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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도수목원 안면정.
 안면도수목원 안면정.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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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에 숲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여름철 한껏 푸르렀던 나무들이 겨울철로 접어들면서 빛을 잃은 채 맨몸으로 서 있는 광경이 황량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세찬 눈보라가 몰아치기라도 하면,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아 있는 나무들이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서 있는 것처럼 보여 안쓰러울 때도 있다.

눈꽃이라면 모를까, 나무에 꽃이 피어 있는 걸 볼 수도 없다. 한창때는 시퍼렇게 날이 서 있던 풀잎들마저 누렇게 시들어 맥을 못 춘다. 본래 식물들이 지니고 있던 생명의 온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헐벗은 나무와 시든 풀잎을 볼 때마다 온 세상이 녹음으로 가득했던 날들이 그리워진다.

그렇다고 겨울이 물러가기만을 기다리고 앉아 있기엔 세월이 너무 갑갑하다. 햇살이 맑은 날이면, 숲을 찾아서 어디라도 가고 싶다. 아무리 추운 계절이라고 해도 이 세상 식물들이 모두 다 죽은 듯이 겨울을 나는 것은 아니다. 이럴 때 유독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나무들이 있다. 일 년 내내 한결같이 싱싱한 나무들, 사철 푸른 잎을 가진 상록수들이다.
 
안면도수목원, 호랑가시나무와 열매.
 안면도수목원, 호랑가시나무와 열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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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도를 특히 안면도답게 만드는 것

겨울에도 겨울이 아닌 듯 살아가는 나무들을 찾아서, 안면도로 '상록수 여행'을 떠난다. 안면도는 무엇보다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하다. 해안선을 따라서 안면도 최대 해변인 '꽃지해변'을 비롯해, '백사장해변', '삼봉해변', '샛별해변', '운여해변', '바람아래해변' 등이 줄을 잇는다. 섬 서쪽 해안이 모두 모래사장이 깔린 해변이라고 보면 된다.

누구라도 태안반도에서 연륙교를 건너 안면도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이 해변들 중 하나는 반드시 들러가게 되어 있다. 안면도로 들어선 이상, 어쩔 수 없다. 가는 곳마다 해변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들이 눈에 띈다. 그렇다 보니, 자칫 이들 해변이 안면도의 전부인 것처럼 비칠 때도 있다. 하지만 안면도가 어떤 섬인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안면도를 여행하다 보면, 어느 길에서든 솔숲을 보게 된다. 웬 소나무들이 그렇게 많은지 안면도는 섬 전체가 솔밭처럼 보인다. 설사 해변을 여행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해변에서는 해송이 모래사장 위로 병풍처럼 둘러서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안면도를 안면도답게 만드는 건 이 솔숲들이다.

안면도를 여행한다는 건 곧 소나무 숲을 여행하는 것과 같다. 한국인에게 소나무만큼 친근한 나무도 드물다. 그러니까 평소 소나무를 대하는 게 너무 익숙해서 별스럽게 느껴지질 않을 뿐이다. 그런데 강원도 깊은 산 속도 아니고, 평지와 낮은 구릉이 대부분인 안면도에 왜 이렇게 송림이 우거진 것일까?
 
안면도자연휴양림, 소나무숲 산책로.
 안면도자연휴양림, 소나무숲 산책로.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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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판옥선이 왜선을 충파한 이유

안면도 소나무는 고려시대부터 특별한 관리를 받아 왔다고 한다. 안면도에서 자라는 소나무의 재질이 우수한 데다, 안면도라는 지역이 또 바닷길을 이용해 목재를 운반하기 좋은 지리적 여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안면도 내 소나무 숲 73곳을 봉산으로 지정했다. 봉산은 국가의 허락 없이 나무를 베는 것을 금지하던 곳을 말한다.

안면도에서 생산되는 소나무 목재는 주로 궁궐 건축이나 배를 만드는 데 사용됐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이 주력으로 삼았던 판옥선이 왜선을 충파로 들이받아 박살 낼 수 있었던 것도 안면도 소나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안면도 소나무로 만든 판옥선이 삼나무로 만든 왜선보다 더 단단했다. 안면도 소나무가 가히 나라를 지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면도자연휴양림, 빛이 잘 들지 않는 소나무숲 산책로.
 안면도자연휴양림, 빛이 잘 들지 않는 소나무숲 산책로.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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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에는 안면도뿐만 아니라, 전국의 소나무들이 전쟁 물자로 사용되는 등 온갖 수난을 겪었다. 일제는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전쟁 물자가 바닥이 나기 시작하자, 송진을 연료로 써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때 소나무 밑동에 상처를 내 송진을 채취했다. 소나무 숲을 찾아다니다 보면, 아직도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걸 볼 수 있다.

해방 후, 안면도 소나무는 다시 귀한 대접을 받게 된다. 국가에서 소나무 숲을 보호하는 정책을 시행하면서, 안면도에서 대규모 소나무 숲을 가꿀 수 있었다. 안면도 소나무 숲은 현재 '소나무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돼 엄격한 관리를 받고 있다. 안면도의 소나무 분포 면적은 섬 전체 면적의 약 30%에 해당한다. 안면도에서 어딜 가든 소나무 숲이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안면도자연휴양림 스카이워크. 소나무숲을 공중에서 가로지르며 바라다볼 수 있다.
 안면도자연휴양림 스카이워크. 소나무숲을 공중에서 가로지르며 바라다볼 수 있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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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휴양림, 산책하기 좋은 소나무 숲

안면도에서 대표적인 소나무 숲으로 안면도자연휴양림을 꼽는다. 이곳의 소나무 숲이 매우 울창하고 아름답다. 이곳에서 우리나라 상록수계의 지존이라고 할 수 있는 소나무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소나무들이 키가 크고 곧다. 어떤 용도로 쓰이건 귀한 대접을 받을 만하다. 이런 소나무들이 모여, 숲 전체가 높고 넓게 형성이 돼 있다.

