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02 13:45최종 업데이트 23.02.02 13:45
  • 본문듣기

김광동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이 1일 전북 정읍시 소성면 두암교회를 방문해 기도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조사를 위해 1일 전북 정읍시 두암교회를 방문했다. 극우적 역사관으로 논란을 빚은 김광동 신임 위원장이 이곳을 찾은 것. 

이날 두암교회에는 여타 교회에서 발생한 학살 피해 유족들도 방문했다. 전북 김제시 만경교회, 전남 영광군 야월교회·법성교회, 전남 신안군 임자진리교회·증도교회, 충남 서천군 한성교회 학살 사건 유족들이 함께했다. 보도에 따르면, 김광동 위원장은 유족들 앞에서 기독교인 학살의 역사적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면밀한 조사를 거쳐 진실을 밝히고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김광동 위원장은 제주 4·3을 폭동으로 규정하거나 5·18 북한 개입설을 옹호하는 등의 퇴행적 역사 인식을 드러냈다. 또 한국 근대화를 일제 식민지배의 산물로 포장했다. 이 때문에 임명 전부터 논란이 컸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작년 12월 9일 임명을 관철시켰다.

그런 김광동 위원장이 취임 후 첫 현장 행보로 호남 지역 기독교회를 찾아가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문제를 부각시켰다. 이 행보가 우연이 아니라는 점은 그의 16년 전 기고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07년 11월호 월간 <북한>에 수록된 '6·25 전쟁 중 북한군과 좌익의 양민학살'에서 김 위원장은 "군인·경찰 등 공무원을 제외한다면 6·25전쟁 중 북한군과 좌익에 의한 학살의 또 다른 최대 피해자는 기독교도와 호남 지역이다"라고 한 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번영체제"를 위해 이 문제를 규명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가 논문에서 기독교인 학살 현장으로 거명한 지역은 전남 신안군 임자도, 전남 영광군, 충남 논산시다. 1일 정읍에 가서 만난 유족들의 지역적 범위와 대체로 일치한다. 16년 전 자신의 논문에서 다룬 사건을 위원장 취임 후 첫 현장 행보에 맞춰 추진했으니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다. 

개인 인권보다 국가 이익 우선시하는 역사관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은 미군이나 국군뿐 아니라 인민군에 의해서도 일어났으므로, 북한에 의한 전쟁범죄 역시 규명되어야 한다. 하지만 무엇을 규명하느냐도 중요하지만 '누가' 규명하느냐도 중요하다. 극우적 역사관을 가진 김광동 위원장이 공정한 조사를 이끌 수 있을지, 그 때문에 여타의 민간인 학살 문제가 영향을 받지 않을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민간인 학살은 좌우 이념대립이나 진보·보수 대립과도 맞닿는 면이 있지만, 개인 대 국가권력의 역학 구도도 작용한다. 힘없는 개인들이 국가권력의 압제로 희생되기 쉬우며 그런 희생이 '합법적 처벌'이나 '대를 위한 소의 희생' 논리로 정당화될 위험성을 담고 있다.

공권력 남용으로 인한 이 같은 민간인 학살이나 피해는 어느 정권에 의해서도 일어날 수 있으므로, 조사의 책임자는 인권 의식이 투철해야 할 뿐 아니라 국가권력에 대해서도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어야 한다.

김광동 위원장에게 그런 기대를 품기 힘들다는 점은 개인 인권보다 국가 이익을 우선시하는 그의 역사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14년 4월호 <한국논단>에 기고한 '제주 4·3폭동은 반한·반미·반유엔·친공투쟁'이라는 글에도 그런 인식이 엿보인다.

김 위원장은 기고문에서 제주 4·3의 책임을 미군이나 남한 군경 및 서북청년단보다는 제주도민 유격대의 탓으로 돌렸다. 제주도민 학살에서 현지인들의 책임이 훨씬 컸다는 엉뚱한 주장을 펼쳤다.

그러면서 남한 군경에 의한 학살은 부득이한 상황의 산물로 처리했다. "물론 군경 토벌대가 계엄령을 과잉 적용한 부분도 없지는 않았다", "적법한 공권력 행사 넘어선 부분도 있었던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인간의 생명과 권익을 중요시한다면, 이런 식으로 국가범죄를 비호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역사관으로 민간인 학살을 올바로 규명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가 민간인 학살을 공정하게 다루기 힘들다는 점은 2003년 저서인 <반미운동이 한국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작년 12월 보도에서도 알 수 있다. 그는 이 책에서 대표적인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인 노근리 사건과 관련해 "집단학살이 아님에도 반미화 때문에 사회 전체가 흥분했다", "미국이 양민을 살해할 목적을 가지고 조직적으로 자행한 것처럼 집단학살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사회 전체가 흥분했다"라고 서술했다.

