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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4년전인 2019년, 몽골을 여행하던 중 타미르 평원에서 몽골과 중앙아시아에 2기 밖에 없다는 천마가 그려진 사슴돌 탁본을 떴다. 혼자서 밥도 먹지 않고  밤10시까지 탁본을 떴지만 암각화에 이슬이 내려 선명한 탁본을 얻지 못했다. 내 속에 숨어있던 열정을 확인한 순간이기도 했다.
 4년전인 2019년, 몽골을 여행하던 중 타미르 평원에서 몽골과 중앙아시아에 2기 밖에 없다는 천마가 그려진 사슴돌 탁본을 떴다. 혼자서 밥도 먹지 않고 밤10시까지 탁본을 떴지만 암각화에 이슬이 내려 선명한 탁본을 얻지 못했다. 내 속에 숨어있던 열정을 확인한 순간이기도 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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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대보름 하루 전 내 나이가 70세가 된다. 어릴 적 시골 마을에는 70세를 넘은 노인들이 많지 않았다. 1960년대 평균수명이 52~53세였기 때문이다. 당시 60세가 된 노인들에게는 장수했다며 가족이나 동리에서 환갑잔치를 해줬었다. 그런데 요즘 환갑잔치한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2018년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83세가 됐다고 하니 말할 필요도 없다.

내 어린 시절인 1960년대에 70을 넘긴 노인들은 흰 머리에 상투를 틀고 뒷짐 진 채 "에헴!" 소리를 내며 동리를 지나다녔다. 양반댁 노인들은 커다란 갓을 쓰고 하얀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장죽을 물고 담배를 피우고 다녔다. 노인이 지나가면 어린이와 중장년들은 공손하게 인사를 하며 길옆으로 비켜서는 게 상례이기도 했다.

그런데 세상이 변했다. 변해도 너무나 변했다. 요즈음 언론 보도를 보면 "50~60대에서는~"이라며 60대까지는 언급하지만 70을 넘기면 아예 퇴물 취급하는 것 같다. 거의 모든 방송이 중장년 대상의 방송만 한다. 그래도 공영방송이라는 KBS가 <황금연못>이란 프로를 운영하며 나이 든 사람들의 애환과 추억거리를 소환하며 노인들의 설움을 달래주지만.
 
타미르강 유역 언덕에 있는 천마가 그려진 사슴돌 모습. 중앙아시아와 몽골에 2기 밖에 없는 귀한 사슴돌이다. 인근에 적힌 안내문에는 "말이 그려져 있지만 사슴돌로 간주한다"고 적혀 있었다.
 타미르강 유역 언덕에 있는 천마가 그려진 사슴돌 모습. 중앙아시아와 몽골에 2기 밖에 없는 귀한 사슴돌이다. 인근에 적힌 안내문에는 "말이 그려져 있지만 사슴돌로 간주한다"고 적혀 있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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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나만 나이 든 게 아니다. 올해 1월,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전체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18%에 이르렀다.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를 넘었을 때 초고령사회라 부르고 우리 사회의 고령화 속도가 빨라져 2026년에는 우리도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요즈음 70대는 어제의 70대 노인이 아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60대라며 위안을 삼고 7이라는 숫자를 넘기지 않겠다며 안간힘(?) 썼지만 시간이라는 수레바퀴가 사정없이 돌아갔다. 70세는 죽음이 가까워진 나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람이 태어나 죽는다는 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인간 조건 중에서 자신에게 고통스러운 것들은 피하려는 속성이 있다. 그 중 '죽음'이라는 것을 유난히도 멀리한다. 미국 사람들은 '사망한(die)'이라는 단어 대신에 '가버린(pass away)' 사람이라고 말한다.
  
바깥 날씨가 엄청 추워 밖에 나갈 엄두도 못냈던 겨울날씨에도 매화꽃이 피었다. 엄혹한 인생사에도 봄이 다시 오듯이.
 바깥 날씨가 엄청 추워 밖에 나갈 엄두도 못냈던 겨울날씨에도 매화꽃이 피었다. 엄혹한 인생사에도 봄이 다시 오듯이.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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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전화 속에는 지우지 못한 번호들이 있다. 아니! 지울 수 없는 번호다. 고등학교 시절 가장 친한 친구끼리 조직한 친목계원 중 한 친구는 병에 걸려 병원에서 의식이 없었다. 친구들이 모여 "잘 가라!"고 하자 눈물을 주르르 흐르며 세상을 떠났다. 50년 동안 만나는 한의사 친구가 몇 달 전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친구 부인한테서 연락이 왔다.

