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들어 <맛있는 녀석들>과 <수요미식회>,<테이스티 로드> 등 소위 '먹는 방송'이 케이블TV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그러자 '예능계의 대부' 이경규는 먹방의 유행이 한동안 계속된 후에는 방송에서 직접 요리하는 장면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는 '쿡방'의 시대가 올 거라 예언했다. 그리고 이경규의 예언처럼 2010년대 후반부터 방송가에는 정말로 쿡방이 크게 유행하기 시작했다.

배우 소유진의 남편으로 알려져 있던 요식업계 사업가 백종원은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통해 '백주부'라는 타이틀을 얻은 후 <백종원의 3대천왕>,<백종원의 골목식당>,<집밥 백선생> 등을 통해 '쿡방계의 유재석'으로 떠올랐다. 뿐만 아니라 <냉장고를 부탁해>와 <신상출시 편스토랑>,<오늘 뭐 먹지?> 등 지상파와 종편, 케이블 채널을 가리지 않고 여러 종류의 쿡방들이 시청자들에게 사랑 받으며 '쿡방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사실 방송가에서 쿡방의 시대는 201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열렸지만 영화에서 음식과 요리는 그렇게 새로운 주제가 아니다. 예전부터 음식과 요리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꾸준히 제작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1990년대를 호령했던 홍콩 최고의 코미디 배우 주성치는 지난 1996년 여러 장르가 두루 담긴 '종합 요리영화' <식신>을 선보인 바 있다.
 
 <식신>은 주성치가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보여준 첫 번째 작품이다.

<식신>은 주성치가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보여준 첫 번째 작품이다. ⓒ 성휘해외유한공사

 
눈도 즐겁고 입도 즐거운 요리영화의 매력

사실 요리영화는 일본이 강하다. 대표적인 작품이 국내에서도 임순례 감독, 김태리 주연으로 리메이크됐던 <리틀 포레스트>다. 2권짜리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리틀 포레스트>는 사계절을 각각 60분 남짓의 이야기로 제작해 2014년 8월 여름과 가을, 2015년 2월 겨울과 봄 편을 각각 개봉했다(현지시간 기준). <기생수>의 무라노 사토미 역으로 유명한 배우 겸 가수 하시모토 아이가 주인공 이치코를 연기했다.

아카데미 감독상 2회,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2회, 베를린영화제 황금공상2회에 빛나는 대만 출신의 세계적인 감독 이안이 연출했던 <음식남녀> 역시 유명한 음식영화다. <음식남녀>는 은퇴한 노년의 요리사와 세 딸의 이야기를 통해 결혼과 가족간의 차이, 세대간의 갈등을 다룬 작품으로 1995년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르며 작품성을 인정 받았다. 국내에서는 <천장지구>의 여주인공 오천련이 출연한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아이언맨1,2>와 <라이온킹> 실사판의 감독이자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토니 스타크의 운전기사 겸 경호원 해피 호건을 연기했던 존 패브로 감독의 2014년작 <아메리칸 셰프> 역시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요리영화다. 존 패브로 감독이 연출과 각본, 제작에 주인공 칼 캐스퍼 역까지 맡으며 1인4역을 소화했고 스칼렛 요한슨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더 스틴 호프먼 같은 거물배우들이 패브로 감독과의 인연 덕에 조연으로 출연했다.

한국에서는 할리우드나 일본, 홍콩, 대만 등에 비해 요리를 소재로 한 영화가 많이 만들어지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잊을 만 하면 음식영화가 한 편씩 개봉되고 있다. 1999년에는 위기에 빠진 전통의 중국집을 다시 일으키는 <북경반점>이 개봉했고 2007년과 2010년에는 허영만 작가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식객>이 2편까지 개봉했다. 김태리와 류준열, 진기주의 쿠킹 힐링 무비 <리틀 포레스트> 역시 한국의 요리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주성치가 1인4역 맡은 역작
 
 유명한 다작배우인 주성치는 <식신>이 개봉한 1996년 단 두 편의 영화에만 출연했다.

유명한 다작배우인 주성치는 <식신>이 개봉한 1996년 단 두 편의 영화에만 출연했다. ⓒ 성휘해외유한공사

 
주성치는 지난 1990년 <정전자>와 <지존무상>으로 대표되는 홍콩의 도박 누아르 장르를 코미디로 비튼 영화 <도성>으로 일약 홍콩 최고의 코미디 배우로 떠올랐다. 주성치는 1991년과 1992년 2년에 걸쳐 무려 18편의 영화에 출연했을 정도로 엄청난 다작을 했다. 1995년 < 007 북경특급 >부터 이력지 감독과 공동연출을 시작한 주성치는 1996년 <식신>에서 감독과 주연, 각본, 제작에 참여하는 열의를 보였다.

