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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백서 발표대회에서 발표하는 서길수 교수 모습
 동북공정백서 발표대회에서 발표하는 서길수 교수 모습
ⓒ 서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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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이 음력설과 김치뿐만 아니라 한복도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을 하고 나서면서 양국간 역사 논쟁이 뜨겁다. 지난 14일 고구려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서길수 교수를 만나 <동북공정백서>를 발간한 경위를 들었다.

경제학자였던 서길수 교수가 역사 연구에 매진하게 된 계기는 1986년 처음 중화인민공화국을 방문한 후 1990년 10월 옛 고구려 수도였던 국내성(현 길림성 집안)에서 장대한 고구려 유적들을 둘러보고 나서다. 서 교수는 고구려의 옛 이름이 '고구리'라는 것을 밝히는 책을 냈다.

고구려 유적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은 그는 "그래! 이제부터 만주에 묻혀있는 고구려의 혼을 깨우자"고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1993년 1학기는 아예 만주 땅에서 보냈다. 이때 모은 자료에 나타난 고구려 산성이 무려 100개가 넘었고 1994년 초 삭풍이 몰아치는 겨울까지 103개의 성 모두를 답사했다.

답사 도중 환도산성 설경을 찍으러 산에 올랐다가 나무 가시가 왼손을 관통해 수술받기도 하고 양계장에서 키우던 도사견 5마리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여름철에는 태풍으로 곳곳이 유실되어 차가 미끄러지는 등 위험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당시 고구려붐이 일자 KBS 주최 '고구려특별대전'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고구려성>이란 책자를 내고 고구려연구소를 설립해 사단법인 등록을 마쳤다. 처음에는 "경제사 전공자가 무엇 때문에 고구려 연구인가?"라고 무시하던 국내 역사학자들도 그를 돕기 시작했다. 내친김에 북한학자까지 초청해 동경에서 국제학술대회를 열자 중화인민공화국 당국이 그를 블랙리스트에 올려 5년간 입국 금지 조치를 내렸다.
  
'한중수교 30년, 역사침탈 20년'을 맞이해  2022년 3월 1일 고구리, 고리연구소가 발간한 동북공정백서로 저자는 서길수, 우실하, 박승범, 박찬규, 한규철, 박선영의 5인이다.
 '한중수교 30년, 역사침탈 20년'을 맞이해 2022년 3월 1일 고구리, 고리연구소가 발간한 동북공정백서로 저자는 서길수, 우실하, 박승범, 박찬규, 한규철, 박선영의 5인이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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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은 대한민국이 중국과 수교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였다. 작년 여러 언론에서 수교 30년에 관해 긍정적인 글을 썼다. 하지만 서길수 교수를 비롯한 5인(우실하, 박승범, 박찬규, 한규철, 박선영)은 한국의 역사를 빼앗겼다며 부정적인 시각을 보인다. 그들은 '한중수교 30년, 역사침탈 20년'을 기념하기 위해 2022년 3월 1일 900여쪽에 달하는 <동북공정백서>를 발간했다. 서길수 교수가 책을 발간하게 된 연유를 이렇게 말했다.
      
"2017년 미국 트럼프가 <월스트리트 저널(Wall Street Journal)>과의 인터뷰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시진핑을 만났는데 그가 '한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다. 한국은 옛날부터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니까 미국 너희들이 간섭하지 말라'고 얘기해 10분 동안 시진핑의 얘기를 듣고 난 뒤 나는 쉽지 않겠다라는 것을 깨달았다'라는 기사가 나온 4월 중화인민공화국에서 가장 으뜸가는 검색포털인 <백도>를 검색해 역사 침탈한 내용을 찾아냈습니다."

"한·중수교 30년의 명암을 뼈아프게 되돌아봐야 한다"고 주장한 그는 "한·중 역사전쟁, 이른바 <동북공정>은 끝났는가? 중단되었는가? 아니면 아직도 계속되는가?"라고 강하게 되물었다. 서길수 교수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우리나라 역사를 침탈한 시기를 다음과 같이 구분했다.
  