미군에 의한 학살은 학살로 규정하기를 꺼리는 그의 태도는 위의 월간 <북한> 기고문에서도 드러난다. 이 글에서 그는 미군과 국군에 의한 학살을 문제 삼는 사람들을 '작전'하는 사람들로 매도했다. "6·25전쟁을 정치 의도에 맞춰 '왜곡된 전쟁'으로 만드는 작업의 하나가 한국군과 미군에 의한 민간인 희생과 피해를 부각, 과장, 확산시키는 '작전'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공정하고 균형 있는 조사 기대하기 힘들어
 

지난 1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김광동 진실화해위원회 신임 위원장의 민주화 운동 왜곡 규탄 기자회견에서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등 8개 단체는 김광동 위원장의 민주화운동 왜곡 발언을 규탄하고 즉각적인 사퇴를 요구했다. ⓒ 연합뉴스


민간인 학살에 대한 그의 시각이 균형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점은 한국전쟁 당시의 대전 형무소 사건에 대한 서술에서도 알 수 있다. 대전 골령골 사건으로도 불리는 이 학살은 처음에는 국군에 의해, 다음에는 인민군에 의해 일어났다. 월간 <북한>에서 그는 "대전형무소에서 일어난 학살은 북한군이 저지른 학살 사건 가운데 가장 피해 규모가 큰 것"이라며 인민군에 의한 학살만 언급했다.

기고문에서 그는 인민군의 학살 대상과 관련해 "북한군 및 좌익에 의한 학살 성격을 살펴보면, 우선 건국·민족 세력에 대한 조직적 학살이다"라고 말했다. 그다음 문장에서는 자신이 말하는 '건국·민족세력'의 실체를 북한 노동당의 입을 빌려 공개한다.

그는 "당시 조선노동당이 규정한 처단의 대상은 민족반역자, 친미 및 친일 분자로 되어 있다"라고 말한다. 북한군이 '건국·민족세력'인 친일파와 친미파를 숙청하고자 민간인 학살을 벌였다는 엉뚱한 주장을 폈던 것이다. 그런 뒤 "북한군·좌파에 의한 학살의 또 다른 대상 중 하나는 기독교 세력이었다"라고 말하면서 위에 언급된 신안군·영광군·논산시 사례를 소개했다.

이 대목에서 그가 공정하게 서술하지 않은 친일파도 있다. "(1950년) 9월부터 북한군에 의하여 수많은 교역자에 대한 학살이 시작되었고, 유능한 신학자 남궁혁·송창근·김영주 목사 등을 비롯한 1백여 명의 목사가 북으로 납치되어 갔거나 학살당했다"라는 문장에 나오는 송창근에 대한 언급이 그런 사례에 속한다.

송창근이 얼마나 황당한 친일파인가는 <친일인명사전> 제2권 송창근 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일제의 전쟁착취 기관인 국민총력조선연맹 조선예수교장로회 경북노회연맹 이사장이었던 그의 친일행위에 관해 이 사전은 "(1942년) 5월 7일 연맹 이사장으로서 공문을 보내 '교회의 종과 철제 종각, 기타 철물을 일제히 관계 관청에 헌납하고 보고서를 보낼 것을 관할 각 교회 대표자에게 통보했다"라고 설명한다.

교회 종을 떼어내 일왕(천황)을 위한 침략전쟁에 바칠 정도면 일왕에 대한 그의 믿음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는 같은 해 10월 장로교 총회 때는 '기독교인을 황국신민으로 훈련시키겠다'는 결의도 표명했다.

송창근이 납북 피해자일지라도, 한국 현대사에 관한 글을 쓸 때는 그가 친일 목사였다는 점도 함께 밝혀줄 필요가 있다. 북한군에 의한 학살을 부각시키는 것만 중시한 나머지, 역사 서술의 균형을 유지할 필요성에 덜 주의할 경우에는 납북 피해자인 점만 강조하고 친일 가해자인 점은 드러내지 않게 될 수도 있다.

김광동 위원장이 북한군에 의한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을 공정하고 균형 있게 조사하리라고 기대하기 힘들어 보인다. 그가 이 문제를 주도하게 되면 미군과 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제대로 규명되지 못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북한군에 의한 학살 역시 올바로 규명되지 못할 수 있다. 그의 첫 현장 행보는 그런 위험성을 내포한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