실제로 영화 <식신> 곳곳에서 주성치의 노력을 발견할 수 있다. 스스로를 식신이라 부르던 주인공의 몰락과 재기, 그리고 식신요리 대회를 통해 진정한 식신으로 인정 받는 과정을 코미디와 드라마, 멜로, 액션 등 여러 장르를 적절히 섞어 연출했다. 물론 영화 중간중간 주성치 특유의 독특한 웃음코드도 잘 녹아있어 주성치 영화 마니아들 역시 즐겁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식신>에서는 고심 끝에 개발해 출시한 '오줌싸개 완자'가 팔리지 않아 점점 가격을 낮추다가 결국 무료로 나눠주게 된다. 그러던 중 한 병원에서 공짜로 가져간 오줌싸개 완자를 거식증 환자가 먹고 병이 나으면서 전국적으로 크게 유명해진다. 사실 완자의 가격이 떨어졌다 올라가는 장면은 1994년 조엘 코엔 감독, 팀 로빈스 주연의 <허드서커 대리인>에서 훌라후프의 가격이 요동치는 장면을 노골적으로 패러디한 것이다.

사실 '주성치식 코미디'에 거부감이 있는 관객들은 <식신>을 완주하기 쉽지 않지만 주성치와 당우(곡덕소 분)의 요리대회가 담긴 마지막 20분은 <식신>과 주성치 영화의 재미를 집대성한 명장면이다. '소림18동인'에게 집단구타를 당하는 개그 장면도 재미 있지만 깨달음을 얻고 요리의 도를 깨달은 주성치가 "누구나 다 식신이야. 남녀노소, 형제자매... 모두가 마음가짐만 있다면 '식신'이 될 수 있어"라는 명대사를 던지는 장면도 대단히 인상적이다.

홍콩에서 감독과 배우를 겸하는 이력지 감독은 1991년 <신격대도>를 통해 주성치와 처음 만나 <군성회>, <당백호점추향>, <파괴지왕>, <007북경특급>, <식신>, <희극지왕>까지 7편의 작품을 감독과 배우, 또는 공동연출로 주성치와 함께 했다. 2000년대에는 연출보다 배우로 더 활발히 활동했던 이력지 감독은 2021년 중국에서 활동 중인 한국계 영국인 배우 클라라가 출연한 <장천: 전장의 서막>을 연출했다.

식신에게 사랑을 깨닫게 해준 여인
 
 막문위는 <식신>의 '칠면조'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우스꽝스런 분장도 마다하지 않았다.

막문위는 <식신>의 '칠면조'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우스꽝스런 분장도 마다하지 않았다. ⓒ 성휘해외유한공사

 
요리를 소재로 한 코미디 영화 <식신>에 멜로요소가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영화를 위해 우스꽝스런 분장도 마다하지 않은 <식신>의 여주인공 막문위 덕분이었다. 주성치가 몰락한 후 찾아간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음식을 팔고 있던 '칠면조'는 추위와 배고픔에 떨던 주성치에게 따뜻한 돼지고기 덮밥을 만들어 주면서 음식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해줬다. 그리고 오줌싸개 완자를 개발한 주성치와 동업을 시작한다.

사실 칠면조는 식신의 열혈팬이다. 나중엔 주성치 대신 삼합회의 킬러가 쏜 총에 맞는데 다행히 총알이 금이빨에 맞으면서 목숨을 건진다. <서유기-월광보합>과 <선리기연>에서 주성치를 만난 막문위는 <홍콩레옹>,<식신>,<산사초>,<희극지왕> 등에서 주성치와 함께 출연했고 <소림축구>에서도 장백지와 카메오로 나왔다.

<도성>부터 <소림축구까지>까지 여러 작품에서 주성치와 오랜 콤비연기를 선보였던 고 오맹달은 <식신>에서 주성치와 대립하는 삼합회 두목을 연기했다. 당우와 손을 잡고 주성치를 몰락시킨 삼합회 두목은 주성치가 재기하려 하자 킬러를 보내 주성치를 죽이려 하고 요리대회에서는 심사위원을 매수하는 등 끝까지 갱생하지 못한다. 결국 하늘에서 내려온 문수보살에 의해 개로 변하며 인간으로서 삶을 마감한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식신 이력지 감독 주성치 막문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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