 정치의 모델을 보여주던 미국이었기에 이번 파장은 클 수밖에 없었다. 하원 의장 선출을 위해 수차례 투표가 필요했던 가장 최근의 일은 100년 전의 일이었다.


1923년 세 번째 임기를 위해 미 하원 68대 의장 선거에 출마한 공화당의 프레데릭 질레트 의장은 같은 당 내 진보성향의 의원들에 막혀 첫 투표에서 과반의 지지 확보에 실패했다. 공화당 지도부와 진보성향 의원들 간의 긴 협상 끝에 9번째 투표 후 질레트 의장은 가까스로 그의 세 번째 임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 후 100년 동안 민주, 공화 양당은 어느 쪽도 의회 의장 선거에서 표대결을 통해 당내 세력 갈등을 표출한 적이 없었다. 선거 전 당내 교통정리가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공개적 투표에 의한 인사 결정이 민주 절차에 절대 부합하지만 관례에 따른 내부 사전 정지 작업도 조직의 안정적 운영의 한 예이기도 하다.

양원제 미국에서 상원 의장은 부통령이 겸임하도록 되어 있다. 다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부통령이 상원 회의를 상임 주재하지 않고 임시의장이 그 임무를 대신한다. 임시의장은 다수당의 최다선 의원이 맡는 것이 관례다. 따라서 상원 의장 선거는 사실상 형식적 절차에 불과하다.

반면 하원의장은 부통령과 임시의장으로 권력이 분할된 상원의장직보다 상대적으로 원내 권한이 크다. 대통령, 부통령에 이어 국가 권력서열 3위이며 (상원 임시의장이 국가 권력 서열 4위) 당내 권력과 의회 권력을 장악할 수 있는 인물이 맡는 것이 통례다.

따라서 상원의장의 경우보다 하원의장 선거가 선거 본연의 역할에 상대적으로 더 가까운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하원은 다수당 의원 가운데 선수(選數)가 아닌 실질적 권력의 정점인 하원 원내대표가 맡는 것이 관례였다.

물론 선거는 열리지만 거의 항상 다수당의 원내대표가 하원 의장으로 선출되는 이유가 이것이다. 한국 국회의 원내대표보다 미국 하원의 원내대표가, 한국의 국회의장보다 미국 하원 의장에 좀 더 정치적 권한과 권력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한편 미국 헌법상 하원 의장직을 반드시 하원의원이 맡아야 하는 규정도 없다. 그래서 간혹 벌어지는 해프닝이 의장 선거에 출마하지도 않은 정치인이 득표를 하는 경우다. 이번 하원의장 선거에서도 본인이 아는지 모르는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한 표를 획득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원내대표가 아닌 일반 의원이 의장에 당선되는 경우도 있다.2015년 114대 의장으로 당선된 공화당의 폴 라이언 의장이 그 예다. 이번에 어렵게 당선된 매카시 의장이 당시에도 원내대표 자격으로 의장직에 출마하려 했으나 당내 반발로 무산되면서 라이언 의원이 대신 당선된 것이다.

어떻든 미국 의회에서 투표 이전 정지작업은 많은 다른 나라처럼 정당정치의 통례로 여겨져 왔다. 그리고 이러한 당내 결정이 정당 간 공개 투표와 함께 안정적 정당정치의 양대 기둥으로 자리 잡은 것이 미국 정치의 최근 100년이었다.

이번 118대 하원 의장 선출을 위해 무려 15차례 반복 투표가 있었던 것은 이러한 배경을 놓고 볼 때 충격적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 의회 전통의 한 축이 무너진 것이고 어떤 점에서는 2021년 1월 6일 의사당 점거 폭동 사건에 비견할 수도 있다.

사흘간 이어진 이번 의장단 공백 사태가 법적 차원에서 1.6 의사당 점거사태에 비할 일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정치적 차원에서 보자면 그에 비견할 만큼 심각한 현재 미국 정치의 한 단면을 보여준 것은 분명하다.

보수세력의 분열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하원 제118차 회기 나흘째인 이날 하원 의장 선출을 앞두고 보수 성향인 프리덤 코커스 소속 칩 로이 공화당 하원 의원이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 연합뉴스


이번에 케빈 매카시 의장 선출에 반기를 든 공화당의 소수 의원 그룹은 <프리덤 코커스>로 대변되는 미국 공화당의 강경 보수세력 출신의원들이다. 대부분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며 그들 중 다수는 2020년 미국 대선의 결과가 조작되었다고 믿고 있다.

심지어 2년 전 의회 점거 폭동 사건에 대해서도 이들 다수는 동조하는 입장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이들과 매카시 의장이 갈라지는 지점이다. 매카시 의장도 이들과 마찬가지로 2020 대선 결과에 대해 불복하는 입장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것이 폭동 사태로 이어지는 데에는 거리를 둔 것이다.

이들 강경파에게 케빈 매카시 의장은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며, 그보다 더 강경하게 바이든 정부를 향한 대여 투쟁을 할 수 있는 인물이 하원 의장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그들의 이러한 저돌적 행동은 트럼프 전 대통령마저 설득에 애를 먹을 만큼 강경했다.

