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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시장을 나갔다. 다른 때와는 다른 활기가 넘친다. 수북이 쌓여 있는 과일상자며 각종 나물들을 보며 '아, 설이 돌아오는구나'라고 실감한다. 3년이 넘는 동안 코로나로 명절에도 사람이 모이는 것이 자유롭지 못했다. 이제는 규제가 풀리고서 자유롭게 사람도 만나고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어 사람 사는 세상 같아 흐뭇하다. 

나는 결혼 54년 차, 지금까지 한 번도 제사 음식 만드는 일을 건너뛴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불평 한번 해 본 일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왜 그랬을까? 의아스럽기는 하다. 하지만 그래야 마음이 편하고 가정이 편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들 마음만 불편하다.

코로나가 오면서 큰 댁 가족들끼리 명절 차례를 조촐하게 지내왔다. 작은집과 우리는 간단한 음식을 준비해서 산소를 다녀오는 걸로 참석 못함을 대신했다. 같이 모일 수 없는 명절은 쓸쓸하고 마음이 울적했다. 산소에 갈 때 큰집을 지천에 두고도 돌아가야 하는 서운함은 우리가 살던 세상이 아닌 듯 낯설기만 했다. 

코로나가 소강상태가 되면서 일상이 돌아왔다.  3년이란 긴 세월을 우리는 인내하고 견뎌냈다. 코로나만 끝나면 가족이 다 모이고 아무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그 생각은 예상과는 달랐다. 코로나가 오고 나서 사람들 마음도 일상에도 변화가 왔다. 예전처럼 가족들도 만남이 줄어들었다. 지금은 형제들의 만남도 멀어졌다.
 
시댁은 제사를 정성을 다해 지낸다
▲ 시댁 제사상 시댁은 제사를 정성을 다해 지낸다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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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큰집 조카에게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감기 드시고 엄마도 요양원에 계시니 이젠 올해부터 명절 차례는 하지 않겠습니다. 두 작은 집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한다. 어쩌겠는가, "그래 이해한다"라고 대답은 했지만 마음이 기쁘지는 않다. 

큰집에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우리 집안은 제사 지내는 일에 진심이라 우리 생전에 차례를 지내는 일은 계속될 거라고 믿어 왔는데... 원래 형님이 아프셔도 큰댁 며느리, 나와 동서가 음식 준비를 하면 차례는 지낼 수 있다. 중노동도 아니고, 사는 이야기를 하면서 음식 준비하는 일이 나는 재미도 있었다.

젊은 사람들은 이해를 못 할 일이고, 나와는 생각이 다를 것이다. 어쩌랴, 세상이 변해가는 것을. 사람 사는 방법도 변해간다. 나이 든 사람들 방식으로 살라고 말하면 갈등만 생기게 된다. 예전 같으면 남편도 한 마디라 하련만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두라고 한다. 

그래서 올 설부터 명절에는 차례를 지내지 않기로 했다. 가족간의 따뜻한 마음을 나눌 수 없어 많이 섭섭하다. 하지만 세상사는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나이 든 세대라서 뒷전으로 물러나야 하는 때인가 보다. 예전과 다른 명절, 세배를 하고 덕담을 하고 사람과의 따뜻한 온기가 사라지는 것 같아 못내 아쉽고 허전하다. 

다만, 변화를 탓하기보다는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살아가려 한다. 이번 설은 작은 집과 간단한 음식을 준비해 가지고 조상의 산소에 가서 어른들에게 절을 하려 한다. 물 흐르듯 변하는 세상의 물결을 거스를 수는 없어도,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전통을 지켜 나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명절, #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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