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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중요한 말'들을 저는 그저 '공백의 개념'이라 여깁니다. '사랑'이며, '행복'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것들이 '공백'이 아니라면, 저는 그것들을 채울 수 없어 헤아릴 수 없는 슬픔에 빠질지 모릅니다.

사랑은, 행복은 그저 '공백의 세계'일 거라 믿고 있습니다. 혹시나 그것들이 '내 등 뒤'에 있어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농담' 같은 생각도 가끔 합니다.

사랑의 어떤 방식

공백의 세계는 '자유로움의 공간'일 것입니다. 어떤 방식도 허락하는 너른 공간. 그 공간에서는 긍정과 부정의 세계가 함께 할 것이고, 생산과 파괴가 동시에 일어날 수 있으며, 어쩌면 다정함과 폭력이 뒤섞인 그런 세계일 수도 있겠습니다.

사랑이라는 '공백의 세계'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작으면서 큰, 소소하면서 위대한 어떤 일이 일어나는 세계. 사랑하고 있는 사람의 번호를 내 이름으로 저장하는 일. 전시회 티켓을 두 장 사서 누군가를 불러들이는 일. 나 혼자만의 의미가 가득한 '어떤 공간'에 함께 가자고 슬쩍 물음을 던지는 일. 차갑지 않게. 건조하지 않게. 시인은 말합니다.

"사랑을 가진 사람은 세상 그 무엇도 차갑고 건조하게 함부로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의 시작

차갑지 않고, 건조하지 않은 그런 사랑이라면, 저는 그 '시작'을 묻고 싶습니다. 이토록 차가운 세계에서 '사랑'은 정확하게 그 반대편에 서 있을테니까요.

"사랑은 없다. 사랑의 모든 '좌표'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다행입니다. '사랑은 없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사랑이 있다'면, 저는 사랑의 자격에 대해 물었을 겁니다. '사랑이 있다'면, 저는 그 '있음'의 무게에 짓눌려 도망가고 말았을 겁니다.

'사랑이 없어서' 다행입니다. 사랑이 '공백'이며, 공백이 '좌표'가 될 수 있다니 마음이 놓입니다. 사랑의 시작이 사랑의 '없음'에서 출발할 수 있다니 내심 기뻐지려 합니다.

행복의 가능성
 
이병률 시인의 산문집 <그리고 행복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표지
 이병률 시인의 산문집 <그리고 행복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표지
ⓒ 달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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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의 공백 속에서도 살아갑니다. 시인의 산문집 제목 <그리고 행복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처럼 가끔 누군가의 행복을 전해들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타인의 행복하다는 소식에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는 것은 '나에게도 그 행복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시인은 '행복의 가능성'을 알고 있다며 우리에게 쪽지를 건넵니다.

"사람과 관련된 모험을 통해서만 행복의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아마도 이 '행복의 통로'를 우리에게 들려주기 위해 시인은 수 없이 떠난 여행과 그 속에서 만난 수 많은 사람들을 기억해내며 글로 옮겼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만남의 모험을 통해 시인은 물러터짐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했으니까요.

가장 정확한 형태의 사랑

우리는 다만 누군가를 '정확하게 사랑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행복에도, 사랑에도 '가까이에만 갈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행복과 사랑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지, 그것의 정확한 형태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매일 '자기 자신'에게 들러 '나'을 잊지 않으려 노력할 뿐입니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정확한 형태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만나는 꾸준한 연습'만이 결국 "사람들은 왜 만나야하며, 왜 사랑해야 하는가를 알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행복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병률 (지은이), 달(2022)


태그:#이병률, #그리고 행복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달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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