케빈 매카시 의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친 트럼프 성향의 정치인이다. 2016, 2020 두 차례 대선에서 모두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했으며, 트럼프 탄핵 국면에서도 반탄핵 진영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호위무사 역할을 충실히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란' 세력들은 그의 대여 투쟁 노선이 충분히 강경하지 않다는 명분을 들어 줄곧 당선에 반대한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들이 무너뜨리고 싶은 최종 정치 정적이 케빈 매카시 의장이었을까? 그렇지 않으면 바이든 대통령이었을까?

2015년 처음 조직된 것으로 알려진 프리덤 코커스는 미국 보수주의 오랜 전통을 다시 일으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들이 극복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민주당과 미국의 진보세력뿐이 아니다. 그들에게 당장 더 시급한 정치적 목표는 자신들이 다시 보수의 주류 자리를 되찾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현재 공화당 내부에서 경쟁중인 신보수 세력과의 경쟁에서 앞서는 일이 중요한 과제다.

공화당 내 신보수를 네오콘(Neo Conservatism)이라 부르기 때문에 최근 들어 그와 상대되는 의미로 이들을 팔레오콘(Paleo Conservatism)이라 부르기도 한다. 물론 팔레오콘이라는 표현은 그들이 보수의 주류일 때는 없던 용어다. 네오콘이 대세로 군림하면서 비로소 붙은 표현이다.

네오콘이라는 표현이 저널리즘을 통해 무비판적으로 사용되다 보니 지금은 개념에 상당한 혼란이 있다. 하지만 정치사적으로 네오콘은 진보의 가치이던 인권과 민주주의를 보수의 패러다임으로 전적으로 수용, 이에 반하는 모든 세력은 반인권적, 반민주주의적 세력으로 간주하는 세력이 그 주체였다.

이들에게 전체주의와 파시즘, 신정국가 체제는 따라서 모두 전복되어야 할 대상이 된다. 네오콘이 국제정치에서 간섭주의(interventionism)와 결속한 것도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도, 아프가니스탄 침공도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의 이름으로 정당성을 보장받는다.

팔레오콘의 반격
 

지난 12월 1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1.6 의회 난입' 사태에 관한 특위의 마지막 회의가 열리는 동안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영상이 스크린에 영사되고 있다. 특위는 이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반란 선동 및 의사 집행 방해의 등 혐의를 적용해 기소할 것을 법무부에 권고했다. ⓒ 연합뉴스


이러한 미국 네오콘의 국제주의-간섭주의에 반대해 과거의 고립주의로 회귀하려는 것이 팔레오콘식 국제정치의 핵심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고립주의와 반동맹주의, 더 나아가 북한과의 대화 노력도 네오콘식 국제정치에 대한 반대 입장에서 나온 전통 보수 회귀 운동의 일환이었다.

물론 현실 정치에서는 이들 보수의 분파들이 대립되다가도 하나로 수렴되고 다시 세분화되는 반복이 계속 된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한정책이 막판에 대혼란을 겪으며 실패로 돌아간 것도 그의 핵심 참모들 속에 혼재된 네오콘과 팔레오콘 간의 이념적 충돌 때문이었다.

트럼프의 출현은 이들 전통 보수주의자(팔레오콘)에게는 반격의 기회로 다가왔다. 네오콘이 상대적으로 엘리트주의에 기반한 보수라면 팔레오콘은 포퓰리즘 기반의 보수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20세기 후반 수십 년 동안 소외계층으로 전락한 저학력 백인 남성들에 어필하며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 MAGA)'를 외쳤다.

하지만 트럼프주의는 실패했고 공화당은 다시 정권을 민주당에 빼앗기게 된다. 심지어 공화당은 여당의 무덤이라는 중간선거에서마저 집권 민주당을 제압하지 못하고 최근 십 수 년 사이 가장 저조한 야당의 중간선거 성적 결과를 받아 들어야 했다.

공화당은 2024년 선거에서 실패한 트럼프주의를 반복하고 싶지 않은 듯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곧 네오콘의 전면 재등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을 바라보는 트럼프 지지층 유권자들, 그리고 팔레오콘 정치인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2023년 1월 초, 하원 의장 선거를 놓고 벌어진 공화당 내부 분열은 바로 이러한 공화당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에 근거하고 있다. 고립주의, 보호무역을 지향하고, 이민에 적대적이고 인권보다는 전통가치를, 민주주의보다는 종교적 가치를 지향하는 이들 팔레오콘은 하원 의장 선거 국면에서 그들의 정치적 입지를 굳히는데 성공했다.

무엇보다 공화 민주 양당의 의석수 차이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다수당인 공화당의 목소리는 소수 팔레오콘들의 의지에 뒤흔들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것은 양당의 협상 여지가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하고 바이든 행정부 후반기 2년의 하원이 격랑 속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의미도 된다.

양자 간 대립이 팽팽한 구도일수록 전체의 향방은 소수 극단세력의 뜻에 맞게 흘러간다는 역설. 2023년 미국 정치는 이 역설에서 자유로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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