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09 13:17최종 업데이트 23.02.09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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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프랑스 정부가 추진하는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국민들이 4주째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횟수로는 3번째인 이번 시위에 참가한 인원은 전국적으로 75만 7천 명(내무부 추산).

지난 1월 19일 1차 대규모 시위 당시는 내무부 추산 112만 명(노조 추산 200만 명)이, 같은 달 31일 2차 시위 때는 127만 명(노조 추산 280만 명)이 도로를 점령해 정부의 개혁안에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프랑스 정부는 이번 개혁안을 올 가을부터 시행하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여당은 의회에서 야당을 상대로 정부 방침을 적극 방어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개혁안을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반대 목소리 역시 높다. 밀어붙이는 쪽과 밀리지 않겠다는 쪽이 정면 승부를 벌이는 형국이다.

뜨거운 논쟁, 특수연금
  

프랑스 하원이 연금개혁 법안 심의에 들어간 다음날인 7일(현지시간) 프랑스 전역에서 정부의 연금개혁 추진에 반대하는 3차 시위가 열렸다. 사진은 파리 시위 모습. 정부의 연금개혁안은 연금 수령을 시작하는 나이를 62세에서 64세로 올리는 것을 골자로 한다. 연금 개혁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그가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는 의제다. 2023.02.08 ⓒ 연합뉴스

 
프랑스는 현 연금체계가 만들어진 1945년 이래 크게 세 가지 범주를 유지해왔다. 첫 번째는 일반연금. 일반 사기업 종사자를 포함해 대부분 직장인들이 여기 해당하며, 전체 연금 대상자의 88%에 달한다.

두 번째 범주는 농업연금. 농업과 관계되는 대부분의 경영자, 농기업 종사자들이 여기에 해당하며 전체 인구의 약 5%를 차지한다. 연금체계가 만들어지고 7년 후, 1952년부터 시행 적용됐다. 적은 인구비율이지만 농업의 특성상 별도의 연금체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세 번째 범주가 가장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특수연금. 일반 공무원을 비롯해 철도, 광업, 전기·가스 분야 종사자들이 이에 해당하며 이들은 각각의 고유 연금체계를 가지고 있다. 이 밖에 종교분야, 파리교통공단, 파리오페라단, 보르도항만, 국회 상하원 소속종사자 등도 특수연금 대상자들이다.

얼핏 보기에도 특수연금에 해당하는 직업군은 다양하다 못해 상당히 이질적이다. 농업연금과 달리 그들 사이의 유사성도 잘 보이지 않는다. 오페라단이 파리에만 있는 것도 아닌데, 파리의 오페라단만 이에 해당된다는 점도 의아하다. 보르도 항만도 마찬가지다.

마크롱 정부 이전의 거의 대부분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특수연금 체계를 개선하고자 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연금체계가 너무 복잡하고 직종 간 형평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처음 특수연금 체계가 만들어질 당시와 지금의 현실 사이에 괴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역대 정부는 특수연금 수령 해당자들이 다른 직종 종사자들에 비해 특혜를 받고 있다고 여겼다. 이런 정치적 논리로 역대 정부는 연금 개혁의 필요성을 설득해왔다. 현 정부도 특수연금 체계를 정비해 이들의 상당수를 일반연금으로 대체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특수연금 해당자들 가운데 일부 분야 종사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우선 '특수'연금이 '특권'연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든다. 특정 분야 종사자들의 고역이 다른 분야에 비해 크기 때문에 이를 보상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다.

국방과 치안 분야가 대표적이다. 이들 분야의 노역을 특별히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발레리나 등 특정 예술분야 종사자들에게도 일반 노동자들과 똑같은 근무 연수를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특수연금 대상 직종의 종사자들은 일반연금 체계가 만들어진 1945년 이전에 이미 직군 내부의 자체적 논의를 통해 연금체계를 만들었다. 정부도 연금 보장 제도를 도입할 당시 이들의 특수성을 인정해 일반체계에 편입하지 않고 예외로 인정했다. 이것이 특수연금의 시작이었다.

현재 프랑스 국민들도 이러한 특수성을 대체로 인정한다. 정부 역시 특수연금 체계의 모든 적용 대상을 없애겠다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분야와 같이 대부분이 인정하는 일부 직종의 특수성은 개정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그것이 형평성과 사회정의에 부합한다는 설명이다.