▲역사침탈 0단계(1979년 이전): (고)조선· 부여· 고구리· 발해는 한국·조선의 역사
▲역사침탈 1단계(1979~1995, 16년): 역사침탈 논리의 형성과 역사 왜곡 단계
▲역사침탈 2단계(1996~2001, 6년): 1차 국책 역사침탈(9차 5개년계획)추진과 완성 단계
▲역사침탈 3단계(2001~2009, 8년): 2차 국책 역사침탈(동북공정)추진과 완성 단계
▲역사침탈 4단계(2010년 이후): (고)조선· 부여· 고구리· 발해는 중화인민공화국 역사
 

<동북공정백서> 524페이지에 수록된 아래 사진을 보면 중화인민공화국 포털뉴스 <백도백과>가 (고)조선을 어떻게 기술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고)조선은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으로 압축해서 보고 그 이전 단군조선은 인정하지 않는다.
  
중화인민공화국 3대 포털인 <백도백과>에 기술된 고조선에 관한 내용으로 <동북공정백서> 524페이지에 수록된 자료를 촬영했다.
 중화인민공화국 3대 포털인 <백도백과>에 기술된 고조선에 관한 내용으로 <동북공정백서> 524페이지에 수록된 자료를 촬영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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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은 한 무제가 한의 4군(BC108년)을 설치하기 이전, 고대 오늘날 조선반도 북부에 있던 조기 국가를 일컬어 말하는 것으로 주로 치나(China) 역사서에 기록된 기자조선 위만조선 두 나라의 앞뒤로 이어진 제후국 번속국을 말한다. 주의해야 할 것은 문화는 물론 혈연의 속성 같은 모든 것들이 오늘날 대한민국이나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의 역사에 속하지 않고, 치나 고대의 지방정권이라는 것이다. 조선과 한국 쪽에서는 후세에 날조한 전설에 나오는 단군조선이 (고)조선이라고 보고 있다"
 
다음은 <동북공정백서> 526페이지에 실린 위만조선에 대한 글로 중화인민공화국 포털뉴스 <백도백과>에 실린 내용이다. 
  
중화인민공화국 3대 포털인 <백도백과>에 기술된 위만조선에 대한 내용으로 <동북공정백서> 526페이지에 수록된 내용을 촬영했다
 중화인민공화국 3대 포털인 <백도백과>에 기술된 위만조선에 대한 내용으로 <동북공정백서> 526페이지에 수록된 내용을 촬영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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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만조선은 위씨조선이라고도 부르는데, 연나라 사람 위만이 세운 (고)조선 정권이다. <사기> 기록에 따르면 한조 초에 한나라 '고조'가 봉한 연나라 왕 '노관'이 흉노로 도망가자 그 부(部)의 장수 위만이 옛 부를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기자조선을 뒤엎고 스스로 세운 것이다."
  
위 주장에 대해 서길수 교수를 비롯한 <동북공정백서> 집필진은 다음과 같이 반박하고 있다.

"만일 그런 논리대로라면 진나라 시황은 서융 출신이니 진나라는 서융의 나라이고, 북위·요· 금· 원· 청 같은 나라는 물론이고 어느 나라도 이른바 '치나(China)가 아니다. 더구나 위만은 이전에 (고)조선이 연나라에 빼앗긴 땅에서 왔다는 것이 거의 확실하므로 이 부분은 앞으로 새로운 방향으로 연구해야 한다. 한 무제가 쳐들어와서 한때 옛 조선 땅에서 할거하였지만 결국 고구려가 통일하였다는 사실을 정확히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서길수 교수가 동북공정에 대해 이렇게 마무리했다.

"동북공정의 결과와 그 결과를 바탕으로 구성한 <백도백과>의 단군·기자·위만조선의 역사는 모두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로 되어있어요. 만일 이런 역사기술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사교과서에 나온 (고)조선과 청동기 문화, 단군과 (고)조선, 위만의 집권 같은 단원들은 모두 날조한 역사가 됩니다."
 

서길수 교수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우리나라 역사침탈(동북공정)은 끝났다"며 우리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와 남북한 및 해외에 계시는 9천만 동포가 힘을 합쳐 빼앗긴 역사를 되찾는데 모두 나서주십시오"라고 말하며 마무리 지었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뉴스에도 송고합니다


태그:#동북공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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