숲이 우거지면 여행하기 힘들 수도 있는데 그렇지는 않다. 소나무 숲 안쪽으로 산책로가 상당히 편리한 구조로 조성돼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가벼운 걸음으로 걸어 다닐 수 있다. 산책로 중 일부는 '무장애나눔길'이다. 이 길은 휄체어로도 이동이 가능하다. 스카이워크나 나무데크 등도 대부분 휠체어나 유모차가 지나다닐 수 있게 만들었다.
 
안면도자연휴양림 산책로와 이정표.
 안면도자연휴양림 산책로와 이정표.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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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자연휴양림들과 마찬가지로 안면도자연휴양림에도 등산을 할 수 있는 산봉우리들이 있다. 그런데 그 높이가 결코 높지 않다. 모시조개봉, 바지락봉 등 조개 이름이 붙은 봉우리들이 대다수인데 그 높이가 50여 미터에서 90여 미터 가량 된다. 가장 높은 탕건봉이 92.7미터다. 봉우리들이 괜히 이름만 귀여운 게 아니다.

등산로라고는 하지만, 이 길들도 사실상 산책로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래도 등산로 안쪽으로 소나무 숲이 비교적 깊은 편이다. 길 위로 빛이 잘 들지 않는 곳도 있다. 한낮에도 길이 어둑어둑하다. 때로 산책로와 등산로가 겹치면서 길이 조금 복잡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정표만 잘 따라가면 아무 문제 없다.
 
안면도수목원.
 안면도수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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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도드라지게 붉은 꽃과 열매들

여기서 상록수 여행을 끝내면 조금 허전하다. 휴양림에서 소나무 숲을 여행한 뒤, 걸어서 안면도수목원으로 이동한다. 휴양림과 수목원이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이 수목원에서 휴양림 소나무 숲에서는 보지 못했던 다양한 상록수들을 만날 수 있다. 상록수들이 얼마나 많은지 수목원 내 대부분의 구역이 여전히 푸른색을 띠고 있다.

얼핏 보면, 겨울에 보는 수목원이라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사진만 놓고 보면 지난여름에 찍은 거라고 해도 믿을 수 있겠다 싶을 정도다. 동백나무들을 종류별로 모아놓은 '동백원'에서 애기동백나무가 붉은 꽃송이를 매달고 있는 광경을 본다. 처음엔 내 눈을 의심한다. 그 꽃이 벌써 봄이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한겨울에 제주도나 부산도 아니고, 안면도에서 붉은 꽃을 보게 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안면도수목원 애기동백.
 안면도수목원 애기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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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애기동백나무는 11월에서 1월 사이에 꽃을 피운다. 꽃을 피우는 시기가 동백나무보다 좀 더 빠르다. 그사이 얼마나 많은 꽃송이들이 피었다 졌는지 나무 아래로 떨어져 내린 붉은 꽃잎이 무수하다. 안면도수목원에서는 애기동백 말고도 호랑가시나무, 금테사철나무, 굴거리나무 등 다양한 상록수들을 볼 수 있다. 호랑가시나무 가지 끝에 구슬 모양의 붉은 열매가 잔뜩 매달려 있다. 그 붉은색이 또 애기동백꽃만큼이나 인상적이다.
 
안면도수목원 팽나무.
 안면도수목원 팽나무.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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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안면도수목원에 상록수만 있는 건 아니다. 가을에 잎이 떨어지는 낙엽활엽수들 중에 팽나무와 배롱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푸른 상록수들 사이에서 팽나무와 배롱나무의 하얗고 매끈한 몸통이 도드라져 보이는 것도 이곳 수목원에서 볼 수 있는 진풍경 중에 하나다. 안면도 팽나무를 제주도 팽나무와 비교해 보는 것도 재밌다. 안면도 팽나무는 어딘가 모르게 곱게 자란 티가 난다.

안면도는 원래 육지였다. 태안반도에 다람쥐 꼬리처럼 붙어 있었지만, 1600년대 초 삼남지역에서 거둬들이는 세곡을 편리하게 운반할 목적으로 현재 드르니항이 위치한 자리에 운하를 파면서 섬이 되었다. 안면도에 처음 다리가 놓인 것은 1970년이다. 섬 아닌 섬에서 자란 팽나무가 바닷바람이 거칠기로 유명한 제주도에서 자란 팽나무와 같을 수 없다.

안면도수목원에도 무장애나눔길이 조성돼 있다. 무장애나눔길과 평지에서는 장애인들도 편하게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상록수 숲을 여행하다 보니, 한겨울에도 생장을 멈추지 않는 나무들의 맑은 기상이 느껴진다. 그 기운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나눠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진한 소나무 향이 그리울 때, 그리고 사철 푸른 나무들의 힘찬 기운이 필요할 때 안면도로 가볼 것을 권한다. 
 
안면도수목원 풍경.
 안면도수목원 풍경.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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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안면도, #소나무, #상록수, #안면도수목원, #안면도자연휴양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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