"남편이 암에 걸려 투병 중인데 친구들은 절대 병문안 오지 말래요."

결국 친구가 세상 떠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보냈다. 70쯤 되면 세상과 이별하는 사람들을 여러 명 보았기 때문에 어떠한 죽음이라도 수용할 수 있는 나이인데... 이해는 하지만 정말 야속했다. 몇 년 전에는 아끼던 제자가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변호사였던 제자는 상당한 액수의 송사에 휘말려 세상을 떠나 남아있는 사람들을 가슴 아프게 했다.

그러나 요즈음 70대 노인은 어제의 70대 노인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나이 곱하기 0.7'이라는 나이 계산법이 있다. 쾌적한 의식주 생활과 의료시스템 때문에 옛날보다 젊게 살아가는 세태를 반영해서 생긴 말이다. 일본식 나이 계산대로라면 내 나이는 49세다.
  
30년 이상 테니스 친 동호인들과 즐겁게 테니스 치며 사는 삶은 나를 젊게 하는 비결이기도 하다.
 30년 이상 테니스 친 동호인들과 즐겁게 테니스 치며 사는 삶은 나를 젊게 하는 비결이기도 하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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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 머리도 많이 빠졌고 주름살도 늘었다. 하지만 매주 두세 번 테니스 치고 글을 쓰며 즐겁게 산다. 힘에 부치는 일이 아니라면 늙었기 때문에 못 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동호인과 테니스를 치며 육체적 젊음을 지키고 글 쓰는 동안 정신적 젊음도 유지한다.

'1만 시간의 법칙'은, 어느 분야든 위대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1만 시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경험칙이다. 하루에 3시간씩 10년이면 1만 시간이 되는데 1만 시간 동안 한 가지 일에 노력하면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된다는 의미다. 나는 테니스와 글쓰기에서 1만 시간의 법칙을 느끼며 젊게 산다.

창작하느라 권태로움 못 느껴

내 나이를 잊게 만드는 게 또 하나가 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다. 고등학교 시절 중앙일간지를 배달하는 동안 멋진 기사를 보며 부러워했지만 나한테는 글 쓰는 재주가 없다며 기자가 되는 건 한 번도 꿈꿔본 적 없었다. 그러던 내가 시민기자가 되어 17년 동안 1500여 개의 기사를 썼다. 살다 보니 인생은 짜인 각본대로 가는 게 아니라 우연이 필연이 되기도 한다.

내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된 건 정말 뜻하지 않은 사건 때문이다. 필자가 근무하던 학교는 여수국가산단 출연회사들이 세운 사립명문학교다. 2005년 교직원들의 평가에 1순위로 선정됐던 결과를 이사장이 뒤집어 교사들이 집단 반발했다.

이사장은 나와 함께 반발한 교사들을 파면하겠다고 협박했다. 군 제대 후 용접공장에서 1년간 번 돈으로 대학교에 입학하고 방학 때면 타일공 보조로 일했고 학교에서도 성실하게 근무했던 나는 극도의 분노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분개한 나는 "정의로운 사회는 무엇인가?"를 곱씹으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됐다.
  
삭풍이 몰아치는 눈덮힌 겨울산에 우뚝서있는 노송이 없다면 얼마나 황량할까? 노송은 작은 소나무들의 선대 나무이고 추운 겨울을 이겨내는 지혜를 제공하기도 한다.
 삭풍이 몰아치는 눈덮힌 겨울산에 우뚝서있는 노송이 없다면 얼마나 황량할까? 노송은 작은 소나무들의 선대 나무이고 추운 겨울을 이겨내는 지혜를 제공하기도 한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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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지인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되어 보라고 권유해 헌법 요약본을 5번 읽고 글쓰기와 기사 쓰기 책을 30여 권 읽으며 투고를 계속했다. 헌법 공부는 법에 문외한이었던 필자의 눈을 뜨게 했고 훌륭한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새로운 세상을 배웠다. 인터뷰한 내용을 글로 쓰고 10여 번 교정하며 대상자의 삶이 내 속으로 들어왔다.

글을 쓰기 위해 수많은 자료를 찾아 정리한 글들이 내재화되며 내 안목이 확장되고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게 되며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자부심은 나를 치유하기 시작했다. 기사를 쓰며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커다란 아픔을 치유하고 화병도 낫게 되어 요즈음은 하루하루가 즐겁다. 가끔 힘들 때 <오마이뉴스> 편집국에서 "오문수 기자님의 기사가 방금 채택되었습니다"라는 카톡이 오면 피로가 싹 날아가 버린다.