부유세 폐지하려 하면서 왜 노동자에게만

문제는 과연 정부의 주장대로 이번 개혁안이 형평성과 사회정의에 제대로 부합하느냐다. 예시된 직종 가운데 발레리나의 경우, 왜 파리오페라단의 발레리나들만 연령 문제의 특수성을 인정받느냐에 대해 정부는 명확한 답변을 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국민들을 자극한 것은 국회 상하원 소속 등 정치인 그리고 정치 분야 종사자들에 대한 이중 잣대였다.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긴 걸까. 이들에 대한 특수연금 조항은 이번 개혁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사실이 국민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프랑스 국회의원은 하원의 경우 4년 임기를 마치면 일반인들이 40년 일해 얻을 수 있는 연금의 절반 수준을 보장받는다. 결국 재선만 해도 유권자들이 평생 일한 대가와 동일한 노후 보장을 받는 셈이다.

대통령, 국회의장 등 직위는 또 별도로 적용된다. 어떤 정치인이 국회의원 재선 또는 3선, 4선을 하고 국회의장 또는 대통령을 역임하면 보장받는 연금은 보통 사람의 마지막 호봉의 몇 배에 해당한다. 심지어 고소득 직장인들의 마지막 수령액보다 정치인의 연금이 높을 수 있다.

이번 개혁안의 대상은 특수연금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일반연금의 수령 조건 또한 개혁안이 통과되면 달라진다. 앞서 말한 대로 88%의 프랑스인들은 일반연금 대상자들이다. 일반 직장인의 경우 현행법 상 42년 근무일수를 채우면 62세부터 연금을 수령할 수 있다.

처음 퇴직 연금 제도가 만들어졌을 때 법정 수령 가능 연령은 65세였다. 그랬던 것이 미테랑 대통령이 당선된 이듬해인 1982년 60세로 대폭 낮춰졌다. 당시 의무적 근무일수도 37.5년으로 규정됐다. 하지만 사회복지의 황금기 1980년대가 지나고 1990년대 들어 세상은 빠르게 변해갔다.

1993년 에두아르 발라뒤르 총리가 이끄는 보수 정부 당시 사기업의 경우 37.5년의 의무 근무일수가 40년으로 늘었고 2012년 피용 총리의 보수 정권은 공기업의 의무 근무일수도 40년으로 늘렸다. 그리고 2020년 마크롱 대통령 체제에 들어 다시 42년으로 늘렸다.

연금수령이 가능한 법정 은퇴연령도 피용 총리 당시 60세에서 62세로 늘었다. 이번에 연금개혁을 노리는 마크롱 대통령은 62세의 현행연금수령 가능 법정 은퇴연령을 64세로 연장하려 하고 있다.

연금은 진보, 보수의 문제만은 아니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사회당 정부에서도 연금수령 보장을 위해 더 많은 노동시간을 요구하는 압박은 있었다. 인구의 구성비율, 평균수명, 실업률 등 다양한 인자들이 기존의 사회보장 체계 유지를 어렵게 만든 게 사실이다.

지금의 인구구성 변화 추이를 감안할 때 현재의 30대 직장인들이 퇴직 연령에 이르렀을 때, 과연 안정적 연금을 보장받겠는가 하는 우려가 확산되는 것도 사실이다. 프랑스의 퇴직연금계획위원회(COR)는 이와 관련해 다양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있지만 정치권은 그 자료들을 제각각 해석하고 있다.
  

(생나제르 로이터=연합뉴스) 프랑스 전역에서 정부의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2차 총파업이 벌어진 31일(현지시간) 서부 도시 생나제르에서 시위대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그린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플래카드 위에는 '공공의 위험'이라는 슬로건이 쓰여 있다. 이번 연금개혁안은 2030년까지 정년을 62세에서 64세로 늘리는 방안을 포함하고 있다. 2023.01.31 ⓒ 연합뉴스

 
불확실한 미래와 정답을 찾지 못하는 불안이 프랑스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프랑스인들도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정책적 선택이다. 프랑스 국민들은 형평성과 사회정의에 진정으로 부합하는 해법을 요구하고 있다.

연금개혁 반대를 위해 거리로 뛰쳐나온 프랑스 국민들은 본질적으로 62세의 퇴직연령이 64세로 늘어나는 것을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40년 근무일수가 42년으로 늘어난 것을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프랑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진정한 사회연대다. 복지의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절)였던 1980년대에 공평한 행복의 분배를 원했던 것처럼, 사회 구조의 근본적 변화와 경제 질서의 대전환 속에서 이제는 공평한 고난의 분배를 원하는 것이다.

사회보장 체제의 위기 속에서도 법인세는 지속적으로 인하하려 하고, 부유세는 폐지하려 하면서 재정 적자의 위험을 노동자의 희생으로 메우려는 정부의 정책 방향에 그들은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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