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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해 책 너머의 세상을 봅니다.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입니다. [편집자말]
알란 쿠르디(Alan Kurdi). 2015년 9월 2일 아침, 터키 휴양지 해변에 3살짜리 시리아 아이의 싸늘한 시신이 발견되었다. 이 아이는 시리아 북부 코바니 출신인데 전쟁과 테러를 피해 가족과 함께 그리스 코스섬을 향하다 배가 뒤집혀 참변을 당했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와 <가디언>, 스페인 일간지 <엘문도>와 <엘파이스>, 이탈리아 일간지 <라레푸블리카>는 주검이 된 알란 쿠르디의 사진과 함께 기사를 보도했다. 

이후 유럽 난민 수용 정책 방향이 바뀌는 듯 보였지만 큰 변화를 가져오진 못했다. 스페인 해상 구조 비정부 기구 프로악티브 오픈암스(Proactiva Open Arms)에 따르면 지중해를 건너려다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난민 수가 2019년 한 해에만 1200명 안팎이다. 

국내도 크게 달라 보이진 않는다. 법무부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국내 난민 신청 건수는 2341건이고 그중 인정 건수는 72건으로 3%에 해당한다. 물론 탈북민을 난민협약과 관계없이 국내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난민 신청에 비해 인정률은 매우 낮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전쟁 난민에게 쉽게 감정이입한다. 하지만 왜 난민 인정 건수는 이리도 낮은 걸까? 

느낌의 공동체가 아닌 사고의 공동체로 거듭나야

알란 쿠르디의 사례와 난민 이야기는 책 <공감의 반경>에서 접했다. 책 <공감의 반경>은 과학철학자이자 진화학자인 장대익 작가가 썼다. 그는 기계공학도로 학부에 입학했지만, 대학원 이후로는 진화학과 생물철학, 진화심리학 등을 공부했다. 책에는 오랫동안 과학을 인문학을 넘나들며 쌓아온 저자의 내공이 잘 드러난다.  
 
책 <공감의 반경>
 책 <공감의 반경>
ⓒ 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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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책 <공감의 반경>에서 난민을 대하는 감정과 정책 간에 모순이 발생되는 이유를 정서적 공감과 인지적 공감의 차이로 설명한다. 정서적 공감은 특정 상황을 마주할 때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공감이라 할 수 있고, 인지적 공감은 타인의 마음 상태를 잘 이해하고 도움을 주려는 마음을 갖는 능력이다.

정서적 공감은 감정의 전염을 일으켜 강력하게 전파될 수 있지만 단기간에 소멸되는 감정이입에 그칠 수 있다. 반면 인지적 공감은 고차원의 인지 작용으로 인지 부하가 많이 걸리기 때문에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분명한 건 실질적으로 행위와 정책에 영향을 준다.

전쟁 난민의 주검 사진이 세계인의 정서적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실제 난민의 삶에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는데, 이는 정서적 공감의 한계다. 하지만 인지적 공감은 세계 난민법을 바꿀 수 있게 된다. 사고의 변화가 현 사회 문제점을 꾸준히 지적하고 실제 난민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저자는 국내 호주제 폐지 사례도 인지적 공감이 잘 작용한 사례로 제시한다.
 
정서적 공감이 따뜻한 감정의 힘이라면 인지적 공감은 따뜻한 사고의 힘이다. 아무리 감정이 불꽃처럼 일어나도 차분히 사고하지 않으면 상대의 상태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다. ... 인지적 공감은 원심력을 강화해 공감의 반경을 넓힌다. - p.160

결론적으로 느낌의 공동체가 아니라 사고의 공동체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서적 공감보다는 인지적 공감을 활성화하여 공감의 반경을 넓히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로 공감 가는 주장이다. 

공감의 구심력보다는 원심력이, 깊이보다는 넓이가 필요하다

김겨울 작가는 책 <공감의 반경>을 가리켜 "공감의 개념을 명쾌하게 설명한 교과서 같은 책"이라고 추천사를 남겼다. 저자는 막연하게 "공감해야 됩니다, 여러분!"이라고 외치지 않는다.

