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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은 작가의 소설집 <되겠다는 마음> 표지.
 오성은 작가의 소설집 <되겠다는 마음> 표지.
ⓒ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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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시간의 문을 열고 마주하는 착색 삽화처럼 아득하고 친근하다."
"세상에는 슬픈 것이 가득하다는 것을 아는 작가이다."

함정임·윤성희 소설가가 오성은 작가의 소설을 이같이 평했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이야기"를 하는 오성은 작가가 소설집 <되겠다는 마음>(은행나무 간)을 펴냈다.

2018년 '진주가을문예'에 중편 <런웨이>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 오 작가는 그는 영화 연출과 방송 진행, 작곡, 사진, 여행에세이 집필 등 다양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되겠다는 마음>에는 재미나는 여덟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모두 "고, 어해", "핑크 문", "아주 잠시 동안", "밤은 농담처럼", "무명의 사람들", "가방 안에 들어간 남자",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 "창고와 라디오"라는 소설이다.

"고, 어해"는 금광호 선장인 '노인'에 관한 이야기이다. 배는 자신의 몸과 마찬가지로 늙고 닳아버린 폐선이 되어버렸고, 삼십 년을 넘게 자신과 함께했으니 이제 폐기해야 되겠으나 노인은 자꾸 망설여진다.

노인은 고철 업체에 배를 넘기는 걸 결정한 어느 날 "밑바닥에서 울려 퍼진 바다짐승의 처절한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하자 사람들은 배가 무슨 소리를 내냐며 환청이라고 그를 다독이지만 노인은 꺼이꺼이 우는 배 울음소리가 예사롭지 않다고 한다. 노인은 갑자기 바다를 향해 뱃머리를 돌리면서 떠난 자가 된다.

떠난 사람들을 기다리며 떠난 곳에 자신도 모르게 정박하며 삶을 영위하는 남겨진 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무명의 사람들"이다. 주변 여러 소중한 사람을 잃고 비슷한 마음들을 간직한 채 본인의 삶을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슬픔을 공유하고 일상의 순간순간을 반추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아주 잠시 동안"은 만남과 떠남, 사랑과 이별에 대해, 더 나아가서 자신이 되고 싶었던 모습과 타인에 의해 되어가는 자신 사이에서 갈팡질팡 흔들리는 인물의 모습을 그린 소설이다.

"가방 안에 들어간 남자"는 주인 외에 모든 것을 삼키는 가방에 대한 이야기이다. 가방의 갈증으로 인해 모든 것을 삼킨다고 생각하는 주인공은 자신의 갈증과 가방의 갈증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창고와 라디오"에서 아내는 창고가 되겠다고 선언하고, 남편은 대수롭지 않게 흘려들었지만 중학교 동창인 강에게서 "무언가 되겠다는 건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태라는 거다"라는 말을 듣게 되면서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게 된다.

남편은 사라진 아내를 찾아 그녀의 고향으로 내려가게 되고, 거기에서 미래의 아내가 나타나 이미 본인이 꾸었던 꿈을 이야기하고 있는 장면을 경험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소설의 몇 대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속도 없는 놈이지요. 기훈은 그가 그렇게 말한 게 떠올랐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올 거라고 여겼으니까요. 그가 바라는 건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오는, 그것이었던가. 그러나 그도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다는 걸 분명 알고 있었다. 그가 한때 미워했던 도돌이표처럼. 그가 사라져버린 건 더는 그 집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아주 잠시 동안"의 일부).

"경두는 당장에 생각의 폭을 넓혀가선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었다. '당신은.' 목소리의 주인은 경두였다. 경두는 순주가 연극 무대 위에서 뱉어야 했던 이 대사를 되돌려주고 싶었다. 경두는 오래된 나무 벤치 앞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당신은 내게 전부이거나.' 터미널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경두를 힐끔거렸다. 경두는 한 번 더 외쳤다. '당신은 내게 전부이거나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기도 해요'"("무명의 사람들" 일부)

"오성은은 세상에는 슬픈 것이 가득하다는 것을 안다"고 한 윤성희 소설가는 "그 슬픔이 인물의 마음에 어떻게 불을 질렀는지, 그리고 그 불꽃이 어떻게 타오르다 어떻게 꺼져가는지, 그는 오랫동안 그걸 지켜본다. 재가 식을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그 재의 마음으로 소설을 쓴다. 그렇기에 그의 소설에는 요령과 술수가 없다"고 했다.

함정임 소설가는 "그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소리는 울임이 되고 노래가 된다. 노래는 귓전에 맴도는 듯하다가 어느새 심금을 두드린다"며 "문장이 운율이 되고 이야기가 리듬을 타는 홀연한 순간을 소설 도처에서 만날 수 있다"고 평했다.

오성은 작가는 동아대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앤솔러지 소설집 <미니어처 하우스>(공저)가 있다.

태그:#오성은 작가, #소설 <되겠다는 마음>, #진주가을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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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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