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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창공원 삼의사묘
 효창공원 삼의사묘
ⓒ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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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순국선열의 묘가 있는 서울 효창공원을 찾았다. 달포 전 관람한 영화 <영웅>의 안중근 의사의 잔상에 이끌려 들른 것이다. 10년 전 효창운동장에서 열린 '이북도민 체육대회' 행사를 마치고 이곳을 들렀으니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운동장 옆 효창공원 입구 모습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공원 내부는 그새 광복 70주년 기념광장과 조형물이 조성되고 곳곳에 나라꽃 무궁화 식재공간을 마련해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탁자와 의자 등 편의시설도 많아 독립운동가 묘역의 품격이 한층 높아 보였다. 
 
태극조형물
 태극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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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들어선 시설 중에 광복 70주년 기념 '태극조형물'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10개의 등록문화재 태극기를 통해 독립운동가들과 선조들의 태극기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시설이다. 1919년 3·1운동 당시 태극기를 대량 인쇄하기 위해 만든 4괘와 태극문양을 새긴 '태극기목판'은 마치 현장의 함성이 들리는 듯 선명하다.      
 
태극기목판
 태극기목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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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백범 김구 주석이 중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신부 매우사에게 건넨 태극기에는 미국동포들의 광복군 지원을 긴밀히 부탁하는 내용과 서명이 절절이 담겨 있다. 이른바 밀서 형태의 태극기라 할 수 있다.      
 
김구 주석이 미국으로 가는 신부에게 건넨 밀서형식의 태극기
 김구 주석이 미국으로 가는 신부에게 건넨 밀서형식의 태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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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중 부대원들의 결의를 새긴 태극기도 볼 수 있다. '유관종 부대원 태극기'는 1950년 10월 유관종 소위가 호남지구 진격작전 당시 긴박한 상황과 전투에 임하는 부대원들의 생생한 필체를 담고 있다. 이처럼 태극기는 우리 곁에 남아 역사적 사건들과 궤를 같이하며 현장을 증거하고 있다.      
 
유관종 소위 대원 태극기
 유관종 소위 대원 태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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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창공원에서 핵심적인 묘역은 역시 정상에 자리한 삼의사 묘이다. 이봉창(1901-1932), 윤봉길(1908-1932), 백정기(1896-1934) 의사 묘와 안중근 의사 가묘가 있는 곳이다. 여기서 유독 시선이 오래 머무는 곳은 안중근의 의사의 빈 무덤(가묘)이다. 다른 의사 묘비와 달리 검은색 안 의사 묘비가 도드라져있다.     

나는 안 의사 묘 앞에서 "정부와 우리 후손들이 아직껏 유해를 찾지 못한 것에 사죄하고 유해발굴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며, 이와 별도로 세월이 갈수록 의사를 추모하는 마음과 열기는 다양한 장르에서 뜨겁게 되살아나고 있다"는 묵상으로 추모했다.

넙죽 절하는 세 명의 학생들

참배하고 뒤로 물러서는데 세 명의 아이들이 옆에 있었다. 묘를 바라보더니 넙죽 엎드리며 재배를 하는 장면에 내심 깜짝 놀랐다. 적어도 내 눈에는 흔치 않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애국선열을 대하는 자세나 태도가 너무나 자연스럽고 진지해 보였다.     

내 발길을 잡은 어린 아이들이 새삼 궁금했다. 서울 중랑구 원묵초등학교에 다니는 맏이 5학년 김주하군, 4학년 동생, 1학년 막내 등 삼 형제가 그 주인공들이다. 김 군은 "여기 잠들어 계신 존경하는 이분들 덕분에 우리나라가 존재한다"며 제법 어른다운 말을 했다.      
 
안중근 의사 가묘
 안중근 의사 가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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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 곳에 왔는지 묻는 내가 어색할 정도로 김군의 대답은 내 뒤통수를 때리는 것 같았다. 우리 어린아이들의 애국심을 의심하고 있던 터라 김군의 대견하고 의젓한 행동은 감히 예상하지 못했다.       

김군은 한동안 잊어버린 애국심을 일깨워 주었다. 자녀들과의 대화를 유심히 지켜보던 김군의 어머니는 "공원 근처가 시집이기에 가끔 오는데 올 때마다 아이들이 이곳에 들러 참배하고 간다"고 귀띔했다. 김군 아버지도 자녀들의 역사관을 늘 강조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군의 가정처럼 뜨거운 애국심을 가진 가정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날 삼의사 묘역을 여러 사람이 찾았지만 대부분 묘비를 확인하고 스치는 정도였다. 삼 형제의 참배는 묘역 기단에 아로새긴 유방백세(遺芳百世) 의미대로 순국한 의사들의 영원한 발자취를 대변하고 있었다.

삼의사 묘를 참배하면서 그 명칭을 '사의사 묘'로 바꾸면 어떨까 감히 제안한다. 안 의사 묘지와 비석을 설치하고도 삼의사 묘라 고집하는 것은 어딘가 어색하고 고인에 대한 예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비록 가묘라 하더라도 안 의사의 숭고한 유지가 이미 오랫동안 이곳에 있어 왔기 때문이다.

안 의사 순국 113년, 지금까지 안 의사 유해발굴 과정을 두루 감안할 때 삼의사 묘역 명칭 변경에 대한 관계기관의 적극적인 검토를 기대한다.       
 
삼의사묘 기단에 새겨진 유방백세
 삼의사묘 기단에 새겨진 유방백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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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공원 내 또 다른 묘역인 '의열사'를 찾았다. 이 곳은 임정요인(이동령, 김구, 조성환, 차리석)과 삼의사 포함 7인 독립운동가의 영정과 위패를 모시는 사당이다. 그런데 안내 표지와는 달리 훼손을 이유로 개방하지 않아 유감스럽게도 참배하지 못했다.

사족이지만 의열사를 참배하고 싶은 사람은 별도 신청하라는 공원 측 입장은 관람객 편의를 무시한 일방적인 주장이라 생각한다. 이곳도 다른 묘역시설과 마찬가지로 일반에 상시 개방하는 것이 마땅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게재할 계획입니다.


태그:#서울효창공원, #영웅, #태극기, #안중근의사, #태극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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