공감의 개념을 설명하고 어떤 공감을 하는지에 따라 갈등, 혐오, 분열을 방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공감 부족이 아니라 공감 '과잉'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공감의 구심력보다는 '원심력'이, 깊이보다는 '넓이'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즉 공감의 구심력보다는 원심력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깊이가 아니라 넓이다. - p.14

공감의 구심력이 아니라 원심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안쪽으로 공감하기보다는 바깥쪽으로 공감해야 한다. 저자는 이를 '선택적 공감'이라는 개념을 통해 위험성을 지적한다. 선택적 공감을 깊이 하게 되면 공감의 구심력이 작동하여 공감 과잉 문제가 발생한다. 선택적 공감을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공감은 마일리지 같은 것이어서 누군가에게 쓰면 다른 이들에게는 줄 수 없다. 내집단에게 강하게 공감했다면 그만큼 외집단에 공감할 여유가 소멸하는 것이다. - p.54

선택적 공감은 동시대의 다양한 사례에 적용하여 생각해 봄직하다. 최근 국내 사례를 예로 들어 보자. 지난해부터 전장연(전국장애인철폐연대) 지하철 선전전은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이를 향한 반응은 양극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전장연 선전전을 반대하는 이들은 출근길에 겪는 불편함 때문에 반대한다. 이는 해당 시공간에 한정하여 공감한다고 볼 수 있겠다. 지하철 좌석에 앉아 출근하는 이들에게만 공감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출근길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내집단'이 되고 장애인은 '외집단'이 된다.

투쟁하는 외집단인 장애인에게 공감할 여유가 없다. 선전전이 벌어지는 해당 시공간을 벗어나, 장애인의 24시간 삶과 이 사회의 구조는 직시하지 않는다. 당장의 출근길에만 이성과 감정을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내집단에게 공감이 깊어지는 것이다.
 
신의 이름으로 거룩한 학살을 자행했던 십자군이나 이슬람 테러 조직의 문제는 공감 결핍이 아니라 자기 집단에 대한 공감 과잉이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일제 강점, 제주 4.3 사건 등의 한국 근현대사도 내집단에 대한 과잉 공감이 만들어낸 질곡의 역사로 이해할 수 있다. - p.55

전장연 선전전뿐일까? 선택적 공감으로 인한 갈등, 분열, 혐오는 최근의 일만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반복되었고 과거에는 갈등, 분열, 혐오를 넘어 폭력이 자행되었다. 십자군, 일제 강점, 제주 4.3 사건은 선택적 공감으로 인한 혐오와 폭력의 역사이며 앞서 난민 사례도 선택적 공감으로 인해 벌어지는 갈등이다.

강자에게 이입하는 선택적 공감은 위험하다

하지만 반대편 입장이라면 단순히 내집단, 외집단이 바뀌는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어느 쪽이든 선택적 공감이라 칭할 수 있는 것 아닌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책 <공감의 반경>에서는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 것 같아 보인다. 

어떤 경우에 선택적 공감은 위험한가?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일상에 적용하여 공감할 집단을 선택하는 문제는 쉽지 않다. 필자도 헷갈릴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는 책을 넘어 필자의 생각을 덧대본다. 예를 들어 역학 관계상 강자와 약자가 있다고 해보자. 약자보다는 강자에게 이입하는 선택적 공감이 위험하다고 전제되어 있지 않을까? 공감의 반경을 넓혀야 한다는 건, 다수자들의 입장에 공감의 깊이를 더하는 게 아니라 소수자의 입장으로 공감의 넓이를 넓히라는 의미가 아닐까? 

새해가 되면 새로운 목표를 세운다. 다이어트, 운동, 독서, 자기 계발, 재테크 등이 자주 소환되는 목표 아닐까. 필자도 새해를 어떻게 살지 고민해 본다. 가장 먼저 '공감을 잘하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했다. 내가 속한 내집단이 아닌 외집단으로 공감의 반경을 넓히겠다고, 느낌보다는 사유함으로 공감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해 봤다.

새해의 책으로 <공감의 반경>을 추천한다. 세상이 시끄럽다. 가히 분열의 시대라고 부를 만하다. 우리는 어디에, 어떻게 공감해야 하는가. 이 책이 방향을 안내해 주리라 믿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 계정(@rulerstic)에도 실립니다.


공감의 반경 - 느낌의 공동체에서 사고의 공동체로

장대익 (지은이), 바다출판사(2022)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입니다.
태그:#공감의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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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에게 덜 폐 끼치는 동물이 되고자 합니다. 그 마음으로 세상을 읽고 보고 느낀 것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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