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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4일(현지시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미국 워싱턴DC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지난 1월 14일(현지시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미국 워싱턴DC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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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비서관의 동성결혼 차별 발언에 연신 사죄했다.

기시다 총리는 6일 당정 회의에서 "국민께 정권의 방침에 대해 오해를 불러일으킨 점은 유감"이라며 "불쾌감을 느낀 분들께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라고 밝혔다. 이어 "해당 발언은 정부의 방침에 반대되므로 신속하게 (비서관) 경질 판단을 내렸다"라고 강조했다고 일본 NHK방송이 보도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 격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도 이날 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언어도단으로 유감이며, 부당한 차별로 받아들여도 할 말이 없다"라며 "정부의 방침과는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또한 "기시다 정권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하는 부당한 차별이나 편견을 용납하지 않는다"라며 "다양성이 존중되고, 모든 사람이 서로의 인권과 존엄을 소중히 여기며 삶을 누릴 수 있는 공생 사회의 실현을 위해 앞으로도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해당 발언으로 상처를 입으신 분, 불쾌감을 느낀 분이 있다면 사죄드린다"라고 덧붙였다.

"동성결혼 보기도 싫다" 차별 발언... 마이니치 신문 "임명권자의 책임 있어"

아라이 마사요시 일본 총리 비서관은 지난 3일 기자들과의 대화에서 동성결혼과 관련한 논의가 나오자 "(국가에) 마이너스다. 다른 비서관들도 반대한다"라며 "보기도 싫다. 옆에 사는 것도 싫다"라고 말했다.

아라이 비서관은 "동성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면 국가를 버리는 사람들도 나올 것"이라며 차별적 발언을 쏟아내 논란이 됐다. 

경제산업성 관료 출신의 아라이 비서관은 총 8명의 총리 비서관 가운데 한 명이다. 작년 10월 기시다 정권 출범에 맞춰 비서관으로 발탁되어 홍보 및 미디어 대응, 기자회견이나 연설문 원고 작성 업무를 맡았다. 

당시 아라이 비서관의 발언은 촬영이나 녹음을 하지 않고, 실명 보도를 하지 않는 등의 '오프 더 레코드'를 전제로 한 자리에서 나왔다. 그러나 현장에 있던 일간지 <마이니치신문> 기자가 회사 측에 보고했고, 내부 회의를 거쳐 실명 보도하면서 드러나게 됐다.
  
아라이 마사요시 일본 총리 비서관의 동성결혼 차별 발언을 보도하는 <마이니치신문> 갈무리
 아라이 마사요시 일본 총리 비서관의 동성결혼 차별 발언을 보도하는 <마이니치신문> 갈무리
ⓒ 마이니치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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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니치신문>은 "정권의 요직에서 정책 입안에 관여하는 총리 비서관이 이런 차별적 인권 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은 중대한 문제이고, 임명권자로서 기시다 총리의 책임이 묻힐 수도 있다고 판단해 오프 더 레코드를 파기했다"라고 설명했다. 

언론 보도 후 논란이 불거지자, 아라이 비서관은 그날 밤 곧바로 기자들을 다시 불러 발언을 철회하고 사죄했다. 
 
"차별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오해를 주는 발언을 한 것에 대단히 죄송하다. 동성결혼에 대해 찬성이나 반대 등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의견이 있다는 것을 말하려고 했는데, 개인적인 생각을 말한 것은 철회하겠다.

나의 발언은 개인적인 의견이었고, 현재 공직자로서의 의견은 전혀 없다. 다만 개인적인 의견이라도 공직에 있는 사람이라면 밝히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 있어 (발언을) 완전하게 철회하겠다."

아라이 비서관은 "기시다 정권은 포용적이고 차별이 없는 사회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나도 그렇다"라며 "그런 방향을 향해 확실히 노력하겠다"라고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G7 정상회의 개최 앞두고 논란 일자 전격 경질

그러나 논란이 가라앉기는커녕 일본 언론을 넘어 외신까지 가세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결국 기시다 총리는 4일 기자회견을 열어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를 지향하는 정권의 방침과 양립하기 어려운 발언으로 언어도단"이라며 "임명 책임을 느낀다"라고 아라이 비서관을 전격 경질했다. 

기시다 정권이 신속하게 대응에 나선 배경에는, 일본에서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동성결혼에 대한 찬성 여론이 높아지는 가운데 가뜩이나 부진한 지지율이 성소수자 차별 논란으로 더 떨어질 것을 우려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작년 12월 도쿄지방재판소는 동성결혼 관련 소송에서 동성 커플이 가족이 되기 위한 법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했고,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동성결혼 법제화 찬성 의견이 높다. 

또한 오는 5월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의장국으로 기시다 총리가 적극적인 외교 행보를 펼치고 있는 가운데, 대부분 선진국이 인정하고 있는 동성결혼을 깎아내렸다가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AP통신은 관련해 "아라이 비서관의 발언은 G7 정상들을 초대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기시다 총리로서는 당혹스러운 일"이라고 전했고, 영국 BBC방송도 "일본은 G7 중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유일한 국가"라고 지적했다.

기시다 총리가 해당 발언이 나온 지 불과 하루 만에 아라이 비서관을 경질한 것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아라이 비서관의 발언을 처음으로 보도한 <마이니치신문>은 별도의 기사를 통해 "기시다 총리는 최근 정치자금 비리, 구 통일교 문제 등으로 4명의 장관을 사임케 했으나, 모두 당사자의 설명과 야당의 공세를 지켜본 뒤 결정했다"라며 "하지만 이번 사태는 즉각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정권이 위험해진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했다.

다만 "기시다 정권이 (동성결혼 법제화를) 망설이는 배경에는 보수파를 중심으로 한 자민당 내부의 뿌리 깊은 반대론이 있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야권 "심각한 문제, 시대에 뒤떨어진 이야기" 공세 펼쳐... 자민당 '진땀'

야권은 공세를 강화하고 나섰다. 제1야당 입헌민주당의 아즈미 준 국회대책위원장은 "인사 불상사 이상으로 심각한 문제"라며 "G7 의장국인 일본이 동성결혼을 놓고 시대에 뒤떨어진 이야기를 하며 부끄러운 현실을 전 세계에 알리고 말았다"라고 비판했다.

일본 공산당의 고이케 아키라 서기국장도 "차별과 편견으로 가득한 폭언으로 용서받을 수 없다"라며 "경질로 끝날 일이 아니다"라고 압박했다.

반면에 집권 자민당은 2020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성소수자(LGBT)의 이해 촉진을 위한 법안에 속도를 내겠다며 논란 진화에 힘쓰고 있다. 

모테기 도시미쓰 자민당 간사장은 "다양성을 존중하며, 성적 지향이나 성 자인(自認)에 대한 이해 촉진을 도모해나갈 것"이라며 "입법은 국회 일정 때문에 늦어진 경위도 있으나, 계속 준비하겠다"라고 약속했다. 

모리야마 자민당 선거대책위원장도 "선거에 영향이 있겠지만, (이번 논란은) 기시다 총리의 본의가 아니고, 자민당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명확하게 밝혀나가야 한다"라며 "국민께 잘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노력을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알렸다.

태그:#기시다 후미오, #아라이 마사요시, #동성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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