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를 연출한 형슬우 감독.

영화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를 연출한 형슬우 감독. ⓒ (주)26컴퍼니


 
영화 시작부터 삐걱대는 남녀 주인공이 결국 헤어진다. 그리고 서로 다른 인연을 만나기 시작한다. 다짜고짜 이별 상황부터 들이대는 영화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는 어쩌면 만남보다 이별이 어려운 청춘들에게 당장 필요한 처방전 같은 게 아닐까. 그간 여러 단편 영화를 만들다가 첫 장편 영화 개봉을 앞둔 형슬우 감독을 3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이 영화의 백미는 두 남녀가 헤어졌다가 잠시 만나는 과정에 있다. 빌려간 태블릿 PC를 돌려달라는 전 여자친구 아영(정은채) 호출에 준호(이동휘)는 목에 담이 걸려있음에도 꾸역꾸역 현 여자친구를 집에 두고 나간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매번 고배를 마신 뒤 친구네 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준호의 모습이 찌질해 보이면서도 동시에 연민이 가는 지점이다. 형슬우 감독은 전 연인과의 우연한 만남 그 자체가 영화의 출발점이었다고 말했다.
 
현실 연애와 현실 이별
 
"제가 우연히 아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지나가다 홍상수 감독님도 우연히 봤고, 전 여자친구, 썸 타던 사람을 만난 적도 있다. 겉으로는 쿨하게 어! 안녕? 하지만 속으론 그 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싶었지. 그런 경험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여러 경험담들을 본격적으로 다뤄보고 싶었다."

단순히 구남친, 구여친의 재회 이야기는 아니다. 형슬우 감독의 전작인 단편 <병구> <증발> <바겐세일 킬러> 등을 보면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등장인물의 관계성을 꽤 깊이 파고든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소소한 일화를 특유의 유머로 버무린 형 감독의 개성이 지난 단편과 이번 영화에도 잘 녹아있다.
 
"살다 보면 친했다가도 더상 보지 않는 관계가 생긴다. 저도 누군가에게 실수하고, 거절당하기도 한다. 그런 게 쌓여가니까 좀 슬프기도 하다. 상대의 실수를 보면 난 저렇게 안 해야지 싶다가 누군가에겐 제가 그런 실수를 하기도 하는 일의 반복이었다. 사실 이 영화로 상대방 단점까지 사랑하라는 걸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그건 좀 가혹하다. 다만 단점까지 사랑은 아니더라도 보호해주고, 포용하는 그런 게 필요하지 않나 싶다. 나같아도 영화 속 (백수) 준호가 얄밉겠지만, 눈빛으로 상처주고, 친구들 앞에서 무시당할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영 입장에서도 준호가 자꾸 예민하다고 하는 그 말이 싫었을 것이다. 동반잔데 남자 친구에게 전혀 (정서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거니까."
 
 영화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 관련 이미지.

영화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 관련 이미지. ⓒ (주)26컴퍼니


  
슬퍼야 하는 상황에 엮인 웃긴 상황. 형슬우 감독의 인장과도 같은 이 아이러니는 본인이 의식하고 추구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인생이 그런 거 아닐까"라면서 감독은 "평소에 돌아다니다가 웃긴 상황을 발견하면 메모하는 버릇이 있다"며 "저도 너무 심각하고 진지하기만 한 영화보단 적절히 숨통이 트이는 영화를 좋아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준호에게 대뜸 만나자고 하는 안나(정다은)라는 캐릭터도 매우 쿨하다. 굉장히 결정이 빠르고 소신도 강하잖나. 요즘 보면 인스타그램으로 인연이 되는 사람도 많더라. 전에 클럽하우스라는 플랫폼을 했는데 그때 만난 인연이 동네 친구로 이어진 일도 있다. 그렇게 요즘 세대는 누군가를 만나는 게 속전속결이더라. 아영에게 접근하는 경일(강길우)은 준호의 반대급부처럼 설정한 캐릭터였기에 안정감을 강조한 것이고."
 
장편 데뷔 의지
 
본래 이 영화는 단편으로 기획됐다. <왼편을 보는 남자>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담에 걸린 남자가 헤어진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서 그의 화실에서 대화하는 설정이었다. 제목은 평소 왼쪽으로 누워서 자는 감독의 습관에서 따온 것.
 
"남자가 왼편을 본다고 하니 지인 중 한명이 혹시 좌파 영화냐며 우스갯소릴 했다. 전혀 그런 건 아니다(웃음). 단편을 찍으려면 지원금을 받아야 하는데 이 설정은 한정된 공간에서 진행되다 보니 제돈으로 찍을 수 있겠더라. 그러다 문득 장편이 하고 싶다는 생각에 이 기획을 다시 들여다봤지.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심정으로. 그때가 2017년에서 2019년 사이였다. 이 남녀의 예전 이야기를 덧붙여 장편이 가능하다 생각했고, 긴장감을 넣을 수 있겠다 싶었다. 마침 누군가의 소개로 지금의 제작사를 만났고, 거기서 준비하던 장편 아이템들 대신 제걸 제안해서 만들게 됐다."

 
다행히도 제작사 협의 후 배우들이 빠르게 출연을 결정해서 진행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형슬우 감독은 "이동휘 형님도 그렇고, 정은채님도 소속사에서 마음을 열어주셨고, 배우분들이 답을 빠르게 주셨다"며 새삼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요즘 영화 투자받기가 참 힘들다는데 한편으로 배우들은 좋은 시나리오를 계속 찾고 있다. 제작사들은 배우를 캐스팅해야 작품이 들어갈 수 있다며 걱정하고. 이처럼 서로 다른 생각, 다른 걱정을 하는 것 같다. 그만큼 영화 하기가 더 어려워지지 않았나 싶은데 전 감사한 상황이지."
  
 영화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를 연출한 형슬우 감독.

영화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를 연출한 형슬우 감독. ⓒ (주)26컴퍼니


 
형 감독은 신인 감독이나 중견 감독 입장에서도 부담 없는 중저예산 영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00억 원 이상 들어간 대형 영화도 좋지만, 소규모 영화들이 많이 생기면 좋겠다"며 말을 이었다. 8년 전 <병구>로 정동진영화제를 찾았을 때 그는 기자이게 "영화로 밥벌이를 해야겠지만 자본에 휘둘리지 않고 싶다"는 각오 아닌 각오를 밝힌 바 있는데 그와 이어지는 말이었다.
 
"제 영화같은 장르물이 50억 원 이상까진 들일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예산에서 찍을 수 있는 영화들이 잘 나와야 한다. 투자해 준만큼 잘 뽑아내는 감독이 되고 싶다. 주변에선 적어도 이번 영화가 아주 저예산처럼 보이진 않는다고 하더라. 나름 칭찬이라 생각한다. 제가 어떤 거창한 꿈을 꾸는 건 아니고, 제가 어떤 형태로든 참여한 작품이 있다면 중박 이상은 한다는 평가를 받으면 좋을 것 같다. 그 정도 되면 영화로 먹고 살 수 있는 수준은 되지 않을까(웃음)."
 
틈틈이 연출 말고도 여러 영화에 배우로도 참여해 온 그다. 이번 영화 이후 그는 "예능 프로그램 콘셉트도 생각한 게 있다"며 다양한 분야에 도전할 의지를 내비쳤다.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 형슬우 이동휘 정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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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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