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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을 맞은 가운데 전국건설노조 조합원들이 25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한건설협회 앞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엄중적용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을 맞은 가운데 전국건설노조 조합원들이 25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한건설협회 앞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엄중적용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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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 전인 1월 14일, 요진건설산업 화성 물류창고 건설 현장에서 노동자가 깔려 죽었습니다. 크레인이 작업용 발판 계단을 옮기다 외벽 구조물을 건드려 철근 더미가 우르르 쏟아지면서 노동자를 덮쳤습니다. 건설사 자율로 맡겨놓는다고요? 계속 이렇게 죽으란 얘기입니다." (강한수 민주노총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위원장)

노동자가 일하다 사망했을 때 사업주는 물론 원청의 경영책임자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 1년을 맞았지만, 산재 사망 사고가 가장 많은 건설 현장 노동자들은 "중대재해법이 제대로 시행된 적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법만 새로 제정됐을 뿐이지, 정부나 수사기관이 중대재해법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중대재해법이 처음 시행된 지난해 1월부터 12월까지 총 211건의 중대재해법 위반이 적발됐지만, 이중 수사가 진행된 것은 163건, 노동부가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한 것은 31건, 검찰이 기소한 것은 11건에 불과했다. 그리고 사업자가 처벌된 경우는 '0'건이었다.

그런데도 재계와 보수 진영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산재 사망을 줄이는 효과가 없다며 경영자 처벌 조항을 없애려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2022년도 중대재해 사망자는 644명으로 전년도(683)보다 39명 줄었지만,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인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 원 이상) 사업장으로 한정하면 지난해 사망자가 256명으로 전년(248명)보다 8명 늘었다.

한국경영자총연합회(경총)은 25일 발표 자료를 내고 "중대재해처벌법 중 기업인들에게 가장 부담을 주는 형사처벌 규정의 삭제를 최우선적으로 검토·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대재해 사망자 644명 중 341명이 건설업… "중대재해법 무력화 안 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을 맞은 가운데 전국건설노조 조합원들이 25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한건설협회 앞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엄중적용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을 맞은 가운데 전국건설노조 조합원들이 25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한건설협회 앞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엄중적용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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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움직임에 현장의 건설 노동자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제대로 적용된 적도 없었건만 재벌 건설사들은 벌써부터 법에 실효성이 없다고 강변한다"라며 "정부와 국회에 로비를 해 이 법을 무력화시키려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건설업은 산재사망 사고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산업으로, 지난해 중대재해 사망자 총 644명 중 과반인 341명이 건설업에 속할 정도다.

강한수 민주노총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위원장은 이날 서울 강남구 대한건설협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작년 한 해 동안 가장 많은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곳은 우리나라 건설업계 3위 안에 들고 'e편한세상'을 거느린 DL이엔씨(구 대림산업)였다"라며 "이곳에서 4건의 중대재해가 발생해 5명의 노동자가 돌아가셨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주 처벌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강 위원장은 "정부와 재계는 자꾸 중대재해처벌법을 '처벌 위주'라고 하는데 실제로 처벌이 된 게 도대체 언제였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건설 현장에서 타워크레인 사고가 하도 많이 나니 지난 2018년 정부가 집중점검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1년 동안 타워크레인으로 인한 중대재해가 단 한 건도 없었다. 하지만 이후 정부가 손을 놓으니 다시 사고가 재발되고 있지 않나"라며 "합당한 처벌이 아닌 건설사 자율에 맡기게 되면 결과는 뻔하다"고 했다.

최근 건설 현장에선 산재 사고의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무사고 확인서'를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전재희 민주노총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건설사들이 재해의 책임을 피하려고 '오늘 안전하게 일했고, 혹시라도 재해가 발생했다면 그 책임은 건설사가 아닌 노동자에게 있다'는 식의 서류에 서명을 요구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라며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중대재해처벌법이 제대로 시행되질 않고 있는데, 기업들 꼼수만 늘고 있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역시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노조 설명이다. 건설노조가 2023년 1월 현장 노동자 75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2022년 1월 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기점으로 건설현장이 달라졌나'란 질문에 52%가 '달라지지 않았다'고 했고, '달라졌다'는 응답은 21.6%에 그쳤다.

건설노조는 "무전유죄 유전무죄인가"라며 "불법 다단계 하도급과 최저가 낙찰제가 맞물리는 건설업계의 이윤 중심 먹이사슬에서 중대재해처벌법마저 '있으나 마나' 하고 무시해도 되는 관행이 된다면 건설 현장의 안전은 다시 수십 년 뒤로 뒤쳐질 것"이라고 했다.


[관련기사]
[이달의 기업살인] 오지 않는 미래...2022년 일하다 죽은 노동자 827명 https://omn.kr/229kn
 

태그:#중대재해처벌법, #건설노조, #건설업, #산재사망, #경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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