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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에게 눈을 치우는 일은 남을 돌보는 동시에 당신을 돌보는 일이기도 하다.
 부모님에게 눈을 치우는 일은 남을 돌보는 동시에 당신을 돌보는 일이기도 하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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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함박눈이 펑펑 쏟아진다. 눈 오는 낭만보다는 미끄러운 길이 걱정되고 느려진 교통편이 불편한 나이가 됐다. 특히나 오늘처럼 매서운 추위에 쏟아지는 눈은 더더욱 그렇다. 블라인드를 걷으며 밤새 눈이 얼마나 왔는지 가늠도 안되는 사이 하늘에서 슬로우모션으로 또 눈이 떨어진다. 맘이 급해진다. 전화를 해야겠다. 

친정엄마와 아버지는 우리집에서 멀지않은 주택가에 사신다. 내가 시집오기 전부터 그동네 살았고 주택살이 n년차 평생을 주택에 사셨으니 아파트로 옮기면 좋겠다고 여러 번 이야기도 해봤지만 소용없다.

관리비 아깝다고 돈이야기로 얼버무리시지만 사실은 답답하다가 속마음이다. 현관문만 열면 앞집이 보이고 조금만 시끄러우면 옆집 소리가 다 들리는 주택이 뭐가 좋으냐고 하지만 엄마는 아니란다. 옆집 할아버지도 옥상에 올라갔다가 넘어졌는데 옆집 사는 이웃이 올라간 할아버지가 안내려와서 119를 불러서 살았다, 옆집 아줌마가 알려준 정보로 과일을 싸게 샀다, 면서 주택 사는 인심을 나열하기 일쑤다.

그래도 자식된 입장에서는 연세가 있으시니 되도록 걱정 안 되게 안전하게 사셨으면 좋겠는데 어림도 없다. 하도 싫다하시니 이제는 체념한 상태다. 그런데 이런 눈이 오는 날은 특히나 걱정이다. 눈이 오니 외출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미끄러우니 조심해야 한다, 잔소리를 좀 해둬야 하는데 전화를 받지 않는다.

아침부터 마음이 부산스럽다. '가봐야하나? 왜 전화를 안받지?' 시간차를 두고 여러 번의 전화에 답이 없다. 집히는 부분이 있긴하지만 이렇게 눈이 오는데 설마 싶었다. 안 되겠다 싶어서 아이의 아침상만 차려놓고 가봐야겠다 마음을 먹은 사이 벨이 울린다.

"전화를 전화를 왜..." 화가 나지만 화를 다 쏟아낼순없어서 말투가 경직된다. "전화했었구나." 뭐했냐고 왜 두 분 다 전화를 안받냐고 다그치는데 엄마의 대답은 천연덕스럽다.

"눈 치웠지 대문 앞 쓸었지, 앞집이 다해도 그래도 내 집 앞은 좀 치워놔야지."
"날 부르지 그랬어 눈맞음서 뭐하러 아침부터."


엄마의 대답인 즉슨 그렇다. 살살하면 괜찮다, 많이도 안 치운다. 그리고 결정적인 말 한 마디. "이렇게라도 해야 동네사람하고 말을 섞지."

생각해보니 어린시절 눈치우던 우리집 앞 골목길에선 앞집 옆집 할 것 없이 다 나와서 같이 치웠고 그 옆에서 눈을 굴리던 나도 있었다. 그러다보면 옆집에 누가 안 나왔는지 누가 아픈지 누가 아이를 낳았는지도 다 알았다. 말섞으면서 살아야지 하는 그 소리는 아마도 그런 뜻인 것 같다.

하루가 다르게 고독사가 빈번한 요즘 이런 눈치우는 골목이 새삼 따뜻하게 느껴진다. 시골살이만 이웃사촌이 있겠는가. 이런 도심언저리 주택살이도 마음만 먹으면 이웃사촌이 되는 거다. 너무 적나라하지만 생존여부를 물어주는 사이 그런 게 이웃사촌이다.

아파트에 살면서 눈 안 치워서 좋다, 구경만 해도 좋다 싶었는데 부모님 노년의 적적하지 않은 삶에는 이런 눈쓸기도 한 몫 하는 모양이다. 새삼 부모님이 건강하게 사시는 것 같아 안심이다. 하지만 전화 끝에 늘어지는 잔소리는 안 할 수 없었다. 

"다음엔 내가 일찍 갈게요. 그리고 눈 치우러 나갈 때 옷은 여러 겹 입으셔야 해요. 집에 들어가면 따뜻한 차도 잊지 말고 드시고요. 그리고 제일 중요한거, 눈 치우러 나갈 때 전화기 좀 갖고 나가세요, 네?"

태그:#눈오느날 , #이웃사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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