기자는 꿈꾼 적도 없었는데 책도 펴내고 즐겁게 살아

기사 속 글을 모아 <꿈꾼 적 없던 길이>라는 책도 냈고, 다음 달에는 몽골 관련 책을 출판할 예정이다. 글을 쓰며 5대양 6대주도 돌아보았으니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 내 공부가 미치지 못하는 경제나 기술 의학 분야가 아니면 어떠한 글도 쓸 수 있다는 자기효능감으로 살기도 한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준 선물 중 하나는 55년쯤 헤어져 살던 옛 친구가 내 기사를 보고 전화를 한 것이다. 부천에서 소아과를 운영하는 친구는 내 이름과 고향 이야기며 살아온 이야기를 읽고 필자일 거로 추측해 전화를 줬다.

지금은 내 기사를 꼼꼼히 읽어주는 최고의 독자이자 인생 상담 벗이다. 가끔은 '쪽지함'을 통해 제자들이 "기사 잘 읽었다"며 메시지를 보내오기도 한다. '뉴스'는 영어 '새로운(new)'의 복수이다. 거의 매일 뉴스를 읽고 틈나면 '새로운 것들'인 뉴스를 접하며 사느라 권태를 느껴본 적이 없다.
  
2년 전인 2021년 12월, 오마이뉴스에 16년 동안 쓴 1300여 편의 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을 모아 <꿈꾼적 없던 길이> 시리즈 4권을 출판했다. 일주일간 독도에 머물며 동도와 서도를 탐사하는 동안 낙석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안전모를 썼다.
 2년 전인 2021년 12월, 오마이뉴스에 16년 동안 쓴 1300여 편의 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을 모아 <꿈꾼적 없던 길이> 시리즈 4권을 출판했다. 일주일간 독도에 머물며 동도와 서도를 탐사하는 동안 낙석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안전모를 썼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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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무엇을 소재로 해서 글을 쓰느냐?"고 질문한다. 주위를 둘러보시라. 주위에는 쓸 거리가 널려있다. 나이 든 노인들을 만나 살아온 인생사에 대해 물으면 대부분이 "내가 살았던 이야기를 글로 쓰면 소설책 한 권이 될 거여!"라고 한다.

나는 틈나면 책을 읽는다. 공부 안 하면 30대에도 늙은이이고 공부하면 70대에도 젊은이라는 생각 때문에. 책 속에 쓰인 경구를 읽고 밑줄을 치거나 수첩에 기록한다. 수첩에 기록된 좋은 문구는 내 글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내가 쓴 글은 내 삶의 아카이브 즉, 저장고이다.

죽는 순간에는 모든 것을 버리고 간다. 인생의 처음과 마지막 순간은 선택할 수 없지만 살아있는 한 내 후손들에게 내 글을 남기고 싶어 지금도 글을 쓴다. 내가 죽을 때까지 쓸 기사가 500개가 될지 1000개가 될지 모르지만 나를 젊게 하는 글쓰기는 계속할 예정이다.

한 인간이 인생의 마지막 15년 또는 20년 동안 인수를 거부당한 불량품(?)으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은 현대문명의 실패를 나타낸다. 나이 든 사람들의 경험에서 우러난 삶의 지혜는 측량하기 어렵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노년 : 나이듦의 의미와 그 위대함> 책 속에서 이렇게 말했다.
 
눈덮힌 철길에 뿌연 안개까지 쌓인 철길 모습이다. 두줄로 나뉘어 접점이 없을 것같은 철길도 언젠가는 종점에 이르러 숨고르기를 한다. 뿌연 안개도 걷힐 날이 온다.
 눈덮힌 철길에 뿌연 안개까지 쌓인 철길 모습이다. 두줄로 나뉘어 접점이 없을 것같은 철길도 언젠가는 종점에 이르러 숨고르기를 한다. 뿌연 안개도 걷힐 날이 온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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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이 우리의 이전 삶의 하찮고 우스꽝스러운 모방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한 해결책은 단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 의미를 주는 목표들을 계속하여 추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이든 집단이든 대의명분이든 사회적 혹은 정치적인 일이든 지적, 창조적 일이든 그 무엇에 헌신하는 길밖에 없다."
 
나이 든 분들이시여 글쓰기에 도전하시라. '내일부터 시작하지!'라고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시작하시라. 현재가 가장 중요한 시기임을 말하는 톨스토이의 말이다.
 
"과거를 후회하거나 아쉬워하고 미래를 걱정하거나 불안해하면서 정작 현재의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시간, 그리고 우리가 진실로 행복해질 수 있는 시간, 우리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시간은 오로지 지금 밖에 없습니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뉴스에도 송고합니다


태그:#70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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